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제109조 제1항은 ‘법률행위의 내용’에 착오가 있을 것을 요구하므로, 의사와 표시의 불일치, 즉 표시착오 내용착오의 경우 법률행위를 취소할 수 있습니다.
판례는 이른바 기명날인, 서명착오를 표시상 착오로 보아 제109조 제1항을 적용하고(대판 2013. 9. 26. 2013다40353, 40360), 소송행위에 관하여서이지만 표시기관의 착오를 그 본인의 착오로 보고 있습니다(대판 1997. 6. 27. 97다6124(소송대리인의 사무원의 착오로 소취하서를 제출한 경우).
나아가 당사자가 착오가 없었더라면 그 계약을 그러한 내용으로는 체결하지 아니하였을 것이고, 합리적인 제3자도 같다면 취소할 수 있습니다. 가령 계약내용을 알지 못한 채 무상으로 30년 간 지상권을 설정해주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한 경우 기명날인의 착오로 표시상의 착오이고, 부담의 정도에 비출 때 착오에 빠지지 아니하였더라면 “날인을 하지는 않았을 것임이 명백하다고 볼 정도로 표시와 의사의 불일치가 객관적으로 현저하며, 잘 알지 못하는 피고 회사에 무상으로 30년의 지상권을 설정해 줌으로써 원고로서는 중대한 경제적인 불이익을 입게 되는데 일반인이 원고의 입장에 섰더라면 그와 같은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하였으리라고 보”이므로 착오를 이유로 취소할 수 있습니다(대판 2013. 9. 26. 2013다40353, 40360).
또한 매매 목적물인 점포를 이 사건 점포와 다른 점포인 창신상회로 오인한 것은 내용의 착오 중 목적물의 동일성에 대한 착오로서 중요 부분의 착오라고 하고(대판 1997. 11. 28. 97다32772, 32789), 근저당권설정계약상 채무자의 동일성에 관하여 착오한 경우(대판 1995. 12. 22. 95다37087), 실적배당형 펀드를 원금보존형 펀드로 착오한 경우(대판 2011. 7. 28. 2010다69193) 제109조 제1항의 착오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물상보증의 채무자의 동일성에 대하여 착오가 있었으나 명의상 채무자가 실질적 채무자의 이름을 빌린 것에 불과하여 그 사정을 알았더라도 저당권을 설정해주었으리라고 여겨질 때에는 취소할 수 없습니다(대판 1986. 8. 19. 86다카448).
반면, 당사자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아예 구체적 관념을 갖고 있지 아니한 채 당사자 백지의 계약서에 기명날인 서명한 때에는 취소할 수 없고(대판 1946. 10. 25. 4279민상47), 소비대차의 보증인줄 알았으나 준소비대차의 보증인 경우에도 객관적 현저성이 부정됩니다(대판 2006. 12. 7. 2006다41457).
착오가 문제된 사안의 대부분은 동기착오이거나 적어도 동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가. 계약대상 목적물이나 당사자의 거래본질적 성상(性狀)에 대한 착오
계약대상 목적물이나 당사자의 거래본질적 성상(性狀)에 대한 착오는 제109조 제1항의 착오로 봅니다. 다만, 성상도 거래본질적이라고 볼 수 없는 한 당사자가 그 성상을 중요부분으로 삼기로 하였거나 성상의 차이에 따라 매매대금이 현저히 달라져 계약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을 요구합니다(2014. 3. 13. 2011다80210).
① 지목(地目)이 답(畓)인 토지를 매수하였는데 그중 절반 가까이가 경작할 수 없는 하천으로 사전에 이를 알았다면 매매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이 명백한 경우(대판 1968. 3. 26. 67다2160)
② 농림지역인 토지를 관리지역으로 알고 매매계약을 체결한 경우(대판 2012. 9. 27. 2011다106976, 106983)
③ 고려청자로 알고 매수한 도자기가 진품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경우(대판 2018. 9. 13. 2015다78703)
④ 상대방이 적법한 상속인이라고 여겨 합의한 경우(대판 2014. 11. 27. 2014다36160)
⑤ 설계용역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수급인이 건축사 자격이 없었던 경우(대판 2003. 4. 11. 2002다70884)
⑥ 신용보증계약에서 주채무자의 신용에 대하여 착오한 경우(2007. 8. 23. 2006다52815)
⑦ 전문건설공제조합이 도급금액이 허위 기재된 계약보증신청서를 믿고서 조합원이 수급할 공사의 도급금액이 조합원의 도급한도액 내인 것으로 착오하고 보증서를 발급한 경우(대판 1997. 8. 22. 97다13023)
⑧ 거래 상대방에게 목적물 소유권이 있는지 여부에 관한 경우(1999. 2. 23. 98다47924)
등에 취소사유로 고려될 수 있습니다.
