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bie Nichols-Herbie Nichols Trio
Artist : Herbie Nichols
Title : Herbie Nichols Trio
Record Date : August 1&7, 1955 and April 19, 1956
Release Date : 1956
Label : Blue Note
Personnel
Piano : Herbie Nichols
Bass : Al Mckibbon(tracks 1,2,3,4,5,9), Teddy Kotick(tracks 6,7,8,10)
Drum : Max Roach
Track Listing
1. The Gig
다소 난해하게 들리는 인트로를 지나면 초기의 재즈를 듣는 듯한 멜로디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 아래에 깔려 있는 화성과 리듬, 구성은 본격적인 모던재즈의 색깔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한층 더 진취적인 면이 있어서 포스트 밥의 도래를 알리는 계시를 받는 듯도 하다. 맥스 로치의 드러밍은 다소 산발적인 허비 니콜스의 컴핑과 보이싱을 꼼꼼히 메꾸어 줄 뿐만 아니라 다소 정직한 움직임을 보이는 베이스까지 함께 이끌고 가는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허비 니콜스의 즉흥 연주는 몇몇 부분에서 셀로니어스 몽크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데, 테마의 멜로디를 극단적으로 재활용하는 모티브 솔로나, 선이 굵은 컴핑 보이싱, 피아노의 음역대를 전체적으로 모두 사용하는 것, 일종의 효과로서 사용되는 스케일 러닝이나 글리산도 등의 그러하다. 그러나 허비 니콜스가 몽크의 그것을 모두 가져갔다고 하기엔 어렵다(두 사람은 친구이기도 했다). 다른 것들을 다 차치하고 허비 니콜스와 몽크 두 사람에게 있어 가장 큰 공통점을 꼽는다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자신의 정체성이 확실한 곡을 써냈다는 것이다. 허비가 몽크에 비해 몹시 빛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 몹시 아쉬울 따름이다.
2. House Party Starting
제목과 곡의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질 정도로 어딘가 어둡고 음침하며 음흉한 구석이 있다. 이 분위기를 구축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우는 것은 테마와 즉흥연주를 통틀어 꾸준히 반복되는 멜로디에 있다. 테마에서는 이 멜로디가 논리적으로 전개되며 청자를 이쪽저쪽으로 능수능란하게 끌고 다니며, 즉흥연주에서는 미로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어느 시점에서 반복적으로 고개를 내민다. 다른 곡에 비해 상대적으로 리듬 섹션의 개입이 점잖은 편인데 이러한 요소도 허비의 연주가 가진 개성을 드러내는데 한몫을 한다.
3. Chit-Chatting
멤버들의 합이 업템포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는지 평가해 볼 수 있는 곡이다. 맥스 로치는 그의 이름이 증명하듯 열정적이면서도 꾸준한 템포 유지를 통해 허비가 날뛸 수 있도록 보조하는 중이고 알 맥키본 역시 다소 단순할 수는 있어도 맥스의 라이딩을 꾸준히 따라가는 중이다. 허비는 피아노의 고음역과 저음역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려고 하는 듯 중간 음역대를 생략하는 즉흥연주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는 그가 피아노에서 멜로디뿐만 아니라 음향효과를 얻어내려고 했던 시도라고 보인다.
다만 중반부를 지나면서 다소 명확히 정리가 되지 않은 듯한 파트 배분이 귀에 들리는데 이러한 부분이 아쉽지 않은 것은, 평생을 경제적 빈곤에 시달려온 허비가 본업에 충실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섣부른 추측 때문이다.
4. Lady Sings the Blues
빌리 홀리데이의 곡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곡의 작곡가는 허비 니콜스다. 테마에서 시작되는 마이너 코드의 라인 클리셰가 인상적이고, 초반의 즉흥 연주에서 허비의 16분 음표 러닝이 비밥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 유명한 빌리 홀리데이의 장엄하고 구슬픈 버전에서는 윈튼 켈리가 피아노를 담당했지만, 그것 말고, 허비 니콜스라는 걸출한 작곡가의 연주를 듣는 기분은 자못 다르다. 빌리의 노래가 모든 슬픔을 아울러 노래한다면 허비의 연주는 정확하게 단 하나의 아픔만을 꾹꾹 눌러 짚는 듯하다. 뛰어난 음악가가 주목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면 그것을 묻는 것 자체가 허비 같은 이에게는 불필요한 일인 것일까.
