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는 사랑의 특징을 열정(passion), 친밀(intimacy), 헌신(commitment), 세 가지 요인으로 설명했다. 열정적인 사랑은 상대와 결합하기를 바라고, 대개는 성적 결합까지 원하는 갈망이다. 친밀은 상대를 가깝고 느끼고 서로 연결되었다고 느끼는 관계이고, 헌신은 상대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행동이다. 세 가지 종류의 감정은 분량을 달리하며 사랑의 특징을 다양하게 나타낸다. 젊은 시절의 열정은 상대와 공유하는 시간 속에 숙성되면서 친밀이나 헌신으로 이어진다.
스턴버그는 열정, 친밀, 헌신, 이 세 가지 요소를 다 갖춘 사랑을 “완전한 사랑” (consummate love)이라 했다. 설사 이 세 요소를 갖춘 사랑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게 얼마나 지속될지는 보장할 수 없다. 한때 정염을 느꼈던 대상을 지금은 혐오한다든지, 미웠던 배우자가 병들자 품어주고 헌신한다든지, 원수로 여겼던 상대와 함께 주체할 수 없는 정염에 빠져버렸다든지……. 광고 카피 문구처럼 사랑은 움직이고 변하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는 원수 집안의 가장무도회에 잠입했다가 그 집주인 딸 줄리엣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줄리엣은 가면을 쓰고 그녀와 춤춘 매력남이 원수 집안의 아들임을 알게 된다. 그 뒤 어두운 밤 창가에 나온 줄리엣과 담을 넘어온 로미오는 밤새 대화를 나누며 사랑을 확인한다. 줄리엣은 바로 결혼 얘기를 꺼낸다.
"만약 당신의 사랑이 진실하고, 진정 결혼을 원하신다면 내일 사람을 보낼 테니 언제 어디서 예식을 올리실 작정이신지 저에게 연락 주세요. 그러면 저는 모든 것을 당신의 발 밑에 내동댕이치겠습니다."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열정에 빠진 이 두 청춘의 계획은 잘못된 의사전달로 파국으로 치닫게 하여 극의 클라이맥스를 끝까지 끌었다. 만약 만약 현실 세계에서 이들이 무사히 결혼하고 살았다면 둘은 열정과 함께 친밀과 헌신을 나누며 살았을까?
황동규는 시작 활동이 매우 활발했던 팔순 원로 시인이다. 젊은이들은 그의 다른 시는 몰라도 “즐거운 편지”를 한 번쯤은 듣거나 적어봤을 것이다. 최진실과 박신양 주연 영화, “편지”에서, 말기 뇌종양으로 갑자기 쓰러졌던 젊은 남편은 아내에게 시 “즐거운 편지”를 읽어 달라 한다. 최진실의 애절한 목소리로 낭독된 이 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연애해 본 사람이면 한 번은 읽어봤을 이 시는 놀랍게도 황동규가 고3일 때 쓴 것이다. 이듬해 이 시로 서정주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다음은 이 시 두 개의 연 중 첫 연이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위 시에서 ‘그대’는 시인의 친구 누나로 짝사랑 연상의 여인이었다. 시인은 ‘내 그대를 생각함’을 사소한 일로 표현했다. 연애하는 사람이 상대를 생각함은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자연 현상만큼이나 어마어마 일이다. 그걸 사소한 일이라 한 것은 아이러니이다. 상반된 표현으로 시적 효과를 크게 한 것이다. 이 시의 2연에서 시인이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한 뜻은 무엇인가? 황동규는 그의 책 “시가 태어나는 자리”에서 ‘사랑도 세월이 지나면 결국 인간의 선택 대상의 하나일 뿐이라는’ 실존주의가 가미된 것이라 풀어주었다. 한 강연에서는 “기다리긴 하겠지만 영원한 사랑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달변가로 인기강사인 어느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즐거운 편지로 표현한 시인의 사랑을 “누나는 내 여자야”라 할 만큼 열정적인 것이라 해석했다. 시인의 의도를 아주 많이 벗어난 것이다. 눌변인 황동규가 어느 강의에서 밝힌 그의 짝사랑은 시적 표현과는 달리 상당히 무미건조했다. 대학 입학 후 그 친구 누나를 만날 수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남의 눈이 있어 그러질 못했다 한다. 수십 년이 흘러, 미국서 다니러 온 그녀와 두어 차례 저녁 식사를 했을 뿐인데, 그것도 친구와 동석한 자리였다는 것이다.
황동규는 사랑에 관한 시를 적지 않게 썼다. 그는 “조그만 사랑노래”, “더 조그만 사랑노래”, “더욱더 조그만 사랑노래”, “사랑의 뿌리” 등의 시에서는 누군가를 대상 하기보다 사랑이라는 관념 자체에 충실했다. “버클리풍의 사랑”에서는 비로소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사랑을 전한다. 이 시는 그의 나이 예순 무렵에 아내와 함께 미국에 머물 때 쓴 것이다. 그의 아내를 위해 설거지라는 구체적 행동으로 담담하지만 친밀한 사랑을 표현한다.
내 그대에게 해주려는 것은
꽃꽂이도 벽에 그림 달기도 아니고
사랑 얘기 같은 건 더더욱 아니고
그대 모르는 새에 해치우는
그냥 설거지일 뿐.
얼굴 붉은 사과 두 알
식탁에 얌전히 앉혀 두고
간장병과 기름병을 치우고
수돗물을 시원스레 틀어 놓고
마음보다 더 시원하게,
접시와 컵,
수저와 잔들을
프라이팬을
물비누로 하나씩 정갈히 씻는 것.
(버클리 풍의 사랑. 부분)
나의 ‘그대’는 오르가니스트였다. 젊은 시절 연주회를 준비하던 중, 자궁이 열려 5개월 태아를 조산할 뻔한 적이 있었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연주한 수십 년 동안 그녀 디스크, 팔과 손 관절에는 통증이 스며들었다. 침을 맞아도 약을 먹어도 중년에 찾아온 손님들은 떠나지 않고 있다. 그녀를 위해 남편이 잘할 수 있는 건 설거지이다. 아내가 해주는 게 뭐든 맛있게 먹고 날렵하게 그릇을 챙겨 물로 부신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 것처럼 천천히 그릇 하나하나 정갈하게 씻는다. 설거지는 열정이 잦아든 만큼 더 깊은 헌신과 친밀을 더하는 일과이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