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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동 Apr 16. 2021

죽고 못사는 사랑 해보셨나요

로마, 이탈리아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내가 트레비 분수 앞에 동전을 던지기로 맘먹은 이유였다.


한 해에 수만개 이상의 동전이 던져지는 곳. 대표적으로 세 가지 소원을 빌 수 있는 곳.


동전을 던지기보단 수집하는걸 즐기는 나였지만,  반드시 빌고픈 소원이 생긴 탓에 과감히 트레비의 '효험'을 믿기로 했던 것이다. 제아무리 광고일지언정 동전 얘기가 나도는건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 분수에서 빌 수 있는 소원 세 가지.


1) 동전을 한개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된다.

2) 두개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게' 된다.

3) 세개 던지면 '지금의 사랑과 헤어지게' 된다.


내게 가장 간절한 것은 2번이었다. 여행광으로서 1번도 눈독들일만 한데, 나는 2번이 더 절실했다. 당시 누군가를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굴 좋아하다보니 사랑받는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았고,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꼭 사랑이란걸 받아보고 싶어졌다.



사랑

어떤 자연과 학문과 예술보다도 아름다운 그것.


그날 나는 한 살 위였던 언니와 동행을 했는데, 트레비는 그날의 거의 마지막 코스였다.

아침에 만났을 때부터 우리는 분수 얘길 했고, 둘 다 2번 소원을 빌기로 했음을 밝혔다.


나는 그분의 눈빛을 보자마자 알았다. '이 사람 농담이 아니다.'


로마의 두 간절한 한국인은 그렇게 밤이 내려앉은 트레비로 향했다. 우린 결의에 찬 눈빛으로 분수 가까이에 다가가, 근엄히 뒷짐 지고 서있던 경찰관이 조심스레 자리를 비켜주게까지 만들었다.


그분이 먼저 동전을 던지고 눈 감고 기도(?)를 했고, 이어 내가 그 자리에 섰다.

걸어가는 동안 찰나,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이 섬광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애써 외면하고 나도 동전을 휙 던지고 눈을 꾹 감았다.


뒤돌아 동행을 보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서로 방금 빈 소원이 꼭 이뤄지길 축복해주듯 우리는 다소 머쓱하게 웃었다.


그런데 이후 트레비를 떠나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문득 그분이 말했다.



'아, 죽고 못사는 사랑 한번 해보고 싶다...'


순간주위의 소음이 멎었다. 


죽고 못사는 사랑, 사실 나는 지금 하고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속으로 답했다.

'그 정도까진 안하는게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언니의 마음을 백번천번도 이해하기 때문에, 입을 닫고 있었다.

어차피 나 역시도 짝사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은 원체 홀로 하기도 힘든 법.

둘이서 하는 것, 특히 서로를 '죽고 못살' 정도로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나도, 어쩌면 그분도 로미오와 줄리엣이 둘 사이에 벽을 두고 읊조리는 애절하고 절절하기 짝이 없는 사랑을 생각하며 트레비에서 소원을 빌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정도는 커녕 누군가에게 사랑을 품는 것, 사랑을 받는 것 자체가 너무나 꿈만같은 일이라는걸 알기에. 손만 뻗으면 닿는게 로맨스 영화지만 사실 거의 모든 로맨스는 판타지에 가깝다. 


그치만 분수를 떠나가며 우리는 한번쯤은 입 밖으로 꺼내어보는 것이다. 흔히 보이는 그런 사랑말고, 진짜 '사랑' 한번 해보고 싶다고.





누군가 물었다. 

"왜 1번을 안빌고 2번을 빌었어? 로마에 다시 안가도 되는거야?" 

난 답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지 못하면 소용이 없어서.." 


어떤 '여행지'든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할 때 가장 빛난다고 생각한다. 여행은 삶의 일부다. 삶이 풍부해야만 여행도 풍부해진다. 삶에 사랑이 있다면 여행 또한 그러하리라.


동전 하나를 던지면 로마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동전 두개를 던지면 각자 다른 삶의 다른 길을 걷던 둘이 함께 돌아오게 되는게 아닐까.


안타깝게도 지금은 더 멀게만 느껴지는 로마,

그러나 조명빛에 일렁이는 그림자를 덮은 분수가 여전히 깊은 비밀을 속삭인다.


죽고 못사는 사랑. 이 도시보다 더 아름다운 그런 사랑을 하세요.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당신은 반드시 로마에 다시 오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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