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여자들
높다란 건물 사이에 북쪽을 향해 앉은 가게는 여름 아주 잠깐을 제외하고는 늘 춥지요. 지루한 겨울이 지나고 해가 길어지는 시기가 오면 퐁토슈 가에도 활기가 찾아와요.
마치 두 개의 협곡 사이에 하루의 가장 강한 햇살이 잠시 비추었을 때처럼, 그래서 오래 묵은 건물 지붕의 곰팡이와 돌길의 찌뿌둥함을 모두 날려버릴 만한 그런 열기가 퐁토슈 거리에 퍼지면 소위 흰 면티에 청바지만 대충 걸쳐 입어도 예쁜 프랑스 여자들과 온갖 힙스터들이 나타나 눈을 즐겁게 하죠.
그런 친구들이 가게의 손님이 되면 좋겠지만, 우리 가게의 주 고객은 각국에서 오는 관광객들과 패션위크 기간의 바이어를 제외하면 대체로 나이 50대 이상의 프랑스 마담입니다.
한국에서는 일찌감치 샬롯 갱스부르 풍의 프렌치 시크가 유행을 했었죠.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세련됨 말이에요. 매일 프랑스 여자들을 만나면서 프렌치 시크란, 전혀 꾸미지 않은 것처럼 신경을 엄청나게 쓰는 다소 의도된 스타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민족을 상대로 옷을 팔고 있다는 것도요.
옷을 입어보고는 너무 마음에 들지만 그 옷을 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순차적으로 되뇌는 손님에게 나는 당신이 옷을 사야 할 이유를 자연스럽게, 나의 조바심을 최대한 누르며 말을 해야 하죠. 손님 옆에 너무 들러붙어 있지 말되, 하지만 나는 너를 신경 쓰고 있어. 약간은 고양이 같은 태도로 말이에요.
하나의 소비에 무척 까다롭고, 진지한 그녀들은 과하게 멋스러운 것도, 그렇다고 평범한 것도 좋아하지 않죠. 무난하면서도 독특한 어떤 부분이 있어야 해요. 그녀들은 툭하면,
"C'est trop." 너무 과해.
"C'est original." 독특한데.
라고 말하곤 하는데, 나는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서 있어요. 오지랖 없이 말을 내뱉어 파투 나는 일이 없게요.
그런 그녀들은 성격도 평범하지 않죠. 어느 날에는 겨울 울 코트의 보풀이 생길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언쟁을 하다 다음 날 자신의 다 큰 아들까지 가게에 데려와 내게 확답을 요구해 거의 싸울 뻔했던 마담도 있었어요. 그녀는 코트를 활짝 펼쳐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는 손바닥으로 옷을 더듬다가 코트의 바느질 한 땀 한 땀까지 체크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여태껏 보풀 문제로 컴플레인이 들어온 적은 없다, 다만 당신이 가방이나 나무 테이블 같은 곳에 마찰을 많이 일으킨다면 생길 수도 있겠지. 그녀의 아들도 거들었습니다. 물론 내 편에서요. 그는 과하게 까탈을 부리는 엄마 때문에 무척 난감해 보였어요. 결국 그 마담은 코트를 샀고, 후에 길에서 마담을 마주칠 때마다 난 보풀에 대해 물었죠. 보풀이 생기지 않았다고 웃으며 대답하는 마담과 나는 얼굴 볼 때마다 보풀 얘기를 하는 사이가 되었어요. 그녀가 단골이 된 것은 물론이고요.
옷가게에서 일을 한 지 몇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나는 매일 조금씩 난감하고, 식은땀이 흐르고, 그러다가는 급기야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나는 왜 이곳에 있나, 그럼 나는 어느 자리에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들로 머리를 가득 채우죠.
주로 오만한 태도를 지닌 손님들이 다녀간 후에 그래요. 예쁘다 말을 해도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한번 쓱 쳐다보고는 아무 반응이 없죠. 내게 일본인이냐, 일본옷을 파는 가게냐고 물어서 한국이라고 대답을 하면 일초도 쉬지 않고 나는 일본이 좋은데라고 말하는 마담이나 한국을 페루의 어디쯤이라고 생각하는 황당한 마담.
프랑스에서 내 삶의 전투력을 한껏 끌어올려 주는 친애하는 나의 손님들, 진상들.
종일 창 밖을 바라봐요. 나는 오늘도 손님을 기다립니다. 기다리면서도 기다리지 않는 마음으로요. 이 모든 일들이 언젠가 내 소설의 몇 장면이 되리라는 희망을 갖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