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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정화 Jul 19. 2019

당신의 직업은 몇 개인가요?


어느 날 아이가 물었습니다.


“엄마, 왜 이모는 집에 있어?” 



거의 매일 만나서 새삼스러울 게 없는 이모에 대해 아이가 갑자기 질문을 던지니 저도 조금 당황했어요. 아무래도 제 7세 어린이와 올해 초등학생이 된 조카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간 것 같았습니다. 전업으로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제 동생은 첫째가 중학생 정도 되면 “엄마는 왜 일 안하냐”고 물을 것을 긴장하며 대비해왔는데 그 시기가 생각보다 훨씬 앞당겨졌나 봅니다.



“응? 집에 있다는 게 무슨 말이야?” (알면서도 모르는 척 되물었습니다)



“왜 이모는 일 안 하냐구~” (역시 제 짐작이 맞았습니다)



“이모가 왜 일을 안 해. 이모는 아이를 키우고 집안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잖아.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지금은 엄마 역할을 열심히 하는 게 이모의 일이야"



“그럼 엄마는 일이 두 개야?”




동생만큼 정성껏 살림꾼 역할을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 찔리는 마음이 들면서도 아이의 질문이 너무 귀여워서 저는 웃었습니다.



“그럼! 사실 엄마는 일이 여러 개야"



“뭐뭐 있는데?”



“지안이 엄마도 하고 있지, 아빠의 제일 친한 친구도 하고 있지, 우리집 관리도 하고 있지, 사람들 가르치는 일도 하고, 코칭도 하고, 글도 쓰고, 어떻게 하면 사업을 키울까 고민하는 사장님 역할도 해야되고, 일이 너무너무 많아~”



“그렇구나"



Photo by Brooke Cagle on Unsplash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아이와 처음으로 나눠본 대화였습니다. 7세 어린이가 “왜 이모는 일을 안 하느냐"고 묻는 것을 보면, 세상을 잘 모르는 어린 아이도 ‘일이란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분명 어느 정도는 맞는 생각입니다. 어른들 스스로도 대부분 그렇게 믿고 있고, 이 사회도 직업을 그렇게 정의하고 있으니까요. 아이를 돌보는 주부는 ‘비경제활동인구’에 들어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역할을 부모가 아닌 사람에게 일임할 때 생기는 외부 효과는 여기에 반영되지 않지요.




그러나 아이들이 성인이 된 세상은 노동시장과 직업 세계가 어떻게 변화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확실한 것은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생활의 깊숙한 영역까지 대부분의 일들을 인공지능이 처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던 일들을 모두 기계가 하게 되면 인간은 어떤 일을 하게 될까요?




Photo by Alex Knight on Unsplash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세계의 공포와 환상을 동시에 그려내면서 ‘일’의 범위를 확대할 필요성을 제기합니다. 그래야 컴퓨터와 로봇이 기존의 일을 대체 하더라도 일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저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남깁니다. “수 십억명의 부모가 자녀를 돌보고, 이웃이 서로를 보살피고, 시민들이 공동체를 조직하는 가치 있는 활동들이 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사고를 전환해, 단언컨대 아이를 돌보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돈 버는 일 때문에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 세상에서, 한 명 한 명의 귀한 인간을 길러내는 일의 중요성을 인정해 주는 세상, 사람의 삶에서 의미와 공동체의 추구가 어떤 것보다 가치있게 여겨지는 세상이 오기를 바래봅니다. 구직난은 사라지고,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하는 일이 모두 직업이 되는 세상. 30년 후 아이가 제 나이쯤 되었을 때 그런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지안아 잘 지냈어? 어디야?”


“엄마도 잘 지냈어요? 저는 집에서 일하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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