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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형 물고기자리 Dec 16. 2020

20년 만에 다시 읽는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나에게 자문하다.

            지난여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를 읽으면서, 오랜만에 하루키의 이전 소설을 다시 찾아 읽고 있다. 하루키의 소설 신작이 나오지 않을 때 주로 에세이를 선호했기에, 소설은 꽤 오랜만에 읽었다.  “태엽 감는 새”는 하루키 책을 처음 읽고 빠져들던 나를 생각나게 했고, “반딧불이”를 거쳐, “상실의 시대’를 다시 읽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유유정 번역의 문학사상사 출간 본으로, 1996년 2판 43쇄라고 하니. 아마도 그 해에 산 것이 아닐까 싶다. “상실의 시대”는 사회와 “개인”,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혼란스러워했던 20대의 나에게 “개인의 감정”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고, 사회, 국가, 타인이 나의 삶을 결정 지우는 것은 아니고 나의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라는 지금에 와서는 당연한 것을 담담하게 알려준 책이다. 

           나오코가 요양원에 찾아온 와타나베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그런데 왜 당신은 그런 사람들만 좋아하는 거지요?”하고 나오코가 말했다. “우린 모두 어딘가 휘어지고, 비뚤어지고, 헤어나지 못하고, 자꾸만 물속에 빠져 들어가기만 하는 인간들이 에요. 나도 기즈키도 레이코 언니도, 모두 그래요. 어째서 좀 더 정상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는 거죠?”

 “그건. 내겐 그렇게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야.” 

 나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이렇게 대답했다. 

“나오코나 기츠키, 레이코 여사가 어딘지 비뚤어져 있다곤 도저히 생각되지 않거든. 어딘가 비뚤어졌다고 내가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힘차게 바깥세상을 활보하고 있어. “ 


           와타나베는 본인은 스스로가 평범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정말 마음이 깊고 꽉 찬 강한 사람이다. 그는 또 미도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와타나베, 영어의 가정법 현재와 가정법 과거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요?”하고 갑자기 미도리가 나에게 질문했다. 

 “설명할 수 있을 거야.”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럼 물어보겠는데, 그러한 게 일상생활 속에서 무슨 도움이 되지요?”

“일상생활 속에서 무슨 도움이 되진 않아”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도움이 된 다기보다는, 그러한 게 사물을 보다 더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훈련이 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어.” 

그녀는 잠시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하더니 “자기 참 훌륭해요.”하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상실의 시대를 성에 대한 자유분방한 모습과 감각적인 표현 (봄날의 새끼 곰처럼 너를 좋아해 같은 표현)으로 이 책을 기억하지만, 나는 그것 이외에도, 정말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 어떻게 든 발을 땅에 단단하게 딛고 버터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사람을 표현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에 나온 소설 “태엽 감는 새”의 모티브 일 수도 있는 표현도 있다. 


           “때때로 지독히 외로운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대로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네가 매일 아침 새들을 돌보고 밭일을 하는 것처럼, 나도 매일 아침 내 자신의 태엽을 감고 있다.” 


           굳이 “상실의 시대”와 “태엽 감는 새”를 연결시켜 보자면,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잠재해 있는 것이다.”라는 진리를 알게 된 20대가 하루하루 자신의 태엽을 감으면서 30대가 되고 결혼하고, 갑자기 찾아온 사랑하는 사람의 떠남(슬픔이라는 감정을 겪고)에 “우물”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심연 밑바닥까지 파고 들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죽음”이라는 슬픔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정말 치열하게 생각하고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좌우되지 않고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상실의 시대”, 20년 만에 다시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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