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담자 P Mar 08. 2020

아빠와의 한강 데이트

자작시

아빠가 한강 보러 가잔다

귀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출근할 때 늘 보는 한강을

뭐하러 일요일에 또 보냐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그래 놓고 괜히 미안해져서

못 이기는 척 외투를 걸친다


버스 타고 갈 줄 알았건만

한강까지 걸어가잔다

내일 출근이라고 투덜대면서도

씩씩하게 걸어는 간다


한강을 가자고 해놓고

공원도 들르잔다

아빠 혼자 잔뜩 신났다


이리온나

와서 산수유 냄새 맡아봐라

꽃 핀 가지에 코를 파묻고는

내게 손짓한다


아유 뭘 또 맡아보래 하며

흘끗 들여다보고 지나친다

한강 도착할 때쯤 되니 괜히 아쉽다

한번 꽃 향기를 맡아볼 걸 그랬나


일렁거리며 꿈틀대는 강물

차가운 바람 한 줌에

햇빛 한 움큼이 더 해진

기분 좋은 시원함


숨을 깊게 들이쉬며

한강 냄새라도 맡아본다

지하철 안에서 보던 그 한강은

반쪽짜리였구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햇빛을 온몸으로 맞으며

바람을 마주했을 때라야

그게 진짜 한강이구나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는데

아빠가 말한다

기왕 나온 김에 딸내미랑 같이

남산까지 걸어가면 좋겠네


눈이 확 떠진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이제 버스 타고 집 갈 거야

퉁명스럽게 말을 던지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간다


아빠도 마지못해 뒤를 따라온다

그리고는 보스락보스락

봉지에서 뭔가를 꺼내어 내민다


너 좋아하는 단팥빵 가져왔다

이런 취향은 나를 닮았지


틀림없는 사실 앞에

그리고 단팥빵 앞에 나는 무너진다

그래 아빠 말이 맞아


빵을 입에 물고 버스를 기다린다

노을이 진다

오랜만의 데이트였다


작가의 이전글 자작시| 보물찾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