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 따라 미국 가는 남편 2-17
*참고로 이 주제로 글을 쓰려하니 아내에게 엄청 미안합니다. 내 딴에는 아내가 이주 준비에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제가 일처리를 하기 위해 먼저 퇴사한 것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마지막 1분 1초까지 일하다가 미국에 가는 것이 되어버렸네요. 사, 사랑합니다!!
모든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짐도 하나둘씩 처분되어가고 있었고, 어찌 되었든 아이의 학교문제도 모두 해결되었다. 자질구레한 행정 업무가 남아있기는 했지만, 그런 것들은 출국하기 전주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급할 것은 없었다. 8월 초가 출국이니, 7월 셋째 주, 넷째 주가 되어서는 나와 아이의 모든 신변 정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 그건 아내의 퇴사다. 전의 글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아내는 팬데믹 기간 동안에 잠시 일을 쉬다가 1년 전 정도부터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완전 풀타임 재택근무였고, 덕분에 여러 업무들을 처리하면서도 일을 병행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아내는 박사과정에 합격했고, 학기가 시작하는 8월 말까지 신변을 정리하고 온 가족이 미국으로 떠나야 했다. 문제는 아내가 기동력이 없다는 점이다. 운전을 못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회사에 가고 없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출국 준비를 위한 여러 일들을 처리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아이가 학교에 가고 아내가 일을 하는 사이에 여러 출국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내가 먼저 일을 그만두고 아내는 조금 더 일을 지속하기로 했다.
나는 5월 말, 회사를 사직하고 미국 이주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각종 서류를 떼고, (항공, 의료 관련) 서비스 예약을 하고, 물건을 사고팔고 버리고, 그 사이 딸아이 학교 학원 라이드를 하면서 생활했다. 아주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제법 일을 처리한 덕분에 아내는 재택근무라도 여러 상황에 방해받지 않고 일을 지속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아내도 그렇게 마지막까지 회사를 다닐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비자 인터뷰가 워낙 늦게 잡히고, (이놈의 비자 인터뷰!!) 혹시 무슨 일이든 생겨서 미국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까 봐, 마지막까지 고정 수입의 고리를 끊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퇴사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비행기 날짜 일주일 전에서야 퇴사일을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아내는 매니저에게 두 번째(!) 퇴사 소식을 전했다.
‘나 미국 박사 과정으로 떠나.’
‘그래? 언젠데?’
‘이번달 말. 이번 달 중순에 비자 인터뷰 있어.’
‘그럼 비자 안 나오면 못 가?’
‘응,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러면 비자 인터뷰 보고 알려줘. 그때 처리해 줄게.’
아내의 일본계 미국인 매니저는 갑작스러운 아내의 퇴사 통보에 꽤나 당황한 듯보였다. 하지만 비자 안 나오면 연락하라니. 고마운 거야, 괘씸한 거야?
다행히 무사히 비자는 나왔고, 아내는 최종적으로 퇴사 날짜를 조율했다. 물론 비자 인터뷰를 2~3주 남긴 시점 퇴사 의사를 밝혔고, 비자가 나온 다음 주에 퇴사를 하니 회사에 할 도리는 다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회사에서 비자 인터뷰가 잘 안 되면 퇴사는 반려해 주겠다는 게, 우리 가족에겐 큰 위안이 되었다. 그때는 정말 그만큼 불안하고 걱정이 많았다. 정말 미국에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말 마지막까지 의심이 있었으니까.
그때는 이런 불안감에 대해서만 신경을 써서인지, 미국 가면 정신없고 바쁠 생활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려해 보지도 못하고, 마지막까지 한국의 일상을 모두 사는 것이 당연하게만 느껴졌었다. 분명 바쁠 박사과정 학생의 생활을 고려해, 가족끼리 여행도 다니고, 휴식도 취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다녀야 했는데.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것에만 집중했다. 딸아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차피 한국과 미국의 학제가 달라서, 한국 학교 생활은 중단하고 있었어도 아무 상관없는데, 아이도 방학식을 하기 직전까지 학교를 나갔다. 7월 말 방학을 하고 바로 미국으로 출국. 딸아이나 아내 모두 너무 몰아붙였나 싶다.
아내의 퇴사 절차는 굉장히 복잡했다. 매니저, 인사 담당자와 인터뷰도 해야 했고, 수많은 보안사항을 체크하고, 장비도 반납해야 했다. 불과 1년 남짓 다닌 회사의 퇴사 절차가 8년 다닌 나의 회사 퇴사 절차보다 복잡했다. 그렇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 아내가 퇴사하자 비로소, 미국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마음이 헛헛해졌다. 이제 가족 중에 누구도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 물론 미국 학교에서 생활비를 대주지만, 돈을 버는 사람은 없다. 엄청 긴장되고 걱정된다.
하지만 또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는 것 아니겠는가? 백세시대 인생 삼모작을 위한 위대한 도전을 시작하는 거다.
Photo by Bernard Hermant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