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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혁 강사 Feb 19. 2023

B2B브랜드 이야기

소재, 기계, 장비, 부품같은 B2B산업재에도 브랜드가 필요할까요?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광고도 별로 많이 안하는데 브랜드가 과연 필요할까요?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TSMC'하면 주문형 반도체 제조업체의 최강자, 'ASML'하면 반도체 EUV장비의 최강자로 떠오르는데 이것들은 브랜드가 아닌 업체명이잖아요? B2B업체가 브랜딩을 하는 이유는 첫번째, 그 분야의 탑티어 (Top Tier:  가장 높은 등급)임을 보여주는 '간지','뽀대'인 것 같습니다. 그 명성과 역사, 수많은 업체들이 사용하는 높은 신뢰도. 그 이름만 들어도 살짝 쫄리는 그 느낌. 두번째, 그 소재나 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최종 소비자에게 노출되면 돈이 되는 경우, 더 고가에 팔 수 있는 경우일 것이며, 세번째, 임직원들의 뿌듯함 (가족, 친척, 친구들에게 얘기해도 다 알만한...)과 주가방어, 자금조달의 용이성등이 있을 겁니다. 지금부터 사례를 하나하나 같이 알아보겠습니다.


직접 그린 삽화

㉠ 인텔인사이드 : 1968년 7월, 반도체업체 '페어차일드'출신의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는 '인텔'이라는 반도체 제조업체를 설립했습니다. 1970년대까진 메모리반도체로 잘 나갔지만, 1980년대 일본 업체의 저가공세로 인하여 마이크로 프로세서로 방향을 틀게됩니다. 1990년대 컴퓨터를 조립해봤던 독자들은 386, 486, 셀러론, 펜티엄같은 인텔의 CPU브랜드가 익숙하실 겁니다. 그러나 이런 브랜드들은 PC의 부품이었기 때문에 컴퓨터를 잘 아는 일부를 제외한 일반적인 소비자들에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이름들이었습니다. 1991년, 인텔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됩니다. 삼성, LG, 델, IBM, 도시바, 소니, 히타찌 같은 전세계 컴퓨터 제조업체들에게 귀가 솔깃해질 제안을 했습니다. 


컴퓨터 제조업체가 인텔의 CPU를 구입하면 비용의 1%를 시장개발펀드 (MDF: Market Development Fund)에 적립시켜주겠습니다. 컴퓨터 케이스에 인텔인사이드 스티커를 붙이면  인쇄광고비용은 인텔이 전액 지불하겠습니다.


이런 제안이었죠. 인텔은 이 프로젝트에 첫 3년간 5억달러를 썼고, 10년간 무려 40억달러 이상을 시장에 뿌렸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애플 컴퓨터를 제외한 전세계의  PC 제조업체들은 인텔의 조여오는 손바닥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시장개발펀드는 여러 광고비용으로 집행할 수 있지만 기한은 고작 1년뿐이었고, 광고는 인텔의 승인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딩딩~딩딩 하며 돌아가는 '인텔인사이드' 짧은 인텔의 광고영상과 케이스에 붙어있는 '인텔인사이드'스티커는 최종 소비자에게 오랫동안 노출되면서 그들을 서서히 공략해가고 있었습니다. 50대이상의 주부가 학생용 컴퓨터를 구입할때도 삼성, LG노트북이 아니라 '인텔' 컴퓨터를 요청하게 되었고, 그외의 CPU는 비슷한 성능이라고 하더라도 소비자에겐 너무 생소해서 CPU인가? 하는 의문을 주는 정도가 되었던 것 입니다.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1991년 인텔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것을 두고두고 후회할 겁니다. 컴퓨터 업계의 헤게모니 (Hegemonie:주도권)을 인텔에게 그냥 넘겨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컴퓨터의 주요부품인 CPU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인텔'이죠.


