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람이 생각하는 독일 시골살이의 장점
05. 정반대의 삶의 터전에서 다시 시작하다.
내가 교환학생으로 선택했던 학교는 독일에서도 못생긴 도시 3위로 꼽히는 작은 시골 ‘루트비히스하펜(Ludwigshafen)’이었다. 기왕 떠나는 6개월, 풍경 좋고 관광지가 잘 되어있는 대도시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적은 선택지와 높은 경쟁률 그리고 소도시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이 지역을 선택했다.
교환학생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약 2n 년을 서울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서울쥐로 기존 환경에서 벗어난 삶이 전무했다. 그렇다 보니 서울살이가 내게는 기본값이 되었고 갖추어진 인프라를 활용하는 것이 당연했다. 물론 이 좋은 환경이 지속된다는 것은 행운이다. 하지만 내 스스로 나의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영영 변화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히려 이 사실이 더 무서웠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와 도시를 벗어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시작해보고 싶었고, 그곳에서도 내가 잘 적응하고 지낼 수 있을지 실험 하고 싶었다. 아마 은연중 스스로도 떠나 산다면 누구보다 잘 즐기며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큰 걱정 없이 정반대의 환경을 선택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첫 독립생활을 독일, 그것도 작은 소도시 루트비히스하펜(Ludwigshafen)에서 시작했다.
첫 등교날, 길에서 우연히 만난 독일 학교 재학생이 왜 이 Ugly 한 학교를 선택했냐고 타박하는(?) 말에 만감이 교차했지만, 결과적으로 독일을 나의 제2의 고향이라 느낄 만큼 현지살이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못난 도시라 하더라도, 유럽은 유럽. 서울살이와 다른 잔잔한 매력에 적응하며 살 수 있었다. 또 넓은 공원이나 아기자기한 카페 등 뜯어보면 귀여운 구석이 있었고 나름의 정을 붙이며 살았다. 어쩌면 이 도시를 통해서 잠시 머물다 떠날 뜨내기가 말고, 대도시에서 구경만 하다 가는 관광객 말고, 머묾과 쉼을 통해 현지에 동화되는 현지인이 되어 볼 수 있었다. 이 6개월의 시간이 지금의 나의 여행의 근간이 되어준 것은 분명하다.
많은 이유로 지역 선택에 대한 고민을 앞둔 이에게,
독일에서의 소도시, 시골 교환학생 살이의 장단점을 몇 가지 풀어보고자 한다.
1. 저렴하고 넓은 기숙사
내가 배정받은 학교는 기숙사를 제공해 주었는데 주방, 화장실 공유로 2개의 방이 있는 2인실이 한 달에 315유로 (한화 약 45만 원) 정도였다. 세탁기, 냉장고 다 들어있고 내 방도 따로 쓸 수 있는 쾌적한 기숙사가 저렴한 가격에 제공된다는 것은 학생으로서 매우 매력적인 요소였다. 보통의 경우라면 저렴하고 넓은 기숙사에는 높은 경쟁률이 따르지만, 여기는 소도시.. 기숙사를 신청하는 사람들도 적었고,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어 안전은 물론, 방의 크기도 넉넉했다.
2. 현지 가게 발견
메인 도시의 상권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리하는 대기업 브랜드들이 대다수다. 물론 유명 프랜차이즈들이 근처에 있다는 건 꽤나 유용하고 편리하지만 어디에서나 만나기 쉽다. 즉, 특별함이 부족하다.
서울에서도 개인카페, 개인상점들을 잘 찾아다녔던 나로서는 오래 자리하고 있는 이 지역만의 특색 있는 현지 가게들을 만나는 순간이 더 귀하고 즐겁게 느껴졌다.
3. 오롯이 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생각할 수 있다.
나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유명 관광지 갈 때마다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도착하기 전부터 줄기차게 찾아본 각종 정보(블로그, 유튜브, 인스타 등)들로 인해 무엇이 유명하고, 뭐 때문에 예뻐서 사진이 잘 나오고, 이곳은 꼭 가봐야 한다 등 타인이 잘 정리하고 소개해준 콘텐츠를 통해 이미 그 장소에 대한 인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런 정보 없이 마주하고 감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는 걸 느낀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시골, 특히나 유명하지 않은 지역의 매력은 내가 이 동네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목적지가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건물과 풍경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고, 우연히 방문한 카페와 음식점에서 소울 푸드를 발견할 수 있다. 오롯이 나만의 시선과 발걸음으로 선택한 나의 여정을 꾸려가 볼 수 있다.
4. 현지인의 삶
관광지와 동떨어진 동네다 보니 내추럴함이 가득 묻어나는 사람들과 함께 자연스레 동화된다. 막연한 현지인들처럼 아침이면 산책을 하고 오후가 되면 슈퍼에서 장을 보고 밥 해 먹고 피곤하면 잠에 든다.
여행지에서의 나는 너무도 이방인이라, 현지인의 삶에 무심했고 여행이라는 목적을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라 그들의 삶에 녹아들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곳 독일 소도시에서는 꼭 가봐야 할 맛집도, 인생 관광지도, 화려한 기념품샵도 없는 거주지 그 자체였고, 비로소 나는 현지인들의 삶을 궁금해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노을이 지는 오후 무렵에는 초등학생들이 나와 집 앞 들판에서 축구를 하고 있으며, 트램을 타고 퇴근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훔쳐볼 수 있었다. 일요일이면 주변 성당에서 삼삼오오 모여있는 교인들과 날 좋은 날 카페테라스에서 동네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독일 사람들의 삶의 면모를 곳곳이 돌아볼 수 있었다.
여행이라는 요소를 비워냈기에 비로소 그들의 삶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5. 온전히 느끼는 쉼과 여행
독일 소도시는 대체적으로 잔잔함과 여유로움이 깔려있다. 사람이 적고, 밤이면 각자 집으로 들어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큰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분명 외국에 있음에도 집에서 느꼈던 편안함을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무료하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주변 대도시 혹은 관광지로 떠날 계획을 세우게 한다. 하지만, 주변 대도시나 관광지에 놀러 갔다 오면 집에 대한 반가움은 더더욱 커진다. 내가 온전히 쉴 수 있는 곳은 이곳뿐이란 걸 온전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때가 진짜 집과 동네에 정을 만들고 정착하는 과정이 된다.
독일에서 지낸 6개월은 나에게 독립의 꿈을 이루어줌과 동시에 심어주었다. 혼자서 장을 보고 밥을 해 먹고 스스로 집안의 것들을 채우고 비우는 과정을 통해서 온전한 나의 하루를 돌보는 방법을 배웠다. 이 방식이 성인이라면 응당 해야 할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물론 겨울이 되면 지독히 외롭고, 춥고, 무료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독립의 재미를 느끼고 자립심을 키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다른 어디도 아닌 독일이었기에 편하게 독립의 첫 발을 뗄 수 있었고, 좋은 기억들을 얻고 갈 수 있었다.
서울을 벗어나 첫 소도시 생활이었지만 작은 마을이 주는 안정감과 아늑함에 힘껏 의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대도시가 아닌 그 외의 지역이라 할지라도 볼거리가 많고 숨은 나만의 명소를 찾아가는 재미를 얻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나의 세상이 더 넓어진 기분이다.
'헤맨 만큼 자기의 땅'이라는 말처럼 실컷 헤매고 떠돌아본 경험이 앞으로 헤맬 날들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고 시도해 볼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앞으로 갈 곳, 그리고 떠나온 모든 곳에 축복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