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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시 Sep 24. 2023

이유식 지옥에서 허우적

죄가 없는데 희한하게 죄지은 느낌이랄까

  이유식. 지금은 한 때의 추억이 되었지만, 빛이 안 보이는 터널 같은 시기였다. 그 암흑 속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모르겠다.


    생후 6개월, 아기가 퓨레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유식을 ‘식사’ 개념으로 인식시킬 때였다. 여러 책을 참고하여 이유식 일과를 새롭게 짰다. 낮잠을 2회로 줄이고, 분유수유는 기존대로 4회를 유지하되, 부모의 점심, 저녁 식사시간에 맞춰 총 2회 이유식을 줬다.


    이때부터 정식으로 하이체어에 아기를 앉히고 이유식을 먹였다. 말 그대로 야심 차게 준비한 이유식 일과였다. '내가 뭘 하는지 정확히 안다'는 확신이 있으니, 매일 계획표에 맞춰 수행만 하면 될 줄 알았다. 나는 자신 있었다.


    며칠 지나자, 아기 식탁 밑바닥을 닦으며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내가 있었다. 아기 앞이고 뭐고 그대로 쓰러져 엉엉 울고 싶었다. 깔끔하게 분유만 먹이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소원이 없었다.


    확실히 나는 이유식을 과소평가했다. 모유수유 때처럼 양이 부족할 일도, 생산자의 통증도 없는데, 힘들 일이 뭐가 있을까? 싶었다.


    인터넷에서 이유식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에는, 대부분 '아기가 안 먹는다'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이해가 잘 간다. 아기가 잘 안 먹으면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 반면에 우리 아기는 잘 먹는 아기였다. 너무 잘 먹어서 매일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그런데도 내게 이유식은, 몸서리치도록 고통스러워 다시 떠올리기도 괴로운 기억으로 남았다. 도대체 왜?   




    공교롭게도 우리는 이유식을 시작할 즈음에 새 집으로 이사했다. 육아를 그대로 하면서 이삿짐을 싸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여기는 한국처럼 꼼꼼한 포장이사 따위는 없다. 설령 있다 해도, 미국 땅에서 그런 흔치 않은 서비스를 받으려면 충격적인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가 모든 포장을 다 했다. 이사 당일에 트럭과 인부를 고용해서 이삿짐을 새 집으로 옮겼다.


    이삿짐 상자가 온 집안에 쌓인 상태에서 이유식을 시작했다. 이사와 이유식. 커다란 변화를 한꺼번에 두 가지씩 겪었다. 당연히 스트레스도 두 배였고, 이것 때문에 우울증도 더 심하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아기 낮잠 시간이나 한밤중에, 나는 쉬지도 않고 이유식을 만든다고 매달려 있었다. 익숙지 않은 조리방법들이라 더 시간이 많이 걸렸다. 결국 이삿짐을 풀고 정리할 짬이 안 나서 몇 달이나 상자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시판 퓨레나 파우치 이유식을 먹이다가, 짐부터 완전히 다 풀고 나서 다양한 이유식 조리를 해 보고 횟수를 늘렸어도 문제가 없었다. 내가 책에 나온 개월수와 이유식 일정을 기계적으로 따르다가 사달이 난 것 같다. 충분히 시기 조정이 가능했는데, 유연하지 못했던 당시 대처가 조금 아쉽다. 그래도 그때는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렸다.




    이유식을 먹이며 신체적인 피로도가 다시 급격히 올라갔다. 아기를 먹이는 횟수가 4~5회에서 6~7회로 늘었다. 온종일 아기 먹이는 일에만 매달리다 하루가 다 간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은데? 그렇다. 신생아 시절이 생각난다. 이제는 모유수유 대신, 오랜 시간 허리 굽히고 쭈그려 앉아 싹싹 걸레질하는 고통이 새로 추가되었다. 이사 온 우리 집에 그래도 마룻바닥이 존재해서 다행이다. 이 짓을 카펫 바닥에서 했으면, 아무리 닦아내도 음식물 찌꺼기가 밑에 남아 있을 거라는 찝찝함에 미쳐버렸을 거다.


    비단 마룻바닥뿐 아니라, 아기의 온몸에 음식이 묻는다. 자기 주도 이유식의 단점이 이것이다. 음식이 안 묻는 곳이 없다.


