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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ㅐ즈애플 Aug 09. 2022

모텔 같은 예식장 나는 반댈세


    삼십 대 중반이 되니 결혼식 문화와 관련 제도에 꽤 많은 관심이 생겼다. 이곳 캐나다는 여러 인종이 모여 살다 보니 결혼식 문화도 출신 국가에 따라 제각각이다. 마을 잔치처럼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성대하게 결혼식을 여는 집안이 있는가 하면 스몰 웨딩으로 가족과 친한 친구들만 초대하는 커플도 있고, 신랑의 부모가 비용을 대서 국경 너머 멕시코나 카리브해 섬까지 날아가 결혼 겸 여행을 즐기는 가족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다양한 결혼 문화를 눈여겨봐도 한국만큼 복잡 난해한 룰을 가진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상견례부터 시작해서 궁합에 택일은 기본이요, 신부 측에서 시댁으로 현금 예단을 보내면 그걸 또 반띵해서 돌려줘야 하는 미덕까지. 생각만 해도 어질어질 하지만 그렇다고 이 모든 걸 모르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결혼은 나와 사랑하는 사람 둘만의 식이 아니라 집안끼리의 만남이기에 양측 어르신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 복잡 미묘한 사항들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집안의 분위기나 문화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마음 상하기도 쉽다. 한마디로 난리 살사 디스코 차차차다. 


    옛날에는 저런 살사 차차차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까다로운 규칙과 세부 사항이 있는 게 오히려 다행이지 싶다. 결혼으로 배우자의 연을 맺고 평생을 살아간다면 생전 처음 맞닥뜨리는 수많은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의 대부분은 답이 없기 마련이기에 머리를 맞대고 정답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다지도 복잡하고 정교한 한국의 결혼식 문화는 실전에 돌입하기 전, 함께 의지하며 문제를 풀 준비가 된 사람인지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연습문제인 셈이다. 


    특히나, 나에게 있어 결혼식 장소를 결정하는 문제는 훌륭한 모의고사처럼 느껴진다. 나는 우리 캐나다 아부지 집 뒷마당에서 결혼식을 올릴 생각이다. 미래의 신부와 함께 마당을 장식하고 음식을 준비하며 취향을 맞춰 보고, 결혼식에선 서로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누가 누구를 얼마큼 더 사랑하는지 겨뤄 본 후, 피로연에서는 함께 살사를 추며 우리 사랑이 얼마나 끈적한지 하객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 그런데 만일, 나의 아내 될 사람이 예식장에서 결혼하고 싶어 한다면 몹시 당황스러울 것만 같다. 예식장은 정말이지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예식장에 갈 때마다 묘한 불편함을 느낀다. 뭐라고 해야 하나. 모텔 대실 같다고나 할까? 이전 커플이 뒹군 흔적을 지우기 위해 허겁지겁 새 시트를 씌워 둔 모텔 침대를 보는 것처럼, 하루에도 몇 건의 식을 치렀던 홀과 식탁보를 보면 괜스레 찝찝한 마음이 든다. 모텔 대실은 다섯 시간이라 한번 해치우고 또 할 수라도 있지만 예식장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냥 후딱 해치워 버리고 쫓아내는 느낌이다.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꼭 돌아오는 대답이 있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그 뻔한 대답 말이다. 나도 안다. 예식장만큼 효율적인 장소는 또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연히 그들은 틀리지 않았다. 인생의 문제는 수학 문제와 달리 한가지 답만 정해져 있지 않다. 합리적인 사람에게 예식장은 훌륭한 모범답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난, 결혼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식장에서부터 보여 주고 싶지 않다. 살다 보면 어차피 다큐멘터리가 될 텐데 시작부터 진지해질 필요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금껏 가성비를 추구하며 독거 노총각으로 살아온 나를 고독사에서 구제해 줄 여자에게는 합리적이 아닌 낭만적인 결혼식을 선사하고 싶다.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이 되어 줄 사람,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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