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

희망퇴직

by 연쇄상담마

처음엔 소문이었다.

곧 구체적인 시기와 금액이 사람들의 입과 온라인 익명 게시판에 오르내렸다.

몇 번의 희망퇴직을 거치며 사람들의 감각은 예민해졌고, 대나무숲을 벗어난 정보는 결국 누군가의 눈과 귀에 닿았다.


“소문이라면 이렇게 구체적일 리 없어.”

푸념처럼 내뱉으면서도, 여전히 그것이 소문으로 남길 바라는 눈치들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부지런히, 또 덤덤히 이어진 일상이 우릴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던 일에 집중하면 된다” 희망퇴직 소문의 마지막 문장은 늘 이 소리였다.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처럼, 디지털 달력 속 일정들을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단단히 채워진 칸이 주는 묘한 위로. 이 정도면 꽤 잘 살고 있다는 착각 같은 만족감.

나는 오늘도 빈칸을 벽돌로 채웠다. 완성된 벽돌의 개수로 내 쓰임새를 가늠하고, 불안을 달랬는지도 모른다.

숫자만 덩그러니 놓인 하루는, 휴식보다 방황을 더 많이 데려왔다.


몇 주, 몇 달이 더 지나간다.

출퇴근 루트는 이미 최소 시간으로 고정된 지 오래다. 스스로 만든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같은 동작만 반복했다.

일의 관성은 내 어깨를 무겁게 하고, 경력이란 이름으로 이어지는 등속도 운동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어딜 가나 들려온다.

“김 차장은 일을 잘해.”

눈치와 분위기만 맞추면, 일이라 불리는 것들의 반 이상은 어렵지 않았다.

평균 이상의 실행력은 자신감이란 풍선에 끊임없이 바람을 불어넣었다.

나 같은 사람이 이곳에 있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나보다 느린 사람은 바보로 보였고, 나에게 조언을 건네는 사람은 현실감각 없는 꼰대 같았다.

나는 올라가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같은 자리에서 조금씩 더 깊이 매몰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회사라는 늪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나를 끌어내리고 있었지만

그저 최대한 천천히 내려가기만을 바라는 내 모습은 어딘가 처량해 보였다.


그때쯤인가. 소문은 사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