    초기에 퓨레를 숟가락으로 떠서 먹여주는데도 아기 얼굴과 손에 생각보다 음식이 꽤 묻는 걸 보고 의외라고 생각했다. 아기가 계속 움직여서였다.


    자기 주도 식사를 하는 아기는 그보다 심하게 많이 묻는다. 아기가 음식으로 샤워를 한다. 아기의 손발, 얼굴, 머리카락뿐 아니라 ‘하이체어’라고 불리는 아기용 식탁 전체가 음식 범벅이 된다. 


    바닥이 오트밀로 뻘밭을 이룬다. 금방 굳어버리는 그것은 빡빡 문질러야 지워진다. 벽에 요거트가 철썩철썩 붙어 흘러내린다. 미국 집에는 보통 벽지를 안 바른다. 페인트칠된 석고 벽이다. 축축한 것이 묻으면 지우기 힘들고 되려 페인트가 벗겨진다. 아아 어쩌란 말이냐.


    아기 몸을 씻기고, 하이체어를 최대한 깨끗하게 닦아도 이유식 시간은 다시 돌아온다. 똑같은 일이 매번, 매일 반복된다. 무용한 노동을 기약 없이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형벌을 받고 있다. 이 고통의 의미는 무엇인가. 끝이 존재하는가? 이유식은 엄마를 철학자로 만든다.


    자기 주도 이유식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독립심 함양이라 한다. 아기가 음식을 탐구하느라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거의 없을 때, 나는 아기를 먹이며 두 개의 실리콘 숟가락을 번갈아 썼다. 독립적인 우리 아기는 모든 숟가락을 전부 본인이 들고 있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나와 힘겨루기가 일어난다. 아기는 접전 끝에 획득한 숟가락을 들고 신이 나서 빨고 깨물다가, 마구 흔들고 튕겨서 온 사방에 음식을 흩뿌리며 승전 세리머니를 펼친다. 음식 비가 내리는구나. 우리 아기가 내리는 환희의 빗줄기에, 내 쓰디쓴 패배의 눈물이 가려진다. 그래, 아기 독립 만세다. 너는 좋겠다.

    

    신생아 적 쓰던 아기 속싸개를 아기 몸에 둘러줘 보기도 하고, 바닥에 깔아 보기도 했지만 이유식은 언제나 내 생각보다 멀리 튀었다. 하이체어와 주변을 닦는 것에 더해, 속싸개 애벌빨래하는 스트레스만 더 늘었다.


    한 번 쓰고 버릴 수 있는 큰 종이를 깔아 두면 바닥 닦는 스트레스가 훨씬 줄어드는데, 그걸 나는 아기 첫돌이 다 되어서야 알았다. 이 좋은 걸 그때껏 몰랐다니 기가 막혔다. 그래도 그 후로 몇 개월간은 유용하게 썼다.




    가장 큰 문제는 죄책감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기 먹을 음식을 내가 좋은 재료로 직접 만들어 줘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겨났다. 이유식 초기에 퓨레로 알레르기 반응을 볼 때만 해도 이런 압박감은 없었다. 과일 채소 간 것쯤, 사 먹여도 큰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이유식이 식사를 대체해야 한다는 목표가 생기면서, 건강하고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여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다. 특히 내가 산 자기 주도 이유식 책에 나온 조리법과, 예시로 나온 다른 엄마들의 화려한 식판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갈고 다지고 찌고 굽고. 일견 간단해 보이기도 하는 조리법을 보고 따라 해 봤는데, 잘 안 됐다. 나는 내가 요리하는 음식 맛에 자신감이 있는 편이었는데, 모르겠다. 평소에 나는 이런 식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는다. 이렇게 번거롭게 재료를 일일이 갈고 뭉쳐서 가열하지 않는다. 익숙지 않아 그랬는지 조리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고, 결과물은 항상 너무 질척하거나 이상한 식감이 났다.


    수제 핑거 푸드를 만드는 데 들이는 시간은 한 시간이 넘어가는데, 아기는 내가 만든 건 잘 안 먹어서 쓰레기통으로 가기 일쑤였다. 오히려 극히 단순한 핑거푸드, 요컨대 식빵, 길게 썬 생두부, 삶은 달걀 잘라준 것, 토마토 조각 등을 잘 먹었다. 냉장고에서 꺼내고, 잘라서 접시에 놓아주면 끝인 그런 음식들이었다.


