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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년수험생 jcobwhy Jan 02. 2023

‘미국에서 맞는 첫 크리스마스’의 악몽 (3)

D+147 (dec 26th 2022)

결국 크리스마스이브 날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보낸 탓에, 온 가족은 감기에 걸리고 크리스마스 당일엔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서 이불속에만 박혀 있게 되었다. 아이는 열이 38도에 기침을 계속했고, 아내나 나도 두통에 시달렸다. 도저히 무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아이는 크리스마스 예배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결국 가지 못했고, 집에서 푹 쉬기만 했다.


다행히 다음날 아내나 나는 조금 괜찮았는데, 아이는 아직 열이 계속 오르내렸다. 그래도 정신은 조금 차렸는지, 먹고 싶은 것도 조금 생기고 낮 시간 동안 제법 놀기도 해서 마음이 조금 놓인다. 아이가 돌을 막 지나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갑자기 축 늘어지는 바람에 알아차리고 응급실에 갔다가 폐렴을 발견해 치료를 받았던 경험을 한 뒤로는, 아이가 쳐지는 것만 봐도 깜짝깜짝 놀라는데, 저렇게 열이 오르는데도 기운이 쌩쌩한 걸 보면 마음이 놓인다.


아내는 엊그저께 고생한 아래층 집 인도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조금 주고 싶다면서 혼자 집 앞 잡화점에 가서 캔디 박스를 몇 개 사 왔다. 그리고 같이 내려가서 그 집 문을 두드렸다.


‘얘기 들었어. 물 새는 건 잘 해결했어?’


‘응, 다행히 잘 해결됐어. 너희 집도 보일러 고장 났었다며? 이게 무슨 일이야?’


다행히 물 새는 것은 잘 고쳐졌다고 한다. 한 시간 정도 부엌으로 떨어지는 물 때문에 거의 부엌이 물에 잠겼다 한다. 그래서 그 집, 그 아랫집, 그 아랫집까지 난리도 아니었단다. 그래도 연휴 기간에 잘 고쳐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며 서로 덕담을 하고 헤어졌다. 


갑작스러운 연휴 기간 동안의 사건 사고로 장을 보지 못해 집에 먹을 것이 거의 없었다. 감기에 걸려서 미역국을 끓여 밥을 말아 계속 먹였더니, 아이는 지겨워서 더는 못 먹겠단다. 마침 아이 기침약도 다 떨어지고 해서 약도 살 겸 나 홀로 장을 보러 마트로 갔다. 며칠 꽁꽁 언 길 때문에 걱정도 됐지만, 그래도 차도는 제설이 어느 정도 된 상태라 다닐만했다.


마트에 가서 몇 가지 야채와 고기, 냉동 피자 등을 사고, 아이의 감기약도 샀다. 미국에선 처방전이 필요 없는 약들은 큰 마트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보통 큰 마트에 약국이 함께 있는 곳도 많다. 타깃, 코스트코와 같은 마트에도 약국이 있다. 놀라웠던 건 어린이 해열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우리나라 기사에도 많이 나왔듯, 독감이 굉장히 심하다고 들었다. 다행히 집에 해열제는 조금 있는 편이어서 코감기, 기침감기약을 샀다.


집에 돌아오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어서, 아이가 먹고 싶다던 피자를 오븐에 구웠다. 목도 아프고 해서 국에 밥을 말아먹거나 죽을 먹으면 좋으련만, 먹고 싶다는 건 늘 이런 것들이다. 통통한 도우의 피자. 생각보다 미국 피자 도우가 두껍지 않아서 아이 입맛에 딱 맞는 피자를 구하기 정말 힘들다. 가장 입맛에 맞는 피자를 오븐에 구워서 막 먹으려 하는데, 갑자기 복도에서 굉음이 울린다.


‘삐융 삐융’


화재경보기다. 한국 건물에서 들리는 화재경보기 소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귀가 찢어지듯 울린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아마도 모든 사람에게 위험을 잘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고통스러운 소리로 되어 있을 것이다. 한국의 회사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리면 늘 그러려니 하고 그저 업무에 열중할 뿐이었다. 특별히 대피를 하거나 하는 건 학교 때나 했으려나? 워낙 소리가 크고 고통스러워서 난 밖에 나가 무슨 상황인지 보고 오겠다고 했다. 실제로 불이 난 거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행동한 것은 큰 실수였다.


복도에 나가 보니 특별히 불이 나서 연기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완전히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복도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아무 이상도 없어 보였다. 나는 조금 안심하면서 집에 돌아왔는데, 오히려 집에 있던 사람들, 아내와 딸아이가 사색이 됐다. 내가 갑자기 나가버리자 불안감이 너무 높아진 것이다. 일단 건물 화재경보기가 울리면 소방서에서 출동을 하고 안전을 확인한다고 한다. 건물 안의 모든 사람들은 대피해야 한다고. 재빨리 두꺼운 옷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한파가 다소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밖은 여전히 추웠다. 영하 7~8도 정도의 기온과 바람도 꽤 불었다. 일단 차에 들어가 안정을 취하기로 했다. 반려견 디디까지 모두 챙겨 차에 들어가는데, 딸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아무래도 시끄러운 굉음의 경보기 소리와 내가 갑자기 사라졌던 것 때문에 불안감이 증폭되었나 보다. 가까스로 아이를 달래 안정시킬 무렵 소방차가 출동했다. 시간을 보니 경보기가 울리고 불과 5분이 안된 무렵이었다.


경보기는 누수 때문에 울렸다고 한다. 아무래도 꼭대기 층의 다락에서 누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스프링클러의 파이프 도파가 의심된다고 한다. 다행히 화재는 아니었지만, 소방관이 모든 안전을 확인할 때까지 건물을 비워줘야 했다. 춥고 불편하기는 했지만, 사소한 위험에도 경보기가 매우 민감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소방관들의 출동도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동네에서 소방차 출동 소리가 굉장히 잦아 불도 잘 안 나는데 다들 어딜 저렇게 출동하나 의심스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는데, 사소한 위험도 일일이 소방서에서 점검하고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 이해도 되고 마음도 놓였다.


이곳에서 처음 겪는 비상 상황이라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면이 있었다. 큰일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위급상황시 어떻게 해야 할지 가족 단위로 점검하는 기회가 됐다. 2022년이 다 가기 전에 올해가 얼마나 버라이어티 한 한 해였는지 상기시켜 준다. 다행히도 내일부터는 날씨가 조금 풀린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한파에 여기저기 손볼 곳도 많고, 점검할 것들도 많다. 아제 겨울 시작인데, 괜찮겠지?


Photo by Jalen Hues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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