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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남은 여름

2월의 여름, 시드니 - 8.

by jcobwhy

2003년 7월.


“부대, 차렷!”


착.


“단장님께 대하여—경례!”

“충성!”


단장님은 짧은 경례를 받고 단사 쪽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셨다. 남겨진 후보생들 사이엔 일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이윽고 줄지어 퍼지는 목소리.


“고생하셨습니다!”


인원은 100명이 조금 못 됐다. 서로의 등을 툭툭 치며, 때론 손바닥으로 세게 내려치며, 각자의 여름을 견뎌낸 것에 대한 조용한 환희를 나눈다.


성남시에 위치한 학생중앙군사학교. 지난 4주 동안 이곳에서 하계 입영훈련을 받았다. 아직 군인도 아닌데, 대학 시절 마지막 여름방학을 통째로 이곳에 바쳐야 했다. 허탈하다. 그 누구도 쉽게 이해하지 못할 이 허무함이, 온몸을 천천히 잠식해 온다.


훈련기간 내내 휴대폰은 압수당했다.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채, 외부와의 접촉은 철저히 차단된 시간. 텔레비전도, 음악도, 친구의 목소리도 없이. 그 고요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인 건 땀방울과 구령뿐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이 날만을 바라보며 버텼다. 7월의 숨 막히는 더위도, 기상나팔에 짓이겨지는 새벽도, 고통스러운 PT 체조와 사격훈련까지—모두 오늘을 위해 견뎠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는 것.


그리고... 그녀에게 전화를 거는 것.


4주 전, 그녀와의 통화에서는 말끝마다 들뜬 기운이 묻어났다. 지난 넉 달 동안, 그녀는 어학원과 프리칼리지를 오가며 시드니공과대학 입학을 위한 필수 과목과 영어 요건을 채우느라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조건을 충족해 냈다. 대학의 조건부 합격 상태였던 그녀는 이제 당당히 정식 입학생이 된다.


“이제 진짜 신나게 놀 수 있어.”

“그동안 주말에도 공부만 했다며.”

“응, 매일같이. 그래서 더 신나는 거지!”

“장하다. 맘껏 즐겨.”


대화는 웃음 섞인 축하로 이어졌다. 하지만 곧 현실적인 질문이 이어진다.


“넌 훈련 언제 들어가?”

“모레부터.”

“그래. 고생하겠다.”

“4주 동안 통화 못 해.”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다고. 오히려 자기가 신나게 노는 와중에 연락이 끊기면 괜히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대신 편지는 부지런히 쓰겠단다.


그래,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내가 괜히 전화를 걸어 놓고 연결되지 않아 조바심을 내기보단, 차라리 일정한 단절 속에서 안정을 찾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녀가 밝게 말해준 덕분에, 나도 잠시 마음을 놓는다. 하지만 그 말은 어쩐지, 슬며시 외로움처럼 스며든다.


4주 동안, 약속대로 그녀는 꽤 많은 편지를 보내왔다. 일주일에 두세 통씩, 거의 빼먹지 않았다. 새삼 놀랐다.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전화를 잘 받는 편이긴 했지만, 먼저 연락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늘 연락에 있어 수동적인 면이 있었고, 편지라니. 정성스러운 손글씨가 담긴 편지를 연달아 받으리라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


“올~ 국제우편!”

“누구야, 누구야?”


같은 내무실을 쓰는 동기들은 외국 우표가 붙은, 빨강 파랑 빗금무늬의 항공 편지를 보며 부러워했다. 지난 세 번의 훈련 동안 단 한 통의 편지도 받지 못했던 나는, 이제야 생긴 여자친구 덕분에 처음으로 우쭐함이란 걸 누려봤다. 누군가는 ‘여자는 외국 나가면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며 어설픈 농담으로 시비를 걸기도 했지만, 그런 말에 흔들릴 이유는 없었다.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 벌써 한 번의 이별도 버텼지 않은가. 겨우 4주의 훈련쯤이야.


그렇게 훈련이 절반을 넘기던 즈음, 그녀의 편지는 조금씩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틀 간격이던 것이 사흘, 나흘이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일주일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마지막 주엔, 결국 한 통의 편지도 오지 않았다.


처음엔 단순히 우편이 늦는 거겠거니 했다. 아무래도 국제 우편이니까. 늦게 오는 거겠지, 설마 안 보냈을 리야. 하지만 훈련이 끝날 즈음까지도 아무 소식이 없자, 속으로 천천히 이상한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뻐근하게 가슴 한편을 눌렀다.


입영훈련이 끝났다. 단사 앞에 흩어진 후보생들이 가방을 챙기고 삼삼오오 흩어졌다.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더플백을 메고 단사 아래 공중전화로 향했다.


학교 교문 근처에 덩그러니 남겨진 공중전화 부스. 오래전부터 이건 내 전용선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쓰지 않기에, 아무도 기다리지 않기에—오직 나만의 통로였다. 그런데 오늘, 하필 지금 그 안에 누군가가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나 말고도 이걸 쓰는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지금, 이 순간.


부스 앞에 서서 기다리며 땀을 훔쳤다. 군복은 아니지만, 훈련을 마친 티가 나는 차림새. 더플백까지 둘러멘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는 모습은 꽤나 괴상했을 것이다. 전화를 걸고 있던 남자가 힐끔 뒤를 돌아보더니, 곧 눈을 피하며 통화를 서둘러 끝냈다. 뭔가 당황한 기색. 나도 조금은 민망했다.


그가 나오자마자 부스에 들어섰다. 문을 닫고, 숨을 고르며 수화기를 들었다.


이제 익숙한 절차다. 전화카드 뒷면의 번호를 누른다. 이어서 카드 시리얼 번호를 입력하고, 그녀의 호주 휴대전화 번호를 또박또박 눌렀다.