㉡ 삼성 Wise view : 삼성이 '인텔인사이드' 캠페인을 그대로 카피했다고 봐도 무방한 사례같습니다. 1991년 인텔인사이드 캠페인이 시작된 10년뒤인 2001년 삼성전자는 자사의 LCD브랜드인 'Wise view'를 인텔의 'Intel Inside',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s'와 함께 세대3대IT브랜드로 육성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방식은 인텔인사이드와 비슷하지만 정교함은 떨어졌던 것 같습니다. LCD모니터, LCD TV, 노트북 제조업체에 일정액을 지원해 'Wiseview' 스티커를 외관에 부착하게 하는 것 이었습니다.


필자가 봤을 때 이 캠페인의 가장 큰 문제점은 CPU라는 부품과 LCD라는 부품의 차이입니다. CPU는 인텔과 AMD를 제외하면 선택할 수 있는 대체제가 전무한데 비해 LCD는 2000년대 초반 한국업체가 지배하던 시장에 대만, 중국 제조업체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레드오션으로 변해 굳이 '삼성 Wiseview'라는 브랜드를 최종 소비자에게 인식시킬 필요없이 LCD모니터, LCD TV, 노트북 제조업체가 LCD부품을 자유롭게 품질과 가격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죠. 아마도 LCD모니터, LCD TV, 노트북 제조업체의 담당자들은 콧웃음을 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텔인사이드의 사기수법을 또 쓰려고 하나?' 하면서 말입니다. 


이미지 출처 : 캐터필러사 홈페이지

㉢ 캐터필러 : 'Caterpillar'는 '애벌레'와 '무한궤도'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캐터필러'라는 업체는 건설장비 시장 세계점유율이 2021년 기준 13%로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캐터필러'라는 업체가 전세계적인 영업,서비스망을 갖추게 된 계기는 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자고로 전쟁은 전투관련 무기,장비,시스템 뿐만 아니라 유통,식품,보관,의료,건설까지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에 엄청난 기술진보를 가져다 주는 기회입니다. 미군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을 상대하는 2개의 전선에 어마어마한 물량을 쏟아부었습니다. '캐터필러'의 건설장비들은 소련의 동토, 태평양의 작은 섬, 영국의 들판등 전세계 각국에서 추축국에 대비한 군사기지와 비행장등 여러 건설과 토목공사에 사용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후, 이 수많은 장비들을 미군이 다시 미국으로 가지고 왔을까요? 1945년 종전이후 미군에서 사용되던 수많은 캐터필러 장비들은 다시 미국으로 가지고 오지 못하고 현지에 두고 왔으며 그 장비들은 현지인들에 의해 전쟁피해를 복구하는데 다시 사용되었습니다. 모든 장비는 사용하다보면 당연히 고장이 나고 소모품, 부품도 계속 필요합니다. 의도치 않게 전세계에 자사의 비용없이 샘플을 뿌리는 프로모션 캠페인을 진행한 셈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소련,영국,일본등 전세계에 대표 사무소와 공장, AS센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전세계 임직원이 10만명 이상, 연간매출은 약50조, 영업이익은 약15조 정도의 매머드 기업이 되었습니다. 


2014년 SM의 걸그룹 에프엑스 (f(x))는 '레드라이트'라는 신곡에 '캐터필러'라는 가사를 사용했습니다. "눈 크게 떠. 거기 충돌 직전 폭주를 멈춰 (멈춰). 변화의 목격자가 되는 거야 밀어대던 거친 '캐터필러'. 그 앞에 모두 침몰 할 때..." 당시 에프엑스는 이 단어때문에 KBS심의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캐터필러'가 중장비회사인 특정상품 브랜드라면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내린겁니다. '애벌레', '무한궤도'를 나타내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특정한 브랜드명이라는 거죠. 오리온이 1976년 '초코파이'라는 상표명을 등록하고도 1979년 롯데가 '롯데 초코파이'상표를 등록한 이후 20년간 대응을 하지 않다가 '보통명사화'되었다고 소송에 패소했던 사례와는 상반됩니다. 이렇게 강력한 B2B 브랜드를 보유한 캐터필러는 이 브랜드명 자체로 기본에 충실한 '신뢰성'과 '내구성', '품질보증'의 가치를 보여주는 겁니다.


