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캐나다에서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북극곰 먹이 주는 일을 한다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이민자의 서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자신의 나라를 떠나 캐나다로 온 사람들은 이민 서류, 직장, 주거지, 기타 등등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힌다. 그런 이들을 돕기 위해 다양한 공공기관이 존재하고, 정부는 이 기관들이 문제를 보다 잘 해결해 줄 수 있도록 다양한 워크숍을 주최한다. 이번 워크숍의 주제는 ‘이민자들이 지니고 있는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였다. 여러 도시의 다양한 비영리 기관들과 정부 부처가 모여 교육을 듣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건 각 정부 부처와 공공 기관마다 이민자에 대한 정의가 제각각이라는 사실이었다. 어떤 기관은 난민도 이민자라 일컬었고, 또 어떤 부처는 영주권이 없어도 캐나다 안에 있으면 이민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다 보니 이민자의 트라우마라는 같은 주제를 놓고 토론하면서도 한쪽에서는 난민이 겪는 문화충격 트라우마를 이야기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학생 비자로 머무르는 사람들이 겪는 언어 트라우마를 말했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그들의 눈빛을 읽고야 말았다.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하는 어리둥절한 눈빛을 말이다. 의사소통의 가장 큰 장애는 바로 이런 착각이다. 각자가 다르게 정의 내린 단어를 가지고 서로가 같은 대상을 가르키며 얘기하고 있다는 착각.
나 역시 이런 착각 속에 수많은 연애를 말아 먹었다. 내게 있어 애인이란 기쁘거나 슬프거나 항상 함께하는 사람이지만, 전 여자친구에게는 각자의 자리에 있다가 때때로 만나 편히 쉴 수 있는 상대를 뜻했다. 나에게 슬픔이란 나누면 반이 되는 감정이지만, 전전 여자친구에게는 혼자서만 간직하고 싶은 비밀이었다. 내 머릿속 남사친은 으슥한 밤에 내 여자친구를 불러내 술 마시며 기회를 노리는 나쁜 멍멍이 새끼지만, 술을 안 마시던 전전전 여자친구에게는 화창한 낮에 만나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떠는 친구에 불과했다. 남사친은 무조건 안 된다는 나와 그게 왜 잘못됐냐고 따지는 그녀와의 논쟁 속에서는 답이 있으려야 있을 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남사친의 정의를 두고 괜한 싸움을 벌였을 뿐이다.
이다음에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생긴다면, 둘만의 방식으로 우리만 아는 특별한 감정을 새롭게 정의하고 싶다. 사랑이란 무엇인지부터 우리가 흔히 쓰는 작고 가벼운 단어들까지도. 이를테면, 토요일은 ‘파스타 먹는 날’. 산책은 ‘손잡고 매일 밤 하는 루틴’. 여름은 ‘하루에 한 번 무조건 바깥에 나가야 하는 계절’. 겨울은 ‘붙어 있어 따뜻하니 다행인 시간’. 서운함은 ‘먼저 일어났는데 깨우지 않은 것’. 사랑은 ‘끝까지 내 편 들어 주기’.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착각 속에서 헤매는 대신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걸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