뚜— 뚜—


신호음이 짧고 빠르게 반복된다. 호주 번호는 늘 그렇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녀는 받지 않는다. 열 번, 열두 번, 열다섯 번. 시간은 흐르는데 응답은 없다.


나직이 중얼거린다.


“밥 먹나…”


잠시 수화기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귀에 댄다. 한 번 더. 마지막으로. 여전히 어딘가 기대가 남아 있다. 다시 번호를 누르고, 신호음이 이어진다.


뚜— 뚜— 뚜— 뚜—


이번에도 전화를 받지 않나 싶어,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는 찰나—


“헬로?”


수화기 너머,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움찔하며 귀에 재빨리 수화기를 붙였다.


“여보세요? 자기야, 나야.”

“응.”


짧은 대답. 그토록 기다렸던 그녀의 목소리가 맞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맥이 빠져 있고, 숨소리마저 납작하다. 나직이 깔린 숨결 속에 감춰진 낯선 침묵이 가슴에 걸렸다.


“나 훈련 끝나자마자 바로 전화했어. 별일 없었어?”

“….”


아무 대답이 없다. 정적이 이어진다.


“자기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응.”


다시, 한 글자짜리 대답. 그 뒤로는 또 침묵.


“무슨 일인데? 무슨 일 있었어?”


그녀는 끝내 말을 잇지 않는다. 나는 눈을 감고 한숨을 들이마셨다. 그 순간, 공중전화 부스 앞으로 할머니 한 분이 다가와 조심스레 내 뒤에 선다. 나를 지나쳐 전화기를 쳐다본다. 아, 시간.


“자기야, 내가 집에 가서 다시 전화할게. 공중전환데, 지금 누가 기다리셔.”


그런데 그녀가 그 말을 가로막았다.


“아냐. 그럴 필요 없어.”


말끝이 이상하다.


“무슨 소리야?”

“우리…”


숨을 삼키고, 천천히 이어진다.


“그만하자.”


순간, 뇌 안에서 뭔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짧고 뚜렷하게.


익숙한 듯 낯선 말. 그 한마디가 공중전화 부스를 사각의 감옥처럼 만들어버린다.


“자기야, 갑자기 왜 그래. 또 무슨 말이야 그게.”


말끝이 떨린다. 공중전화기 선이 희미하게 흔들린다.


“나... 다른 사람 생겼어. 우리, 진짜로 헤어지자.”


그 말은 느리고 또렷하게 들렸다. 귀에 박혔고, 몸 전체로 울렸다.


발끝부터 무릎까지,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한다. 입김이 헛돌고, 눈앞이 흐려진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침묵이, 이제는 마지막 여운처럼 느껴졌다.


이제, 끝인 걸까. 정말로, 여기서. 이렇게.



에필로그.


2003년 10월.


노원역 인근, 어둠이 내린 뒤에도 붐비는 호프집. 시끄러운 웃음과 치킨 냄새 속에서, 우리는 다시 마주 앉아 있다.


원래라면 그녀는 지금 시드니에서 첫 학기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내 앞에 있다. 맥주잔을 들고, 그 여름 이후 처음으로. 3개월 만이다.


“그때 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


웃지 않았다. 말투에는 짜증과 분노, 무력함이 얽혀 있었다. 학교 등록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고, 학생비자 연장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했다. 낯선 나라에서 이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새 집과 짐을 그대로 남긴 채 귀국해야 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돌아가긴 해. 내년 1월에 다시 입학 신청하면 돼. 근데... 많이 지쳤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아니, 듣고 있는 척했다. 그녀의 상황은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 마음은 다른 데 가 있었다.


“근데 그 사람은 뭐야?”

“응?”

“그 새 남자친구.”


그녀는 입술을 다물었다가, 이내 조용히 말했다.


“그냥... 그때 많이 도와줬어. 한 살 어린 교포 친구인데, 그 사람 아니었으면 나 혼자 버티지 못했을지도 몰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럴 수 있다는 걸,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럼 이제 너는 여기 있잖아.”

“다시 갈 거야. 몇 달 안 남았어.”

“그래도 지금은 서울에 있고—”

“넌 곧 군대 가잖아.”


단호한 말이었다. 미련이 끼어들 틈도 없었다.


맞다. 나는 군대를 간다. 그녀는 시드니로 돌아간다. 단지 잠깐의 공백이 아니었다. 2년 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 그 시간은 우리를 완전히 갈라놓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미, 먼저 한 발 물러서 있었다.


“그냥 친구로 지내자. 난 네가 친구로 너무 좋아.”


가장 잔인한 말이었다. 그 어떤 이별보다도 선명하게 끝나는 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맥주잔이 빈 잔인 줄도 몰랐다.


나는 친구가 되기 싫었다. 친구가 되지 않으려고 애써 사랑을 붙잡았고, 먼 나라에서도 그 마음을 지켰다. 내가 그렸던 장면—군 제대 후 호주로 유학을 가고, 그녀와 함께 다시 시작하는 삶—그 모든 계획은 오늘 이 자리에서, 아무 소리 없이 무너졌다.


그날 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선도 너머로 흘러가는 불빛들이 물처럼 번졌다.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핸드폰이 울렸다.


띠링.


‘소개팅할래? 내 여친 친구인데.’


학군단 동기의 문자였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짧게 답장을 보냈다.


‘그래, 해보자.’


그녀의 ‘친구’라는 말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그 단어에 더는 붙들리고 싶지 않았다.



'2월의 여름, 시드니' 연재를 마칩니다. 1주 쉬고 다음 연작, '사천리 통신보안'으로 돌아옵니다. 다음 연작 소설도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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