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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국 방구석 주부 Feb 14. 2024

미국 이사 준비는 힘들어 1 -임대지원서 편

2024년 2월 8일(이주 559일 차)

두 주 전, 한바탕의 소동 끝에 새로운 집으로의 이사가 결정됐다. 임대 기간이 다 끝나지도 않았고, 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계획했던 이사는 아니었기에 다소 정신없는 며칠을 보냈다. 미국에서 온 가족이 이사를 하는 건 오랜만이어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하나 둘이 아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와 새로 이사 갈 타운홈은 같은 임대 관리 회사에서 임대를 하기 때문에 서류 작업을 할 때 편리한 부분은 있었다. 미국은 평판 관리가 매우 중요한 나라인데, 취직을 할 때나 입시를 할 때뿐만 아니라, 집 렌트를 할 때도 평판 조사를 한다. 그래서 임대 신청서를 보면 현재 살고 있는 집과 그전에 살던 집까지 주소와 임대인 연락처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연락을 해서 내 평판을 조사한다!) 하지만 같은 임대 업체 소속이다 보니 이런 절차가 훨씬 간소하다. 매우 간결하게 서류절차는 마쳤다.


그리고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관리사무소에서 아파트 점검을 했다. 혹시 시설 관리 측면에서 파손되거나 수리가 필요한 부분이 없는지 점검한다. 해당 부분에 대한 수리비 청구를 하기 위함이다. 통상적으로는 입주를 할 때 지불했던 임대 보증금에서 차감한다. 한국에서는 임대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임대인의 횡포가 아니라면 그다지 흔하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보증금에서 수리비, 청소비 등을 청구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다행히 시설 점검에서 특별히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카펫 청소비 정도만 차감될 것 같다.


그런데 시설 점검하던 직원과의 대화 중에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래는 이번 달 중순에 이사를 하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계약에 퇴거 전 30일 사전 통보 조항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2월 초에 이사 사실을 사무실에 알려줬으니, 2월 말, 3월 초에나 이사를 나갈 수 있다고 알려왔다. 사실 이사 갈 타운홈 매물 중에서 가장 빨리 이사 갈 수 있는 매물을 선택해서 빨리 이사를 하려고 했는데, 이사가 두 주 가까이 미뤄지게 된 것이다. 다행히 타운홈 사무실에서는 이사 날짜를 뒤로 미뤄줄 수 있다고 알려 왔고, 우리 가족은 2월 말일에 이사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이사가 결정되자, 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수많은 업체에 주소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한국이야 우편으로 중요한 것들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어져서 주소 변경을 몇 개 잊더라도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이 적고, 우체국에 자동 주소 변경 서비스를 통해 수개월간은 우편을 수령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아직도 많은 서비스들이 우편을 통해 진행된다. 청구서가 날아오고 중요한 정보가 담긴 우편이 많다. 주소 이전은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다.


또 수많은 서비스를 해지하고 다시 신청해야 한다. 이게 공공 서비스 민영화의 안 좋은 점이다. 지역과 임대 회사에 따라 제공하는 공공서비스의 회사가 모두 다르다. 다행히도 수도와 하수, 쓰레기 수거는 임대 회사에서 일괄 계약해 별도로 내가 서비스를 이전하거나 해약/신청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전기, 가스, 인터넷 등은 내가 일일이 신청, 해약, 이전해야 한다. 지금 아파트는 가스 전기는 내가 신청하고, 인터넷은 아파트에서 제공해 준다. 하지만 새로운 타운홈은 가스는 일괄 계약, 인터넷은 다른 회사의 인터넷으로 제공, 전기는 다른 회사로 개별 계약이다. 지금 아파트에서 쓰던 전기, 가스, 인터넷 서비스를 모두 끊어야 하고, 전기는 새 회사로 서비스 계약을 해야 한다. 다행히 가스와 인터넷은 내가 따로 신청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사 업체를 정하고 계약을 해야 한다. 한국처럼 포장이사를 생각하면 수천 불이 나가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한국도 요즘 비슷하다 하겠지만, 연구비 생활 하고 있는 가난한 유학생 가족에겐 너무 큰 금액이다. 여기서 십수 년을 살면서 교수로 재직하고 계신 지인분 조차도  얼마 전 이사하실 때 직접 트럭 렌트를 하셔서 노동자 두 명 정도 불러 이사를 하셨다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는 조금 힘들 것 같다. 아마도 이삿짐은 우리가 직접 다 싸고, 이삿짐센터에 운반을 요청하게 될 것 같다. 그러면 포장 이사보다는 훨씬 저렴하지만, 고생길이 열리는 것은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아직 연락도 돌려보지 못한 것은 비밀이다.


이사 자체에 회의적이던 아내도 이사가 결정되자마자 아이와 함께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사 자체도 그렇지만, 아이가 좋아하니까 함께 보조를 맞춰주는 것이 클 거다. 사실 아내는 이번주까지 정말 중요한 논문 제출 일정이 있었고, 정말 밤낮없이 일에 매달렸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 애도 이사와 함께 방을 꾸밀 계획에 부푼 딸의 마음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같이 인터넷 쇼핑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 주었다.


둘의 계획을 짜는 방법 중에 가장 신선한 점은 게임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라이프 게임의 선두주자인 ‘심즈’를 활용해 새로 이사 갈 타운홈과 똑같은 집을 만들고, 그 집을 꾸미면서 필요한 소품들을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넣고 있다. 물론 게임에서 집을 만드는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 (아주 신났다) 컴퓨터 사이언티스트 아내의 신박한 이사 준비다. (전에는 이사할 집의 도면을 스케치업으로 띄워놓고 방 배치를 고민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들떠 있는 두 모녀를 보는 남편 주부의 마음도 흐뭇해진다… 는 개뿔. 이사할 때 신경 쓸 게 얼마나 많은데, 저러고 게임 앞에 앉아 쇼핑하고 있으니 열불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종용한 이사니,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이사는 3주 정도가 남았다. 매우 바쁜 연초가 될 것 같다. 하지만 기대가 크다. 이사를 하고 정리가 되면 글쓰기나 개인 작업을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분리된 공간도 생길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이사는 늘 불안하고 할 일도 많다. 하지만 그곳에서 있을 설레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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