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생이 탈출 대작전 시리즈
범생이 탈출에 나서기 전에, 먼저 누가 범생이인지 정의부터 다시 내리고자 한다. 범생이 이미지가 안경 쓴 바른 생활 사나이 같은 표준화된 모습일지라도, 우리가 살면서 만난 범생이들은 저마다 다르기에 출발점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
올해 초 쯤, 한 지인 분께서 새해 계획이 어떻게 되냐고 묻기에 나는 ‘책을 한 권 쓰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제목이 뭐냐’고 하셔서 수줍게 나만의 타이틀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범생이 탈출 대작전’이라고.
약간 새롭지만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시면서 그 분은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는 새치기 하는 거, 그런 거는 좀 안했으면 좋겠더라고요.” ‘응?? 아, 내가 하려는 얘기가 뭔가 ‘인생 막 살아도 된다 → 공중도덕을 탈출하자’ 그런 뜻으로 들리는구나’ 하고 그 때 처음 깨달았다.
새치기는 경범죄에 해당한다. 경범죄도 범죄다. 걸리면 10만원 이하의 벌금도 내야한다. 아무렴 ‘범생이를 탈출하자’고 ‘범죄도 막 저지르자’고 할 리가 있겠는가. 난 그 정도의 배짱은 없다.
아마도 대부분의 범생이는 실제로 법을 잘 지키고, 예의범절도 바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다같이 사는 사회에서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굳이 탈출을 할 필요가 없다. 요즘 그런 사회적 약속을 안 지켜서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이 한 둘인가. 범생이가 얼마나 미련하고 답답하든,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람한테 막 대하는 이들보다는 범생이가 백배 낫다.
그런데 내가 말하고 싶은 범생이는 그런 ‘예의 바른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얼마 전 이 연재의 프롤로그를 공개한 후, B WITH 매거진 필진으로 함께 활동하는 김진희 변호사가 내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우리의 모습을 범생이라는 관점에서 흥미롭게 풀어주었다’고 추천을 해주셨다. 정말 고마워서 ‘감사하다’고 댓글을 적으며 ‘변호사님은 제 기준에서는 범생이가 아닙니다ㅎㅎㅎ’하고 농담을 적었다.
사법고시를 통과한, 누군가의 입장에서는 우주에서 제일 공부를 많이 했을 것 같은 사람이 왜 범생이가 아닐까. 그녀는 1인 기업가들의 모임과 매거진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런 활동들은 통상적인 법조인의 삶에서는 굳이 안해도 되는 일에 속한다. 아마 그 분의 주변에서도 ‘왜 그런 걸 하냐고’ 묻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우연히 김진희 변호사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전형적인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여러 이유로 몇 년 전 독립을 했다고 한다. 독립과 동시에 그녀는 자신에게 ‘1인 기업가’라는 정체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1인 기업가들과 연결되기 위해 새로운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사실 변호사는 역사적 출현과 동시에 개인으로 활동하는 ‘1인 기업’으로 존재해온 직업이다. 그러나 그 세계의 많은 이들은 ‘변호사는 변호사’라며 다른 카테고리와 섞이길 거부하고 높은 진입 장벽을 유지하길 원한다. 그녀는 달랐다. 계속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며 자유로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길을 택했다.
자신이 인생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사람,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고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지 분명하게 아는 사람은 범생이가 아니다. 그것을 아는데서 그치지 않고, 용감하게 선택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이미 범생이 대열에서 탈출한 것이나 다름 없다.
사실 김진희 변호사가 독립 이후 얼마나 행복하고 살아있다고 느끼며 사는지는 안 물어봐서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다른 이들이 하던대로(‘변호사는 변호사지’), 세상이 권하는대로(‘돈 되는 일부터 해’) 살라는 외부 세계의 규율을 그녀가 깨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리하자면, 범생이는 공부를 범접불가 수준으로 잘하거나 규칙을 잘 지키고, 예의가 바르거나 끼가 없어서 놀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범생이는 외부 세계와 자신의 내면이라는, 인간을 움직이는 거대한 두 동인 사이에서 일관 되게 외부 세계의 룰을 따르는 사람이다. 외부 세계의 룰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정말 그것이 맞다’고 인정하거나, ‘따르겠다’고 결심한 적이 없는데 남도 계속 자기한테 그렇게 하라고 종용하고, 자신도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믿어버린 온갖 법칙이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
자식은 부모 말을 잘 들어야지
부모는 자식을 위해 희생해야지
사람은 열심히 일해야지
행복하려면 돈이 많아야지
외부세계의 규율은 너무 깊고 많고 복잡해서 앞으로 차근차근 설명을 해야겠다. 다만 한가지 구분할 수 있는 분명한 차이는 외부 세계는 언제나 자신에게 ‘너는 ~~해야한다’고 말하고, 자신의 진정한 내면은 ‘나는 ~~ 하고 싶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범생이는 ‘너는 ~~해야 한다’고 말하는 외부 세계의 지령에 언제나 의심 없이 ‘YES’ 한다. 더 안타까운 점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그게 자신이 원하는 거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욕구에는 눈이 어두워도 타인이나 조직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는 너무나 잘 아는 게 범생이의 특징이다. 외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 그 기대에 못 미칠 때 시험 망친 학생처럼 좌절하고 ‘다음에는 꼭 만점을 맞으리라’ 다짐하며 완벽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이 범생이다.
인생의 채점은 누가 하는가. 죽기 직전에 ‘참 잘 살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종국에 만족시킬 사람도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한 평생을 범생이로 사는 것은 머리 터지게 공부하고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힌 답안지를 제출하는 것과 같다.
범생이는 누구인가. 우리 모두 조금씩은 범생이다. 어쩌다 가끔 범생이기도 하고 한평생 범생이를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각자가 얼마나 범생이든, 범생이를 탈출할 가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