㉣ 포크레인 : '상표의 보통명사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상표가 보통명사가 된 사례는 많습니다. 대표적 사례는 '버버리, 스카치테이프, 호지키스, 박카스, 대일밴드, 초코파이, 크레파스, 봉고, 워크맨, 노트북, 미원'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따로 언급하겠습니다. '포크레인'도 마찬가지 사례입니다.

이미지출처 : 유튜브

1974년생인 필자가 5~6살때인 1979년,1980년 당시 고향인 대구에도 각종 건설,토목공사가 여기저기 많았습니다. 저는 공사현상에서 움직이는 각종 중장비를 구경하면서 1~2시간을 보내곤했습니다. 특히 유압으로 움직이는 굴삭기의 팔과 '탱크'라고 알려진 전차의 캐터필러와 같은 무한궤도의 움직임은 마치 TV와 시민회관에서 봤던 '마징가Z', '로보트 태권V'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포크레인 (Poclain)은 1926년 Georges Bataille에 의해 설립된 프랑스 굴삭기 제조업체의 브랜드입니다. 1950년 최초의 유압식 굴삭기를 개발했습니다. 국내에 이 프랑스 굴삭기가 들어오면서 굴삭기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었죠. 1974년 미국업체로 인수가 되고, 한국의 공사현장에는 KOMATSU같은 일본장비와 두산, 현대같은 국산장비의 사용이 확대되어 진짜 '포크레인'은 거의 사라졌음에도 '포크레인'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B2B상표의 보통명사화' 사례가 되어버렸습니다.


㉤ 크락숑 : 필자가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인도를 여행했을때 도로에서 놀랐던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사이드미러가 없는 자동차가 거의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무단횡단이 생활화되어 있고, (무단횡단을 하면 경찰이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립니다.) 개와 소, 오토바이와 인력거, 오토릭샤, 자동차가 섞여있어 사이드미러에 부딫혀 다치거나 부서질 염려가 있으며, '곁눈질을 하며 뒤를 흘깃흘깃 보는 것은 안좋다. 부정탄다'라는 미신 때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렇듯 사이드 미러가 없다보니 인도의 트럭뒤에는 'Blow Horn', 'Horn Please', 'Horn Blow', 'Horn OK'라는 글들이 크게 쓰여있습니다. 마음껏 경적을 울리라는 뜻입니다. 운전자들은 꺼리낌없이 자신의 존재를 경적으로 표현합니다. 경적을 울리는 건 엄청나게 화가 났다는 것을 표현하는 필자에겐 머리아픈 사실이었죠. 경적은 자동차가 발명된 19세기 후반에 고무공을 눌러 나팔에 소리를 내던 단순한 방식에서 20세기초 전기모터로 구동되는 방식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에디슨의 수석 엔지니어였던 '밀리 리치 허치슨'에 의해 발명되었고, Lovell-McConnell사가 특허를 구입해 GM에 납품하면서 'Klaxon'이라는 B2B브랜드를 만들어졌습니다. Lovell-McConnell사의 설립자였던 프랭클린 헬럿 쥬니어 (Franklyn Hallett Lovell Jr.)가 '소리지르다'라는 고대 그리스어 'klazō'에서 영감을 얻어 직접 만든 브랜드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만든 '클랙슨'이 일본에서 '크락숑'으로 불리우고 이것이 한국으로 전해져 '크락숑'이 되었고 이 단어 역시 '포크레인'처럼  'B2B상표의 보통명사화' 사례가 되었습니다.


㉥ 스티로폼 : 중앙아메리카의 원주민 아이들이 질겅질겅 씹고다니던 천연 고무의 일종인 치클은 오늘날 껌의 원조입니다. 고무장갑, 고무줄, 타이어, 케이블, 벨트등 우리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 고무는 19세기 초반까지 추운 곳에서는 딱딱해져 부서지고 더운 곳에서는 고약한 냄새와 함께 부드러워져 끊어지는 큰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 단점을 미국의 발명가인 찰스 굿이어가 아주 우연히 해결했죠. 그는 1939년 고무와 황을 섞어 송진에서 추출한 기름에 찌는 실험을 하던 중 난로의 불타는 장작위로 황을 섞은 고무덩어리를 떨어트렸는데 전혀 녹지 않은 것을 봤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황법'입니다.  


