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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창고에서 재즈 듣기-12마디

Stan Getz - Sweet Rain

by jazzy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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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 Stan Getz


Title : Sweet Rain



Record Date : March 21 and 30, 1967


Release Date : Last week of July 1967


Label : Verve



Personnel :


Stan Getz : Tenor Saxophone


Chick Corea : Piano


Ron Carter : Bass


Grady Tate : Drum



Track Listing



1. Litha


칙 코리아의 곡으로 상당히 빠른 6/8박자 위에서 당시의 재즈 어법을 엿볼 수 있는 묘한 코드 진행이 흘러간다. 코드 간의 간격은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어서 빠른 템포 위에서 연주하기에 편리한 듯 보이지만, 6/8 박자가 4/4 박자로 메트릭 모듈레이션을 통해 바뀌면서 연주자들이 계속 긴장을 유지하도록 강제한다. 이 정도의 업템포에서 연주하는 것은 특히나 스탠 게츠에게는 드문 일처럼 보인다. 우리에게 스탠의 모습은 언제나 보사노바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한 뮤지션에게는 영광과도 같은 일이면서 보이지 않는 철창과도 같을 것이다. '보사노바 하면 스탠 게츠야'와 '스탠 게츠는 보사노바 아니면 미디엄 스윙뿐이잖아?' 란 말은 너무나도 다르다. 그러나 이 곡에서 스탠 게츠는 의구심을 씻어내듯이 6/8 박자와 4/4 박자를 넘나들면서, 그것도 빠른 업템포에서 멋진 연주를 해내고 있다. 일부러 박자를 흘리는 듯한 뉘앙스가 솔로의 구석구석에 빈번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 듣는 이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리게 할 테지만,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그는 훌륭한 비밥 언어와 모티브 솔로를 통해 다른 앨범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업템포 즉흥연주를 멋지게 해내고 있다. 아래에 영상 링크와 PDF 채보 파일을 첨부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KYfKYj812Is


그와 별개로 론 카터와 칙 코리아, 그래디 테이트의 조합이 매우 훌륭한데, 론 카터는 베이스의 근음을 다른 음으로 대체하는 한편, 자체적인 메트릭 모듈레이션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쉴 새 없이 변화시키면서 리듬과 화성 모두를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다. 6/8박자에서 2 feel과 3 feel 을 기어 바꾸듯 하고 그 변화 속에 코드의 공통음을 통한 리하모니제이션 또한 실행한다. 칙 코리아의 컴핑이 그 위에 더해지는데, 맥코이 타이너의 영향이 뚜렷한 4th Voicing 이 압도적인 정확성과 그루브로 빠른 템포의 곡 안에서 더할 나위 없는 적절함을 선보인다.


그래디 테이트는 즉흥 연주자에게 몹시 빠르고 기민하게 반응하며 리듬에 빈번하게 개입한다. 다른 드러머들에 비해 언급이 적은 것이 아쉬워 조금 첨언하자면, 그래디 테이트는 퀸시 존스뿐만 아니라 소울과 재즈, 보사노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훌륭한 이들과 함께 했던 명 연주자로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다가 방송과 영화에서도 활동했다. 종종 싱어로도 모습을 비출 정도로 다재다능했으나 어째서인지 70년대 후반부터 약 15년 정도 활동이 뜸해진 것이 아쉽다.


2. O Grande Amor


마치, '앞의 곡에서 할 것은 다 했다. 나는 그렇게 어려운 곡도 소화해 낼 줄 알았다. 더 이상 의심은 하지 말아라. 이제 내가 제일 잘하는 걸 하겠다.'라고 으름장을 놓는 듯한 선곡이다. 스탠 게츠는 1곡 만에 본업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매우, 몹시, 극도로 훌륭하게. 이 정도로 보사노바를 연주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첫 소절을 불자마자 분위기와 리듬을 장악하는 솜씨다. 단순히 멜로디를 잘 연주한다든가, 보사노바에 어울리게 살랑거리며 연주한다든가에 관한 일이 아니다. 스탠 게츠는 보사노바라는 장르에 가장 잘 어울릴만한 즉흥 멜로디를 만든다. 음 하나하나가 이전 음과 다음 음 사이에서 맺는 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적의 공간을 확보하면서 수놓아진다. 찰리 파커나 버드 파웰의 곡을 들으면 Theme 자체가 하나의 비밥 솔로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스탠 게츠의 경우는 보사노바에서 그렇다. 그가 연주하는 즉흥 연주 자체가 같은 코드 안에서의 또 다른 곡처럼 들리는 것이다. 이러한 즉흥연주에 최상의 리듬 세션이 멱살을 잡듯 곡의 주행 방향을 쥐고 흔드니, 사랑스럽지 않고는 못 배길 만한 녹음이 탄생하는 것인데, 이 곡을 몰랐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처음 만난 듯한 느낌이다.



