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거래행위가 될 때
내가 내 마음조차 존중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누군가의 요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드는가? 또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순전히 상대의 행복을 위함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다. 이것은 거래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은 사랑과 존중이 아니라 "거래"행위이다.
사랑 자체가 아니라 사랑이 목적이 되는 거래행위가 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서운함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헤어진 연인과 재회를 하고 싶다든지, 사랑이 싹트기 시작하는 일명 썸의 단계에서 약간의 불균형이 나타나 본인이 더 관계를 간절히 원하게 될 때, 더 나아가 짝사랑을 하는 상황에는 어쩔 수 없이 해당 관계를 거래 행위의 관점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관계를 유지하거나 발전하고 싶은 의지가 더 강한 사람은 그런 마음이 덜 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을 줘야 하는 의무를 동일하게 갖고 있고 그것을 동의하고 있는 사이에서는 적어도 그러한 거래행위를 멈춰야 한다. 그런데 그 거래행위를 멈추기 전에 내가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지, 내 상태가 어떠한지, 내가 어떻게 만족을 느끼고 어떻게 부족을 느끼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조금 쉬운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재정립이다. 법적으로 혼인관계인 부부뿐 아니라 연인관계 또한 서로 간의 암묵적 계약관계로서 바라보면 생각보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에 대한 의무감과 역할이 조금 더 명확해지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받아야 하는 나의 권리 또한 좀 더 명확해진다.
사랑이 거래가 될 때 발생하는 상황을 임의로 분류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