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러뮤니케이션 Oct 30. 2022

서운학개론

서운한 감정은 참 힘들다. 왜냐하면 내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만 느끼기 때문이다. 

서운함은 사전에 나와있듯이 마음에 모자라 아쉽거나 섭섭함을 느끼는 것이다.


가끔은 감정을 이해하려면 그 감정의 단어를 설명하는 정의 가 참 유용하다.


내가 왜 이렇게 서운하지?라고 생각이 든다면 이렇게 내 마음에 무언가가 모자란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100만큼 줬으면 나에게 그만큼 지출이 생겼으니 상대방에게 100을 받고자 하는 게 사람의 본능이다. 서운함의 메커니즘은 그렇다. 내가 준 게 물질적인 선물이든, 사랑이든, 마음이든, 표현이든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으려는 목적으로 주는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빠져나간 지출은 어쨌든 나로부터 소비됐고 어느 정도 돌려받지 못하면 '모자람'을 느끼기 때문에 자신에겐 손해이자 손실이다. 결국 서운함을 느끼는 관계는 비경제적인 관계라는 뜻이다. 


 하지만 서운함에도 부당한 서운함이 있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누구에게 무엇을 받을 때 행복을 느끼고 자존감을 올린다면 누군가에게 주는 것을 마치 투자행위처럼 한다. 주식 투자도 오를 것을 기대하면 실망하지만 기대가 없으면 웬만해서는 본전만 찾아도 괜찮다. 하지만 수익률을 기대하지 않고 주식투자를 하겠는가? 투자를 배우는 것으로 의의를 두면 무언가를 배우고 공부했다고 생각하여 큰 섭섭함이 없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 무의식적인 기대를 감지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마음의 자원을 제공한다면, 자기도 모르게 내가 받는 것에 대한 답이 정해져 있는 '답정너'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베풂 자체가 큰 행복인 사람은 상대방의 피드백의 정도가 1이든 100이든, 보답의 종류가 어떤 것이든 그 값어치를 100 이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명예와 같은 보상 없이 익명으로 기부를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지출을 메꿀 수 있는 것이다. 


 서운함이 가장 빈번한 관계는 바로 연인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던 내가 사랑하는 애인에게는 왜 이렇게 쪼잔해지는지 본인이 이렇게 못난 사람이었나 싶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힘들게 하는 감정이다. 사실 연인은 논리적 관계이기보다는 감정적 관계이다. 그래서 자꾸만 이해가 되지만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생기게 된다. 


 서운함의 메커니즘을 전반적으로 이해했다면 더 깊게 서운함을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전 05화 뭐만 하면 가스라이팅이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