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중년이 된 아이들
80년대 일이다.
남자 중학교로 발령이 났다. 망아지같이 뛰어다니는 아이들이다.
그중에서도 북한조차 두려워한다는 2학년을 맡았다.
신학기 초에 기선제압을 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얕잡아 보이면 1년을 망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첫날 첫 시간, 교실 문을 확 열어제끼고 조용히 째려보며 교탁 앞에 선다.
그리고 감정 없이 목소리를 깐다. 아이들도 숨죽이고 탐색을 한다. 이 사람과 1년 동안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교실에는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만 난다.
책상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과제물을 봐주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해서 홱 돌아보니 한 녀석 신발 위에 볼록 거울이 얹혀 있다.
그 볼록거울로 나의 치마 밑을 본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지켜보던 아이들이 순간 쥐죽은듯 조용했다.
나도 조용조용 말했다. " 교무실로 와 "
그 순간은 식민지 지배의 역사보다 더 치욕스러웠다.
왜냐? 식민지 역사는 책으로 본 것이고 이건 내가 직접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투 고발하는 여성들의 심정을 가해자들은 짐작도 할 수가 없고
그 긴세월 홀로 삭힌 응어리는 더더욱 알 수 없다 생각한다.
글로 읽은 자도, 같은 여자라 할지라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심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이가 교무실로 왔다.
" 부끄러운 사람이 누고? "
아이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 제가 부끄럽습니다." 했다.
쪽팔려 미칠 지경이지만 폼나게 말했다.
" 알았으면 됐다. 가봐라. 다시는 그러지 마라 "
" 죄송합니다."
잔뜩 쫄았던 아이는 꾸벅 인사를 했다.
나는 그 사과가 진심이라 믿는다.
이제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아이도 중년이 되었을 거다.
요즘은 어떤지 몰라도 당시 남자 학교의 여교사는 거울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아이들은 동네에 세워진 트럭에서 사이드미러를 뜯어 오기도 했다.
그게 선생님 치마 밑 구경에는 최고라는 것이다.
어느 날은 방과 후에 빈 교실을 둘러보는데
아이들 몇이 모여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질겁을 했다.
해괴한 만화책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난생처음 보는 만화책을 몇 장 뒤적이다가 너무 충격적이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들은 교사가 모르는 세상에 무방비로 마구 노출되어 있었다.
이런 일에 남자 교사들은 비교적 관대했다.
사나이 대 사나이로 이해하며 토닥여줬고 시시덕거리기도 했다.
아이들은 남자는 한때 이런 실수를 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받지는 않았을까.
나중에 아이들이 알려 줬다.
가게에서 물건 훔치는 일은 안 해본 애가 거의 없고 훔치기 내기도 한다 했다.
그리고 음란물은 그냥 학교에서 공유되는 것이라 했다.
정말 듣고도 믿을 수 없는 일도 있었다. 친아버지로부터 수년에 걸쳐 당했던 아이가 있었다.
졸업반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만 친지들은 난감했고 대책도 없었다.
아이는 차마 아버지를 떠나지 못했다. 그 복잡한 심정을 누구도 풀어주지 못한채
아이는 졸업을 했다.
이 아이들은 그 많은 기억과 상처를 묻어둔 채 어디에선가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혹은 모호하고 애매하게 중년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