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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시 Sep 28. 2023

우리 가족이 모두 담긴 백일상

미국에서의 셀프 백일 촬영

    앞 글에서 아기 백일한복 이야기를 했으니, 백일상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백일상 없이 간단하게 한복 사진만 찍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래볼까 싶었다. 그러다 생각을 바꿨다. 나는 아기 때 한복만 입고 찍은 돌사진이 있고, 백일사진은 없다. 별 건 아니지만 살짝 아쉽다. 그래서 우리 아기는 상차림까지 갖추어서 찍어 주고 싶었다.


    또한 미국에서 나고 자라는 아이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가진 엄마로서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백일 사진 속 의상, 소품, 음식들 안에 한국 문화가 가득 담겨 있다. 딱히 정체성 등의 깊은 의미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커서 자신의 한국식 백일 사진을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촬영 4주 전, 인터넷에 '백일상 사진'을 검색했다. 편리하게도, 요즘은 '셀프 백일상 세트' 하나만 주문하면 소품 걱정 없이 집에서 백일사진을 찍을 수 있다. 미국에서도 파는 웹사이트가 있고, 대여도 가능하다. 단지 한국보다 많이 비싼 데다, 내 마음에 쏙 드는 구성이 없어서 선뜻 구매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사진들을 연구하다 보니 백일상 세트의 그릇이나 받침 종류들이 왠지 눈에 익었다. 자세히 보니, 시가에서 흔히 보던 소품들이다. 내 남편의 엄마는 미술적 감각이 뛰어나다. 가족 파티의 일인자인 그녀는 생일파티, 부활절, 땡스기빙, 크리스마스 때마다 예쁜 그릇과 소품으로 집을 아기자기하게 장식한다. 시엄마의 파티에 가면 언제나 눈이 즐겁다.


    그녀에게 한국의 백일상 샘플 사진들을 여러 장 보내며, 촬영을 위해 소품 몇 개를 빌릴 수 있는지 물어봤다. 시엄마는 처음 보는 한국의 백일상 사진들이 너무 예쁘고 귀엽다고 좋아했다. 소품 빌리는 것도 흔쾌히 허락을 해 주었다. "도움이 될 수 있어 매우 기쁘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뭉클했다.


    촬영 3주 전, 시가에 가 보니 온갖 종류의 장식품들이 현관 앞에 나와 있었다.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나는 그중에서 노란색 조화, 새하얀 레이스 식탁보, 케이크 스탠드, 색색의 꽃병, 3단 디저트 트레이, 2단 소스볼 스탠드, 레몬 모형 등을 골랐다. 시엄마의 안목을 그대로 반영하여 하나같이 세련되고 예뻤다.


    위험한 코로나 시국이라, 시엄마는 그날 처음 본 손자를 직접 안아볼 수도, 백일 당일날에 와서 축하해 줄 수도 없었다. 힘든 상황에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 했던 시엄마의 애정과 열의에 너무도 감사했다. 마스크를 낀 우리는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감사와 사랑의 말들을 나누었다.                


    촬영 2주 전, 빌려온 물품들을 차례로 꺼내며 시험 삼아 백일상을 꾸며 보았다. 나는 하얀색과 노란색을 주제로 하여, 너무 복잡하지 않게, 아기 중심으로 대칭이 되는 그림을 원했다. '100 days'라고 쓰인 풍선 배너, 연노랑색 털실공도 구입했다. 원래는 전통 실타래를 올려야 하는데, 미국에서 구하기 쉬운 털실공으로 대체했다. 어차피 같은 실 종류이니, 장수의 상징 맞다. "우리 아기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라" 하는 염원은 똑같이 전해질 것이다.

              



    촬영 1주 전, 상에 올릴 음식들을 준비했다. 전통적으로 백일떡은 백설기와 수수팥떡, 오색송편 등을 준비한다는데, 한인 식당도 딱 하나뿐인 우리 동네에선 희귀한 음식들이라 구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배송받을 수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백설기 말고는 내가 좋아하는 떡 종류들이 아니라서, 사진 찍은 후에 처치가 곤란했다. 이왕 올리는 백일상인데, 근처 아시안 마켓에서 구하기 쉽고, 우리가 확실히 잘 먹을 음식을 놓고 싶었다. 엄마 나라인 한국과, 아빠 나라인 미국의 음식을 둘 다 올리고 싶기도 했다.


    수수팥떡 대신 약과를 올렸다. 백설기 대신, 아기 볼처럼 뽀얗고 말랑한 찹쌀떡을 올렸다. 오색 송편 대신, 알록달록한 색깔의 마카롱을 3단 트레이에 예쁘게 담아서 올렸다. 우아한 케이크 받침대에는 큼직한 케이크도 하나 놓았다. 전부 남편과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다. 좋은 추억이 깃든 달콤한 음식들. 그리고 앞으로 아기와 함께 나눠먹고 싶은 음식들이다. 나와 남편이 온 마음으로 아기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백일상이었다.   


"아기 백일상인데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 뿐이에요. 아기는 못 먹는데 우리만 신나서 먹겠네요?"     

"우리가 아기 열심히 키워서 상 받는 날이라고 생각하기로 해요."             


