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자영 Nov 01. 2020

힘 빼기의 기술

도대체 힘은 어떻게 빼는 걸까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문 프리젠터’라는 직업으로 전향했을 때, 좋은 말하기에 대해 온종일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세상이 성공이라고 말하는 곳으로 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2번의 실패 후 선택한 삶. 이번에도 실패하면 다음은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나 스스로에게 면이 서지 않았다. 이제는  스스로에게 '나의 선택이 옳다'라는  증명해 보일 때였다.



최선을 다해 선택하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선택한 것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셔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
정당한 방법으로 증명해 보이십시오.

손석희


도망갈 곳은 없었다. 숨을 곳도 없었다. 손석희 교수님이 이 말 하나를 부여잡고 그저 앞으로 걸어 나갔다. 말하기와 관련된 콘텐츠라면 보고 또 봤다. 온종일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말을 잘하는 사람들은 모두 놀랍도록 ‘자연스러웠다’. 큰일이었다. 나는 늘 힘주어 말하는 것만 배워왔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새벽 6시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향했다. 아나운서 준비생인 나는 화면 안에서 부산스러워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경직된 자세로 말하는 법을 익혔다. 눈알도 함부로 못 굴렸다. 삐죽삐죽 나온 잔머리도 차가운 수돗물로 정갈하게 매만졌다. 나는 매번 그렇게 화면 안에서 ‘다듬어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 훈련된 '나'였다. 타인 앞에 설 때면 긴장한 탓에 몸은 더욱 뻣뻣해졌다.



최선을 다해 익힌 만큼
최선을 다해 버려야 했다


최선을 다해 익힌 만큼 최선을 다해 버려야 했다. 온몸에 힘을  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해야 했다. 쉽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힘을 빼기 위해  열심히 연습했다. 진저리 날 때까지 연습하지 않으면 실수할까 마음이 불안하여 도저히 편안해질 수 없었다. 그렇게 기약 없는 리허설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완벽이라는 단어와 가까워질수록 힘 빼기가 가능해졌다.



현장에서 8년,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자연스럽다는 건 힘을 빼고 봐도 원래 그 사람 자체가 멋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자연스럽기가 왜 힘든지, 힘 빼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렇게나 시간이 흘러서야 깨닫는다. 꾸미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멋진 사람이어야 하니까.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말을 잘한다는 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