아래에 그의 즉흥연주 영상 링크를 첨부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yR9Eu7oo97k
5. Terpischore
앨범을 통틀어서 특기할 사실이 하나 있는데, 드럼 역시 멜로디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이 드러머가 맥스 로치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허비 니콜스의 분명한 의도에서 연유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듣는 이는 이 앨범을 통해서 음으로 이루어진 멜로디와 리듬으로 이루어진 멜로디가 하나의 언어로 통합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드럼으로 이루어지는 멜로디의 형성은 마치 구어(口語)처럼 들릴 정도로 유창하고 유연하다. 특히 라틴 리듬의 흔적이 보이는 테마의 중간 부분 연주에서는 두 명의 사람이 대화하는 것처럼 들릴 정도로 피아노와 드럼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맥스 로치는 본인의 즉흥연주에서 파트에서도 크게 무리하거나 타오르지 않으면서 필요한 부분들만을 꺾듯 리듬을 알차게 채워 넣고 있다.
6. The Spinning Song
9번 트랙을 제외하고는 이번 곡부터 알 맥키본 대신 테디 코틱이 베이스를 맡는다. 이것은 앨범의 레코딩이 한 날짜에 모두 이루어지지 않고 꽤 긴 텀을 두며 여러 번 반복된 탓으로 보인다. 알 맥키본이 점잖고 차분했다면 테디는 상대적으로 점프하는 듯한 리듬과 톤을 가지고 보조한다. Dominant 7th 코드에서의 #11이 타겟 노트처럼 쓰이며 반복되는 독특한 화성 구조를 가진 곡이다. 템포는 그다지 빠르지 않으며 4박자의 마디에 2박이 추가로 붙어서 편안하게 느껴지기 쉬운 기존의 리듬에 묘한 긴장감을 섞어 넣는다. 허비의 즉흥 연주도 그렇게 밀도가 높지 않으며 빈 공간에 몇몇 점을 찍어 넣듯이 모티브에 천착하여 음악적 효과에 가까운 타건을 보여준다.
7. Query
멜로디는 이해하기 쉬운 듯 들리지만 그것이 오히려 낯선 느낌을 만들어낸다. 익숙한 것이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데서 나오는 묘한 분위기가 그것이다. 본 앨범의 몇몇 곡에서도 그러하듯이 드럼이 혼자서 곡을 끝내는 구성이다.
8. Wildflower
어째서인지 2번 트랙 'House Party Starting'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데 허비의 피아노는 한결 더 산뜻하다. 즉흥연주에서도 극단적인 모티브 천착보다는 보다 자유로운 접근을 통하여 다양한 스타일의 멜로디와 리듬을 보여주고 있고, 테디 코틱의 솔로도 들을 수 있어 여러모로 흥미를 느낄 수 있다.
9. Hangover Triangle
포스트 밥의 색채를 물씬 풍기는 곡. 업템포에서 허비가 능수능란하게 본인의 수수께끼 같은 곡을 풀어헤친다. 모티브 솔로뿐만 아니라 코드의 사이를 연결하는 음들을 부드럽게 연결하며 특유의 색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그가 훌륭한 작곡가 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맥스 로치와 함께하는 트레이드 파트 역시 그의 화려한 컴비네이션을 즐길 수 있어 세 사람(이 곡의 베이시스트는 알 맥키본이다)의 합이 수월하게 펼쳐지는 장면을 즐기기에 좋다.
10. Mine
앨범에 수록된 곡들 중 유일한 스탠더드 넘버. 조지 거슈윈의 곡이지만 다른 곡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뮤지션들에 의해 다뤄진 횟수가 적다. 허비 니콜스는 이 아름다운 곡에서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어 예쁘장한 톤을 뽐낸다. 이전의 아홉 곡과는 판이하게 즉흥연주에서도 편안하며 이해하기 수월한 멜로디를 연주한다. 물론 특유의 스케일 러닝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허비는 스탠더드 연주에서도 충분히 매력 있는 개성을 뽐낼 수 있는 사람이었을 테다. 다만 그것에 힘을 쏟기에는 내면의 것들이 너무나도 아우성을 쳤을 테고, 허비는 몸부림을 치면서 그 시리고 추운 뉴욕의 1950년대를 힘겹게 숨 쉬며 보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