2차 세계대전발발과 함께 일본은 말레이 반도등 천연고무의 주요 생산지를 장악하고 천연고무의 공급망을 끊어버렸습니다. 최근 미국이 반도체, 반도체 기술, 소재, 장비등 중국향 반도체 공급망을 끊는 것과 유사할 정도로 미국의 산업계 특히 전쟁물자생산에는 치명적인 사태였습니다. 독일은 앞선 1차 세계대전중 연합군이 우월한 해군으로 각종 자원공급을 막았던 상황에서 여러 종류의 합성고무를 직접 개발해서 사용중이었지만 미국은 일본이 조선에서 전쟁물자 생산을 위해 놋그릇까지  싹쓸이해 갔던 것 처럼 강제는 아니였지만 가정에서 쓰던 각종 고무까지 모아야만 했습니다.

위 이미지는 미국의 고무 모으기 (금모으기X) 포스터 입니다. 가스마스크는 500g의 고무, 구명보트는 8kg~45kg의 고무, 정찰용 장갑차는 139kg의 고무, 중폭격기는 828kg 의 고무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고무를 모아달라는 포스터 입니다. 당시 미국정부는하버드, MIT등 대학연구소, 석유화학회사, 고무공장과 함께 합성고무개발에 온힘을 모았습니다. 수많은 특허를 공유하며 합성고무개발을 시작한지 8개월여만에 미국은 스타이렌과 부타디엔을 합성하여 열에 강하고 단단한 합성고무를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이 합성고무 개발과정에서 열과 전기를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또 다른 소재가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스티로폼(Styrofoam)'입니다. '스티로폴(Styropor)'이라고도 불리죠? '스티로폼(Styrofoam)'은  미국 다우케미컬 (Dow chemical)의 상표명이고, '스티로폴(Styropor)'은 독일 바스프 (BASF)의 상표명입니다. 독일 바스프 (BASF)를 창업한 독일의 과학자 '헤르만 슈타우딩거'가 맛과 냄새가 없고 가벼운 폴리스티렌(PS)이라는 열가소성 물질을 추출했는데 취성이 있어서 쉽게 부서지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100여전에 독일에서 추출한 물질에 화학 연구원이었던 '레이 매킨타이어'는 부탄가스등의 탄화수소가스를 주입했는데 기포가 굉장하게 발생하며 부풀어올랐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볍고, 방수기능에 방음도 되고, 완충성과 단열기능까지 갖춘 우리에겐 '스티로폼(Styrofoam)'으로 잘 알려진 발포 폴리스티렌 (Expanded Polystyrene) 입니다. 이 단어 역시 '크락숑'처럼  'B2B상표의 보통명사화' 사례가 되는 것 같지만 스티로폼은 미국의 다국적 화학기업은 The Dow Chemical Company의 공식 등록 상표이니 공식적인 사용에 유의해야 합니다. 아! '라텍스'는 고무나무에서 나오는 정제전의 천연 백색액체를 의미합니다.


㉦ 나일론 : 필자의 아버지는 코오롱 대구공장에 오랫동안 일하셨습니다. 코오롱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부터 한국에 나일론을 독점으로 공급한 것을 시작으로 1957년에는 대구에 '한국나이롱'이라는 회사를 세워 나일론을 만들기 시작했고 사명까지 (Korea + Nylon = KOLON) '코오롱'으로 만들었습니다. 나일론은 1930년대 초반 미국의 듀퐁사 연구소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합성섬유의 재료를 유리막대에 찍어 공기중에 휘저으며 길게 실을 뽑아내며 내기하는 장난을 하던중에 하버드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다가 듀퐁으로 스카웃된 '월리스 캐러더스'가 '폴리아미드'액체를 유리막대에 찍어 허공에 돌리자 가볍고 가늘고 강한 실이 마법처럼 뽑혀나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일론'이었습니다.  

