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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Dec 29. 2022

‘미국에서 맞는 첫 크리스마스’의 악몽 (2)

D+145 (dec 24th 2022)

크리스마스이브 아침이 밝았다. 밤새 추위에 떨며 자서 그런지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반려견 디디는 야외 배변을 하는 탓에 아침 일곱 시부터 산책을 나가야 한다. 눈은 10센티가량 쌓이고 기온은 영하 20도인데! 디디도 추운지, 배변만 하더니 집 쪽으로 몸을 확 틀어서 들어가려 안달이다. 기다려라, 배변 봉투는 버려야지. 서둘러 쓰레기통에 배변 봉투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거실과 작은 방의 온도계를 확인해 보니, 거실은 6도, 작은 방은 영하 1도다! 아무래도 이건 정상일 수가 없다. 크리스마스이브지만 관리사무소에 연락했다. 긴급 수리는 24시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하자 자동응답이 받는다. 히터에서 찬 바람이 나오고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한 십 분 정도 지났을까? 매니저가 전화를 걸었다. 금방 오겠다고 한다. 다행이다.


아이와 아내는 안방에서 히터를 틀고 있고, 나는 거실에서 매니저를 맞았다. 꽤 젊은 친구가 와서 부엌에 있는 보일러실을 열고 보일러를 살펴본다. 알고 보니 가스보일러가 히터의 공기도 데우고 온수도 데우는 거였다. 보일러 불이 꺼져 버려서 공기가 데워지지 않으니, 퍼니스라 불리는 히터에선 찬 바람이 나오고,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는 거였다. 젊은 매니저는 보일러에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해 땅바닥에 엎드렸다가 드러누웠다를 반복하더니, 마침내 보일러를 고쳤다고 하고선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그리고는 보일러가 예열을 하는데 한 1시간 정도 걸리니까 그러고 틀어보라고 얘기해 줬다.


한 시간이 지났다.


조금 따뜻한 물이 나오는 것 같더니, 더 이상 뜨거워지지 않는다. 히터에선 여전히 따뜻한 바람이 나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보일러에 붙었던 불이 다시 꺼진 듯했다. 순간 가스냄새가 확 나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만약 보일러를 오늘 안에 고치지 못하면 지낼 곳을 찾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일단 관리사무소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나이가 더 많은 매니저가 방문했다. 또 보일러를 켜기 위해 땅바닥에 엎드려 있길 20여 분, 안 좋은 소식을 전한다.


‘내가 스타트 버튼을 누르고 있을 때만 보일러가 켜져 있네. 아무래도 부품을 갈아야 할 것 같아.’


‘바로 고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지금은 부품이 없어. 빨라도 월요일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전기 히터 충분히 있어?’


‘아니, 많이 없어. 라디에이터 히터 하나랑, 작은 온풍기 하나.’


‘그래? 그럼 힘들 텐데… 그럼 모델 하우스에 들어가 있을 수 있을지 알아볼게.’


관리사무소에서 운영하는 모델 하우스가 단지 안에 있는데, 거기에 이틀 동안 있을 수 있는지 알아봐 준다고 하더니, 자신의 매니저에게 전화했다. 다행히 이불과 수건만 챙겨 오면 지낼 수 있다고 한다. 매니저는 거기는 수도나 난방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다시 오겠다고 하고선 집을 떠났다.


크리스마스이브부터 크리스마스 다음날까지 집을 강제로 떠나 있어야 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밖은 영하 20도에 집을 나서자마자 속눈썹이 얼 지경인데 말이다. 하지만 어쩌나. 일단은 안방에서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뭐지? 하며 당황하고 있는데, 두 시간이 다 되어 갈 무렵 매니저가 다시 집에 방문했다.


‘모델 하우스도 동파가 돼서 지낼 수가 없을 것 같아. 하지만 내가 부품을 구해 왔어. 금방 고쳐줄게.’


매니저는 보일러 부품을 교체하는 작업을 한 시간 정도 했다. 엄청 낑낑 대면서 가스 새는 것까지 꼼꼼하게 체크해 주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수리를 완료했다.


‘한 시간 뒤에 다시 올게. 예열하는 동안만 기다려줘. 내가 물도 틀어보고, 히터도 틀어보고 난 뒤에 이상 없는지 다 확인할 거야.’


그리고 한 시간 뒤에 매니저가 다시 방문해 히터도 점검하고 온수도 점검했다. 가스 새는지도 다시 확인해서 렌치로 다시 한번 꽉 잠가 주었다. 모든 작업을 마치자 저녁 6시. 하루가 다 가버렸다.


매니저는 사실 휴가 중이었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휴가를 반납하고 하루종일 우리 집 보일러를 수리하기 위해 낑낑댄 것이다. 아내와 나는 너무 고마워서 작은 선물을 하나 챙겨주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어떻게 보면 악몽과 같은 24시간이었다. 어쩌면 가장 행복해야 하는 크리스마스 연휴에 혹한과 보일러 고장으로 추위에 떨어야 했다니. 하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24시간 만에 보일러를 고치고 다시 따뜻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 무엇이 고장 나고 그걸 고치기 위한 서비스는 굉장히 힘들고 오래 걸리기로 유명하다. 특히 연휴가 끼거나 하면 정말 기다림의 연속이기에 각오하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이브임에도 불구하고 성심성의껏 수리해 주어서 다시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원망이나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감사함이 더 크다. 


물론 24시간 추위에 떨었던 것 때문에 세 가족 모두 감기로 고생하고 있지만 말이다.


Photo by Fulvio Ciccol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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