    이왕 미국식 이유식을 하기로 한 것, 그냥 아기가 잘 먹는 간단한 음식들을 먹이고 내 마음이 편했으면 끝일 일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이상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아기 먹이는 일이 이렇게 쉬우면 안 될 것 같았다. 아기가 좋아한다고 똑같은 음식만 자주 주면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만든 음식을 안 먹는다고 아기한테 화가 난 적은 없다. 내가 먹어도 맛없는데 아기 입맛도 비슷하겠지. 다만 죄책감 때문에, 이유식 시간이 다가오면 숙제 검사 같아 불안해졌다. 매 끼니마다 나는 숙제를 못 해 와서 벌벌 떨리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가 이래도 되나. 너무 대충 먹이는 것 아닌가. 이유식을 아예 안 만든 것도 아니고, 잘 못 만들었다고 누가 벌을 주는 것도 아닌데 두려웠다.


    그래서 배달 이유식을 시키기도 했다. 아기에게 다양한 음식 종류와 영양소를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 파스타, 만두, 채소 스틱 등의 핑거 푸드 위주였는데, 사실 그것 또한 마뜩찮않다. 어떤 메뉴는 내 입에도 너무 짰고, 어떤 음식은 내가 그냥 해 줘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성의가 없었다. 그런데도 가격이 정말 너무나도 비싸서 주문할 때마다 속이 쓰렸다. 배달 이유식 업체 선택지조차 몇 개 없고, 다 고만고만한 수준이었다.


    한국 배달 이유식은 괜찮은 가격에 메뉴가 잘 되어 있다는데 그게 참 너무 부러웠다. 한국에서 육아했다면 배달 이유식을 사서 먹이며 편안하고 마음이 놓였을까? 아니면 여전히 죄책감이 들었을까. 아기를 굶기는 것도 아닌데, 이런 근거 없는 죄책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뭐랄까. 3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기껏 잘해놓고도 '이게 아닌가?' 싶어 발을 동동 구른 경우다. 이유식을 먹이며 스스로 만족한 기억이 많이 없다.  


    실행 프로그램은 미국 이유식 방식을 택했으나, 그걸 처리해야 할 내 두뇌는 미국식 실용주의 기반이 아닌지라 충돌 오류가 있었다. 미국식 이유식의 장점을 보고 선택했는데, 준비 과정이 너무 쉬울 수 있음에 오히려 불안감을 느꼈다. 뭔가 엄마가 오랫동안 고생해서 손수 만들어야 아기에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내 무의식 중에 숨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매체에서 보고 듣던 '희생하는 엄마'의 이미지가 내 뇌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다가, 이유식 시기가 되자 '이때다!' 하고 튀어나와 강한 힘을 발휘해 나를 죄책감으로 꽁꽁 묶었다. 그 매체들은 나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었다. 거기에 있는 대로 휘둘린 나는, 아기를 잘 먹여놓고도 당시에 나 스스로에게 채찍질만 한 것이 억울하다. 지금이라도 칭찬을 많이 해 주고 싶다.


    이제는 쉽고 편하게 이유식을 준비하는 엄마의 이미지가 세상에 더 많이 나와야 한다.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들어야 한다. 너무 흔해서 당연한 풍경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 다음으로 이유식을 먹이는 엄마들이 원인 모를 죄책감에 휩싸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영원 같던 이 고난의 이유식 터널에도 끝은 있었다. 우리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서 생후 15개월 정도에 부모가 먹는 음식을 같이 먹었다. 벽과 바닥, 하이체어는 여전히 음식 범벅이었으나, 아기 음식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되어 나는 무척 홀가분해졌다.


       이유식은 마음이 많이 쓰이고 힘들다. 그 지난한 고통은 어떤 엄마도 피할 길이 없다. 여기서 엄마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자신을 향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하고 있는 부분만은 내가 인정해 줘야 한다.


     유기농 재료로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간 수제 이유식을 만드는 사람도, 쉽고 편하게 이유식을 사서 먹이는 사람도, 내가 아기를 먹이고 돌보려 노력한다는 뿌듯함은 똑같이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작은 성취감마저, 누굴 위한 건지도 모를 이상한 죄책감에 빼앗길 수 없다. 어렵더라도 나를 칭찬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을 잘 붙들고 다음 육아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비록 나는 이 즈음에 마음이 무너져 신경정신과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잘 추슬러 내어, 몇 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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