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생이 탈출 대작전1
범생이.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들 중 하나가 아닐까. 이따금 “나도 학교 다닐 때는 범생이었다”고 과거를 회상하는 사람은 있지만 지금의 자신이 바로 ‘범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누가 봐도 ‘범생이’ 스타일인 전교 1등도 자신을 ‘착실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이라고 생각하지 스스로를 ‘범생이’라 생각하지는 않을 거란 얘기다.
범생이는 그렇게 기분 좋은 말이 아니다. 그래서 ‘범생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타자를 향한다. “걔? 완전 범생이 잖아”, “울 팀장님 범생이 스타일이라 속터져 죽겠어” 이런 식이다.
진짜 모범생까지 ‘범생이’ 되기를 거부하는 이유가 뭘까. ‘공부 잘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명예로운 타이틀인데. “야 이 범생아!” (야 이 공부 잘하게 생긴 사람아!)가 ‘찌질이’, ‘진상’과 맞먹는 욕으로 들리는 이유가 뭘까.
우선 범생이는 매력이 없다. ‘범생이를 그려보시오’라는 미션을 받으면 백이면 백 비슷한 얼굴을 그려낼 것이다. 무표정에 안경 쓴 얼굴. 매우 전형적인 캐릭터다. 역동적으로 살아 숨쉬는 생명체라기 보다는 사무적이고 딱딱한 공간에 어울리는 배경, 혹은 무생물 같은 느낌을 주는 캐릭터. 누가 그런 전형에 속하고 싶겠는가. 아이돌 같은 특출난 외모가 아니라도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이 있다고 믿고 싶다.
또한 범생이는 답답하다. 그들은 항상 정답과 규칙, 논리를 말한다.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어”, “너네 그러면 벌 받아”, “이렇게 하면 혼나” 몰라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닌데. 왜 그렇게 하고 싶은지 범생이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범생이 생전에 없는 단어가 있다면 “그냥”이다.
모두가 자기는 아니라고 하는 범생이를 화두로 꺼낸 이유가 뭘까. 범생이가 얼마나 비호감인지 다같이 얘기해 보자고 시작했을리는 없다. 나는 우리 모두 안에 있는 범생이를 한 번 불러내 보고 싶다. 부인하고 싶지만 가끔씩은 누구나 ‘찌질해’질 때가 있는 것처럼, 살다보면 의도치 않게 ‘진상’이 될 때도 있는 것 처럼, 누구나에게 조금씩은 있는, 때로는 인생에서 전면으로 드러나 삶의 일탈과 재미를 가로막는 ‘범생이’를 소환해보고 싶다.
이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나의 직업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의 잠재력을 깨워 삶의 의미와 목표 실현을 돕는 ‘라이프코치’로 살고 있다. 8년 전 이 길에 들어선 이후 수많은 사람들을 강의와 코칭 현장에서 만났다. 초보 코치 시절에는 내가 숙련되게 코칭만 하면 사람들이 마법처럼 슉슉 변화될 줄 알았다. 그 땐 코칭도 몰랐고 사람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사람은 마법처럼 변하지 않는다. 근육이 마법처럼 불뚝 솟아나지 않듯이.
사람들의 고민은 가지 각색이지만 진실로 원하는 것을 들여다보면 몇 개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행복해지고 싶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싶다’, ‘스트레스 안 받고 살고 싶다’ 등.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 정도 나아지는 것. 그것을 바라는 것 같다.
한 걸음 나아지는데 왜 그리 변화가 어려운 것일까. 덤벨은 조금만 노력하면 한 단계 무거운 것을 드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은데 사람은 왜 그리 변하기 어려울까.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그것이 ‘범생이 마인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해결 방법이 없어서도 아니고, 사람들이 무지하거나 게을러서도 아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한 가지 시스템에 길들여져서다. 그토록 모두 부인하지만 우리 안에 지독한 범생이가 들어앉아 있어서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해가는데 그 범생이가 우리를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 우리 인생의 문제아로 만들고 있다.
의욕은 넘치는데 범생이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글을 잘 써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잘 모르는 건 안하는 게 범생이의 특징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 “그냥” 해보려고 한다. 나 역시 아주 오랫동안 범생이로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목차’와 ‘마감’, 독자들의 반응을 미리 엄청 신경쓰고 있는 걸 보니 범생이가 분명하다.
범생이가 하는 고민은 시험을 보는 것과 같은 정답의 영역을 벗어나면 대체로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고작 프롤로그 쓰면서 이 다음에 펼쳐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하고 있지 않은가. ‘이 시리즈가 잘 되면 책으로 출간될지도 모르는데 이 단락은 빼야 되나’ 요런 계산을 하면서 백스페이스를 몇 번이나 다시 누르고 있는지 모른다. 누가 책을 내준다고 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냥” 하자 해놓고도 “그냥”을 못한다.
나는 애초에 이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었던 내 최초의 욕구에 충실하고 싶다. 그리고 그게 어떻게 펼쳐져가는지 지켜보고 싶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고, 내 관심과 진심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실험해보고 싶다. 이제 죽는 날까지 시험 같은 건 치고 싶지 않고 모든 것에 실험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이제부터 범생이의 모든 것, 그리고 범생이 탈출에 필요한 모든 방법을 샅샅이 뒤져볼 작정이다. 그게 이 시리즈의 목차다.
* 이 글은 1인 기업가들의 비즈니스 매거진 'B WITH' (www.bwithmag.com)에 연재되는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