3. Sweet Rain


Mike Gibbs 특유의 몽롱하고 길을 잃은 듯 헤매는 코드웍이 잠시 길을 가리는 안개를 만난 것처럼 흔들리다가, 몇 개의 직선적인 화성을 단서로 삼아 방향을 다시 바로잡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만약 이 곡을 소니 롤린스나 조 헨더슨이 연주했다면 매우 빽빽하고 몰아붙이는 듯한 주행감이 느껴졌을 테다. 그러나 스탠 게츠의 부드러운 톤은 상대적으로 방향감을 찾기 어려운 곡 안에서 온화한 인도자를 만난 듯해서 귀를 맡기고 듣다 보면 어느새 끝에 다다르게 된다. 어떤 화성을 만나든지 강제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슥 에둘러서 지나가듯 하는 그의 즉흥연주는 '안 되면 다음에 해'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들려서 어려움을 만났을 때의 충돌감이 크지 않다. 음을 배치하는 공간은 넓고, 음역대는 풍성하다. 그래서 서두른다고 느낄 수가 없다.


이후 이어지는 칙 코리아의 즉흥 연주는 리더보다는 좀 더 직접적이고 적극적이어서 스탠 게츠가 열어젖힌 길 위에 멋진 탑을 쌓은 듯하다.




4. Con Alma


디지 길레스피의 유명한 곡 중 하나로, 그래디 테이트가 12/8 박자 위에서 리듬을 연주하며 시작을 알린다. 앨범 전체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그의 스네어 소리는 빈번한 개입과 강한 개성을 뽐내는데 어떤 이들은 이를 리듬을 타거나 느끼는데 방해처럼 여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스탠 게츠의 부드러운 톤을 밑받침하는 일종의 부스터 역할처럼 여겨진다.


12/8박자로 시작했던 곡은 스탠 게츠의 즉흥연주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4/4로 변화하는데, 칙 코리아와 론 카터가 그에 맞는 리듬으로 재빠르게 변화한 반면, 그래디 테이트는 기존의 리듬을 계속 유지하다가 곡의 B 파트에 들어서야 합류하면서 쉽게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도록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박자를 바꾸어 가며 연주를 지속하는 것이 본 녹음의 컨셉이 아닐까 하는데, 그래디뿐만 아니라 스탠 겟츠, 칙 코리아도 즉흥연주 속에서 빈번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론 카터는 앨범의 수록곡들 중 유일하게 이 곡에서 즉흥연주를 들려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다름 아닌 엔딩. 일반적인 엔딩 형식처럼 코드와 단음을 잡아가며 브레이크를 걸고 끝나는 듯했지만, 그 배치가 다시 한번 리듬을 불러내는 요청으로서의 하이 노트를 향한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면 신선한 엔딩을 만났음에 더욱 흥미를 느끼고 다시 한번 트랙을 반복 재생하게 된다.



5. Windows


칙 코리아의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 칙의 수정 같은 피아노 톤이 빛을 발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색소폰 소리가 너무 작다. 도입부에서 벌어진 당황스러울 정도의 볼륨 저하가 이 곡에서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여하간, 스탠 겟츠는 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적당한 루바토와 섞어 연주했고, 곧바로 이어지는 즉흥 연주에서도 모티브와 공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그 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밑에서 꾸준히 움직이고 있는 것은 론 카터와 그래디 테이트인데, 이 두 사람은 마치 불씨가 꺼지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처럼 쉴 새 없이 리듬을 변주해서, 스탠 겟츠의 긴 연주가 계속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스탠의 솔로 이후 이어지는 것이 칙 코리아의 연주인데, 나는 이 연주가 녹음 당시 기준으로 26살의 청년이 해낸 것이라는 걸 믿을 수가 없다. 1967년의 낡아 보이는 시대, 본인의 리더작이 아니라는 사실 등을 고려했을 때 그가 이 곡에서 보여주는 묘기는 당황스러울 정도. 지금에 와서도 이런 수준의 테크닉과 리듬 밸류에이션을 수행해내는 뮤지션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일단은 아래에 그의 즉흥 연주 영상 링크와 PDF 파일을 첨부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sx_27eQoLYo


칙은 그의 첫 번째 코러스 연주에서 원곡의 코드 체인지를 조금 바꾸는데 Ab7과 A7이 교차하는 B 파트를 두 배 길이로 늘리고, 대신 나중에 등장하는 C 파트의 길이를 그만큼 줄인다. 이어지는 두 번째 코러스부터는 원곡의 코드 체인지를 그대로 따라간다.


그는 3/4 박자를 2/4처럼 느끼게 하는 메트릭 모듈레이션을 주 모티브로 소화해 낸다. 전혀 지루하지 않게 서사를 구축해 가면서. 말로는 쉽지만 어색함 또는 강제성, 어수룩함 따위 없이 하나의 리듬 모티브를 곡 전체에 섞어서 소화해낸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그의 상징 같은 일말의 어그러짐이나 뭉개짐 없는 속주는 이미 그 나이부터 완성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모티브 솔로와 그루핑 등의 테크닉도 능수능란한 솜씨로 종종 등장한다. 이런 어마어마한 사실을 곱씹을수록 아쉬워지고 씁쓸해지는 것이 올해 있었던 그의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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