    실제로 촬영 후에 남편과 나는 너무나 맛있게 잘 먹었다. 특히 안에 딸기가 가득 숨겨진 하얀 케이크가 꿀맛이었다.


    백일 음식을 검색하다가, ‘백일삼신상’이라는 것의 존재도 처음 알았다. 상에 미역국, 세 종류의 나물, 흰쌀밥, 정화수를 올린다. 해뜨기 전에 준비를 완료하고, 조리 중에 칼과 가위는 사용 안 하며, 끓였다 식힌 물로 정화수를 올리는 등의 일을 포함한다. 나는 옛사람들이 왜 이런 번거로운 일을 자처했는지 잠깐 고민했다. 아마 아기를 돌봄에 항상 조심하고 정성을 다하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나는 삼신상을 생략했다. 남편과 나는 백일상 준비 시기에 생애 첫 주택을 구입하게 되었다. 한 은행에서 대출이 거절되는 등 문제가 있어서 나는 매일 머리가 아팠고 위장통도 극심했다. 육아 중에 이삿짐을 싸며 받는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다해서 백일상을 준비했다. 나의 정성이 삼신상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고 믿었다.

  



    촬영 5일 전, 백일촬영을 대비해 한복 입기 연습을 했다. 불편하다고 싫어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생글생글 웃으며 잘 입고, 아기용 의자에도 잘 앉는다. 너무 기특한 우리 아기.


    남편은 코에, 나는 턱에 여드름이 각각 사이좋게 났다. 아기 머리의 지루성 피부염 딱지에 바르는 코코넛 오일 덕분이다. 아기를 안으면 얼굴에 오일이 묻는다. 백일사진에 부모가 왕 여드름을 달고 찍히면 안 될 텐데. 어떻게 없애야 하나. 아니 뭐 상관없나? 이런 게 추억인가.                 


    촬영 이틀 전, ‘백일’ 글씨 액자를 만들었다. 보통 샘플 사진들에서는 한자로 '百日'이라 쓰인 백설기 장식물을 주로 쓰거나 족자를 쓰던데, 그게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아기 백일 사진에 한자보다는 한글이 들어가기를 원했다. 남편의 언어인 영어로 쓴 '100 Days' 풍선을 벽에 붙일 예정이니, 나의 언어인 한글도 사진에 넣고 싶었다.


    미국에 사는 나는, 아이 한국어 교육에 강한 열의가 있다. 아기가 나중에 자라서 백일 사진을 보면, 한글을 읽고 이걸 언제 찍었는지 바로 알아봤으면 좋겠다. 한국의 전통 의상인 한복을 입고, 한글이 놓인 백일상 가운데 앉은 스스로의 모습에서, 한국에서 나고 자란 엄마의 자부심을 느꼈으면 한다.      


    나는 '백일'이라고 쓴 글자를 출력해서 잘라 액자에 넣었다. 한글이 여봐란 듯 잘 보이게 쓰여 있는, 상당히 직관적인 디자인이다. 그게 또 직진 성향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미적으로는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내 성이 잘 표현되어 만족했다. 그게 타지에서 혼자 준비하는 백일상의 매력인 것 같다.                



    촬영 당일. 드디어 백일이다. 아침부터 백일상 소품 배치를 시작해서, 오후 늦게까지 내내 촬영에 매달렸다. 백일상에 놓인 꽃과 인형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우리 아기. 울지도 않고 의자에 앉아 있다. 너무나도 멋지고 자랑스럽다. 우리가 쓴 백일 축하카드를 소리 내어 읽어 주니 아기가 눈을 깜박였다.


    삼각대를 놓고 DSLR 사진기로 연사해서 찍었다. 수십 장이 넘어가도 아기가 활짝 웃는 사진을 도저히 찍을 수가 없었다. 목을 못 가누는 아기라, 남편은 식탁 밑 사각지대에 숨어서 팔을 쭉 뻗어 아기 목을 받치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도움을 받는 것도 불가능했다.


    나 혼자서 혀가 얼얼하다 못해 가렵도록 "우르르르르르 에렐렐레" 굴려가며 아기를 웃겨보려 시도했지만, 끝내 아기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데에 그쳤다. 약간 비웃는 느낌이기도 한데, 어찌 보면 매우 자신감 있는 아기 같아 보여서 오케이를 외쳤다. 한국에 있는 아기사진 촬영 전문가들의 위대함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셀프백일 촬영은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 우리만의 추억이 되었다. 우리가 사용한 소품들은 거의 다 시엄마가 애착을 가지고 직접 사용 중인 소중한 물품들이다. 사진 찍을 때만 사용되는 촬영용 소품이 아니라, 집안 모임 때마다 온 가족과 지인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물건들이라 더 의미가 깊었다.


    지금도 시가에 가서 그 그릇과 소품을 보면 아기 백일상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아마 아기가 커서 초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도, 그것들을 보면 백일상 얘기를 할 것 같다. 백일상에 두었던 음식도 남편과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들뿐이다. 아기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사진을 보며 우리가 좋아하던 음식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의 취향과 전통과 언어들이 담긴, 세상에 하나뿐인 백일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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