듀퐁사의 나일론 스타킹 광고 (출처: 듀퐁 홈페이지)

1938년 미국의 델라웨어에 첫 나일론 공장가동을 시작한후 첫 적용상품은 B2C용 양말과 스타킹이었습니다. 3년뒤 듀퐁에게 천금같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전쟁은 엄청난 기술진보와 돈를 가져다 주는 기회죠. 낙하산과 보온장비에 어마어마한 양의 실크가 필요한데 실크의 주요 산지인 일본과 중국은 고무의 사례처럼 2차 세계대전발발과 함께 일본에 의해 공급이 끊겼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고무처럼 '모으기'운동과 대체품 개발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일까요? 이미 대체품이 있었으니까요. 그것이 바로 '나일론'이었습니다.

직접 그린 삽화

듀퐁사의 나일론은 전투복과 양말, 무기의 재료, 철모의 외피, 소총멜빵, 낙하산, 타이어 내부의 보강재, 밧줄등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고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젊고 혈기넘치는 미군들이 전세계 여성들에게 나일론 스타킹을 뿌린 것은 물론입니다. 덕분에 2차 세계대전이후 나일론은 전세계적으로 사용이 확산되었죠. 한국에서 나일론의 일본식 발음인 '나이롱'이 '나이롱 환자'처럼 가짜를 의미하는 말로 쓰인 이유는 필자가 유추해봤습니다. 일본입장에서 보면 미국은 2차 세계대전전에 석유공급을 막아 고통을 주었고, 일본 자기들이 고무와 실크의 공급을 막으니 '합성고무'와 '나일론'이라는 진짜 천연재료를 활용한 제품이 아닌 '가짜'재료를 활용한 제품을 마구마구 찍어내 자기들을 압도하고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나일론'을 보면 그리 좋은 기분만은 아니었을 것 같고 일본을 통해 '나일론'을 도입했던 한국도 은연중에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나일론' 이 단어 역시 산업용 소재 'B2B상표의 보통명사화' 사례가 되었습니다.


㉧ 고어텍스 : 1982년 4월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은 4천명의 병력으로 자기들 바로 앞의 영국령 포클랜드에 상륙하여 영국 해병대 100여명을 제압함으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 전쟁이 바로 '포클랜드'전쟁입니다. 영국은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 지구 반대편의 아르헨티나까지 반격에 나섰죠. 당시 영국의 특수부대인 SAS는 마치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군하던 카르타고의 한니발처럼 남반구의 겨울인 5월에 눈덮힌 고산지대를 사상자 한명없이 넘어가 아르헨티나군을 관측하고 기습하는 전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이때 SAS는 '고어텍스'소재의 전투상의와 전투화를 착용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고어택스는 1969년 미국의 다국적 화학회사의 듀폰(DUPONT) 엔지니어 출신인 '빌 도어'가 테플론 소재에 열을 가하여 늘이면 절묘한 크기의 구멍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고어텍스의 이 절묘한 크기의 구멍은 수증기는 문제없이 지나다닐 수 있지만 물은 통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바깥쪽으로는 방수가 되어 물이 들어올 수 없지만 몸의 땀은 수증기형태로 배출할 수 있어 몸의 기온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소재가 발명되기 전까지 밖으로는 방수가 되고 내부의 땀은 배출하는 옷은 털가죽 옷이 유일했습니다. 1912년 겨울 노르웨이의 아문센과 영국의 스콧이 남극점 극복을 위해 경쟁을 했을때 아문젠은 에스키모가 입던 순록 털가죽 방한복을 입었고 스콧은 버버리가 개발한 트렌치 코트용 개버딘 천으로 만든 방한복을 입었는데 땀을 배출시키지 못해 그대로 방한복안에서 얼어버리는 비극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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