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필요를 제대로 모른 채로 사랑의 기준을 세워놓는 경우
사랑이 거래행위가 되는 대표적인 세 가지 경우 중 또 하나는 사랑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이 또한 본인이 얼마나 어떤 부분에서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할 경우 발생하게 되는 매우 흔한 상황들이다. 사랑이라고 증명될 수 있는 명확한 행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사랑에 기준을 정해두고 그것을 계속해서 시험한다. 명확하지 않은 것은 곧 불안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나 너무나도 많은 부작용이 존재한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매우 지치고 힘든 상황에 놓인 한 사람이 현재 스스로 격려와 위로가 필요한 상황인지, 정확한 판단과 지지가 필요한지 조차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고 가정해보겠다. (사실 정말 많은 사람이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실제로 넘쳐난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둘 만의 감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면 어떨지 생각해보자. 생각만 해도 아찔하게 느껴진다. 만일 너무 다행히도 본인이 필요로 하고 있던 것을 상대방이 찰떡같이 말해주면 서로 천생연분임을 한번 더 확신하겠지만 문제는 그렇지 않았을 경우이다. 그 사람이 자신에게 필요로 했던 말을 했든 하지 않았든 상대방은 관심과 집중이라는 의무를 다했으나 그 의무와 노력을 별개로 보지 않고 나의 필요를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는 사실로 '나는 사랑받지 못해', '나와 맞지 않아'라는 오해석을 직결된 결론으로 지어버리는 불상사가 대부분 이때 발생한다. (물론 여기서 상대가 의무를 다하지 않은 무관심은 또 다른 문제이다.) 확실한 것은 두 사람은 현재 서로를 사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줄줄 새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날 사랑한다면 이렇게 행동할 거야.'라고 엄한 기준을 세워놓는다면 둘 사이는 정말 정말 피곤해져 버릴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자신이 관심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 것까지는 용케 알아낸 어떤 이가 있었다고 해보자. 관심 자체를 받고 싶어 하는 사실은 알았으나 어떤 관심을 필요로 하는지까지는 명확히 모르는데 '연락의 빈도'를 '사랑의 척도'로서 기준을 세웠다면, 본인이 원치 않았던 관심 또한 '그래도 관심이니까 이것도 사랑이겠지?'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더 심각한 혼란이 발생한다. 머리로는 분명 이게 사랑인데 간혹 발생하는 불쾌함, 답답함 등 부정적인 감정을 인지 부조화로 인해 애써 회피하여 관계를 곪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듯 명확한 나만의 기준이 없으면 사랑에 임의적 기준을 세워놓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또 어리석은 일이 되어버린다. 특히 나만의 기준도 없이 주변 사람이나, 떠돌아다니는 유튜브 영상, 글 같은 곳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답인 양 세워버리게 되면 둘만의 사랑이 결국 왜곡된다. 내 기준을 잘 모르겠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습관이라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한다.
"혹시 저 사람은 저걸 사랑이라고 생각하나?"
"혹시 저 사람은 저걸 사랑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을 안 하나?"
생각보다 쓸데없이 발생하는 오해나 서운함이 줄어들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사실 결국 저러한 사고방식을 갖기 위해서는 내게 당장 무엇이 사랑으로 느껴지는지 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꾸준히 나를 돌아보는 연습을 하는 것은 정말 여러 번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