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이 되어
NY #10. After New York
“그리고 저는 이 입장권을 받았는데, 원랜 만료 날짜가 써 있는 입장권이에요.
하지만 토졸리 씨는 날짜를 지우고 이렇게 썼죠,
'영원히'
(You know this pass I was given ... Well, these passes they have a date on them.
A date when they expire. But on my pass, Mr. Tozzoli, he crossed out the date
and he wrote on it - ‘FOREVER.’)”
어릴 땐, 여행을 마치면 언제든 여길 다시 갈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의 시간동안 오래오래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 어떤 여행지든 그곳에 갈 기회를 영원히 주는 곳은 없다. 오래오래 주는 곳도 없다.
대부분의 여행지와는 한번, 운이 좋으면 두세번의 만남만을 갖게 될 뿐이다.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 필리프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 - 일명 쌍둥이 빌딩 - 의 두 꼭대기 사이에서 줄타기를 선보인 사람이다. 손에 땀을 쥐는 공연 끝에 경찰에 체포되지만 그의 공연에 감동받은 이들은 그를 석방시키고 간단한 주의만을 준다.
영화 끝에 필리프는 건물총책임자로부터 받은 자신의 '입장권'을 보여주며 나레이션을 읊는다. 그가 저 마지막 대사를 읊을 땐 2001년의 비극적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하지 않았다. 예전에 중국 여행 당시 박물관 몇 군데를 다녔는데 그곳에서 끔찍한 장면들을 보고 나서 한동안 괴로웠던 적이 있어서 앞으로 여행할 때 소위 말하는 다크 투어 사이트는 가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다보니 다음번엔 그라운드 제로를 찾아가고, 두 빌딩이 있던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있는 그곳.
내게 정말 고마운 도시라면, 그 도시의 아픔도 좀더 살펴볼 용기를 가져야하지 않나 싶다.
다시, “언제 다시 여길 갈 수 있을까”란 고민을 살펴본다.
스무살이 되면서 10대를 완전히 떠나보내며, 그간 했던 이별 중 가장 커다란 이별을 한 이후부터 나는 만나고 '떠나는' 것이 슬픔을 넘어서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내 주변의 것들이 ‘언제 다시 올까'라는 느낌은 그 후부터 계절이 바뀔 때마다 꾸준히 찾아온다.
이번 뉴욕 여행을 마쳤을 때도 아쉬움이 사무쳤다. 앞으로 나는 뉴욕이란 말과, 그곳을 가리키는 수많은 간판과 표지 앞에선 한동안 멈춰서있지도 모른다. 꼭 눈물로 된 작은 웅덩이 앞에, 잠시 멈춰서듯.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누구나 알 법한 그림의 제목이이다. 그 누구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알 수 없음’은, 내가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이상 얼마든지 '알 수 있는 것'이 되게 마련이다.
세상 절반은 그 마음과 달리 움직이더라도 나머지 절반의 내 마음은 내게 달린 것이니. 때론 내가 소심하거나 답답해보이고 아득한 인연의 줄이 다신 닿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해도, 한번 더 믿기로 한다면 어떻게 될까.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예측’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배워가지만 사실 ‘상상’이란 더 어려워지지 않는다. 믿음으로 메꾸지 못할지언정 상상으로라도 채워넣고 그 둘을 내 앞에 펼쳐진 영화를 보듯이 그려보자.
언제 다시 갈지 몰라 안타까웠던 너에게,
네 사계절과, 크리스마스, 한 해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걸어보고 싶을 정도로 무수한 매력이었던 너에게,
그래서 내 욕심, 내 추억, 내 사랑과 꿈을 들춰보게끔 했던 너에게,
난 그런 너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서든, 우린 다시 만난다.”
NY.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