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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화 Sep 20. 2017

딸을 잘 키운다는 것

딸바보들에게 묻다

“딸들이 나중에 커서 어떻게 살길 바라세요?” 제 교육을 수강한 엄마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문득 물었습니다. 저 말고 다른 분들은 다 딸을 키우고 있었기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제 질문에 여러 답변이 나왔습니다.


“살아보니까 열심히 경쟁해서 공부하고 취업하고 그런 거 의미 없는 거 같아요. 특히 여자한테는요. 그래서 저는 딸한테 공부하라고 닦달 안 해요. 결혼하고 소소하게 자기 하고 싶은 일 병행하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워킹맘이다 보니까 우리 딸은 이렇게 안 살았으면 해서 결혼 안 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남편이 육아 때문에 퇴사하는 여자 직원들 보면서 “딸은 기껏 잘 키워 놔도 ‘가성비’(?)가 안 나오는 것 같다”고 하는 말 듣고 서운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해도 별 대안은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교사하라고 할 것 같아요” (역시 선생님이 최고라고 다들 수긍)


‘여자 직업으로는 교사가 최고다’ 이 말을 아직도 듣게 될 줄 몰랐습니다. 20년 전 학창 시절 때 어른들한테 자주 듣던 말이었거든요. 시대는 많이 변했지만 여성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경험했지만 그래서 더 행복한 어른이 되었을까요. 자신의 엄마 세대와는 뭔가 다를 거라고 믿고 달려온 여성들이 경험한 것은 직장생활에 육아, 가사까지 얹힌 이중노동의 늪이었습니다.  



“저는 그냥 아무런 압박 주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하며 살게 하고 싶어요. 뭐든 하고 싶은 대로요.” 



착잡한 공기를 뚫고 한 분이 자기 생각을 꺼냈습니다. 답을 정해주는 것보다는 좀 더 관대하고 열려 보이는 의견입니다. 



자유로운 선택… 저는 문득 ‘우리 사회에 한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이저러스에서 본 한 광경이 떠올랐거든요. 7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터닝메카드 진열대 앞에서 계속 서성이자 아이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죠. “너는 왜 만날 그렇게 남자애들 좋아하는 것만 찾아대니. 그러면 너 친구들이 너랑 안 놀아줘” 우리는 때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내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선호해야 하는지 주입받습니다. 아이들은 어리다는 이유로 더 가차 없이 자기 선택을 무시받습니다. 



어디서 굴러온 책인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아들에게 ‘피터팬’을 읽어주다가 너무 화가 나서 책을 던져버릴뻔 했습니다. 자기 그림자를 잃어버렸다며 별안간 웬디 방을 찾아온 피터팬. 웬디는 피터팬의 그림자를 꿰매 주고(?!) ‘네버랜드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주지 않을래?’라는 처음 보는 남자의 제안을 수락(?!) 하여 네버랜드로 갑니다. 도착하자마자 웬 화살에 맞는데 알고 보니 웬디를 질투(?!)한 팅커벨이 도모한 짓이었지요. 어린 시절 제게 꿈과 희망의 동화였던 피터팬이 여성에 대한 잔혹동화로 느껴졌습니다. 독자의 절반인 여자아이들에게 이 동화는 무슨 짓을 한 걸까요. 



화석처럼 오래된 동화 속에서, 사람들의 말속에서, 태어나서 제일 먼저 접하는 ‘뽀로로’의 맨날 쿠키만 굽는 소심한 친구 루피의 모습 속에서 여자 아이들은 자신의 고유성보다 밖에서 주입된 여성성을 먼저 길러 나갑니다. 이런 고정관념은 남자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일어납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딸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란 우리 기대보다 훨씬 제한될 수 있는 것이지요.



남자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알게 모르게 먹고사는 일(생계)을 준비하도록 키워지는 반면, 여자아이들은 이 험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남는 일(생존)을 굉장히 강조받으며 자라납니다. ‘밤길 조심해야 돼’, ‘몸가짐 바르게 해야 돼’, ‘(누군가의 미움을 사지 않도록) 말 예쁘게 해야 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듣습니다. 세상은 분명 안전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는 위험을 대비시키고 자녀를 지킬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방점이 어디 찍혀 있느냐는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위협에 한껏 움츠러들 수 있는 민감성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지혜와 힘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딸이 자기는 소소하게 사는 거 싫다고 빡세게 노력해서 성공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
나이도 아직 어린데 남자친구랑 너무 너무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
우리 딸들이 우리가 그랬듯이, 여자한테 좋은 직업이라는 이유로 선생님 하기는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요?




앞날은 전혀 예측할 수 없고, 아이들의 미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을 허용할 수 있겠습니까? 여성으로 사는 위험과 고민 속에서도 자기 길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고요 저편에서 지켜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다른 누구보다 그녀의 엄마, 이 세상의 동지로서요.







엄마가 딸에게  (양희은)


난 잠시 눈을 붙인 줄만 알았는데 벌써 늙어 있었고
넌 항상 어린아이일 줄만 알았는데 벌써 어른이 다 되었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너에게 해줄 말이 없지만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마음에 내 가슴속을 뒤져 할 말을 찾지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난 한참 세상 살았는 줄만 알았는데 아직 열다섯이고
난 항상 예쁜 딸로 머물고 싶었지만 이미 미운털이 박혔고
난 삶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기에 알고픈 일들 정말 많지만
엄만 또 늘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내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지

공부해라 그게 중요한 건 나도 알아
성실해라 나도 애쓰고 있잖아요
사랑해라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
나의 삶을 살게 해줘

공부해라 아냐 그건 너무 교과서야
성실해라 나도 그러지 못했잖아
사랑해라 아냐 그건 너무 어려워
너의 삶을 살아라

내가 좀 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했던 걸 용서해줄 수 있겠니
넌 나보다는 좋은 엄마가 되겠다고 약속해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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