목적물의 성상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담보책임도 적용될 수 있는데, 판례는 담보책임의 제척기간이 경과한 뒤 착오취소를 주장할 수 있다고 하여 양자의 경합을 인정합니다(대판 2018. 9. 13. 2015다78703).
나. 계약의 동기를 당해 의사표시의 내용으로 삼을 것을 상대방에게 표시하여 의사표시의 해석상 법률행위의 내용으로 된 경우
계약의 “동기를 당해 의사표시의 내용으로 삼을 것을 상대방에게 표시하여 의사표시의 해석상 법률행위의 내용으로” 된 경우에는 동기착오도 취소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별도로 그 동기를 의사표시의 내용으로 삼기로 하는 합의까지 이루어질 필요는 없습니다(대판 2015. 9. 10. 2014다56335, 56362). 표시는 반드시 명시적일 필요는 없고 묵시적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 표시된 일방의 동기가 당연히 법률행위의 내용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① 매수인이 부동산을 매수하면서 잔금지금 전 그 부동산을 은행 등에 담보로 넣어 매수인이 부동산을 매수하면서 잔금지급 전 매도인에게 그와 같은 자금마련계획을 알려 잔금지급 전 매수인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기로 하였는데, 이후 위 대출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음이 드러난 경우, 동기착오에 불과하여 취소할 수 없습니다(대판 1996. 3. 26. 93다55487).
② 건물을 분양받은 자가 일정한 조망(眺望) 일조(日照)가 확보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고 그 표시도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러한 조망 일조가 확보되지 아니한 경우에도 “같은 층 내의 위치에 따른 분양가에 거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고 전체 분양가 대비 분양가 차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 않은 점” 등에 비추면 이는 계약의 내용이 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대판 2010. 4. 29. 2009다97864).
다. 계산착오와 법률효과의 착오
① 두 감정기관의 평가액을 근거로 대금을 산정하기로 하였는데, 그 산정과정에 착오가 있었고, 협의매수 요청 시 서면으로 위와 같은 가격 결정방법을 통지하였다면, 대금결정기준과 계산내역 및 그 방법을 계약서에 명시함으로써 그 동기를 의사표시의 내용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대판 1998. 2. 10. 97다44737).
② 환율의 착오가 감액특약상의 하자나 착오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환율 자체가 계약금액의 결정에 의미가 있는 경우, 즉 계약금액을 외화단위로 셈하고 환율을 다시 외화를 원화로 계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든지 하는 경우여야 하고, 내 외자를 구별하지 아니한 채 원화에 의한 총액확정계약을 체결하였다면 환율은 동기에 불과하여 고려되지 아니합니다(대판 1990. 11. 23. 90다카3659).
③ 양도소득세가 부과될 것임에도 부과되지 아니할 것이라고 오인한 경우에도 그것이 법률행위의 중요부분에 관한 것일 때에는 취소할 수 있습니다(대판 1981. 11. 10. 80다2475).
④ 분할합병에 의하여 다른 회사로부터 전기공사업면허 등을 이전받은 회사로부터 그 면허 등을 재차 이전받는 내용의 분할합병계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채무도 인수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계약체결과정에서 상대방에게 표시되지 아니하였다면 이는 동기착오에 불과하여 취소할 수 없습니다(대판 2009. 4. 23. 2008다96291, 96307).
⑤ 가등기가 순위보전가등기와 같은 효력이 있어 이를 양수하여 본등기를 하면 후순위담보권이 소멸한다고 믿고 가등기 양수계약을 체결하였으나 실은 담보가등기로 그러한 효력이 없었다면 이는 법적 효과에 관한 착오로 동기착오이지만 이 점이 계약체결과정에서 상대방에게 표시되어 계약내용이 된 이상 취소할 수 있습니다(대판 2014. 11. 13. 2010다93769).
라. 쌍방 공통 동기의 착오
쌍방 공통 동기착오에서는 표시도 요구하지 아니합니다. 판례는 매도인 측이, 매도인이 납부하여야 할 양도소득세 등의 세액이 매수인이 부담하기로 한 금액뿐이므로 매도인의 부담을 없을 것이라는 착오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매수인과 매매계약을 체결하지 아니하였거나 적어도 동일한 내용으로 계약을 체결하지는 아니하였을 것임이 명백하고, 매수인도 매도인이 납부하여야 할 세액에 관하여 동일한 착오에 빠져 있었다면 이 착오는 중요부분의 착오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대판 1994. 6. 10. 93다24810)[위 사례는 상대방에 의하여 유발된 착오에도 해당합니다].
한편 판례는 “계약당사자 쌍방이 계약의 전제나 기초가 되는 사항에 관하여 같은 내용으로 착오가 있고 이로 인하여 구체적 약정을 하지 아니하였다면, 당사자가 그러한 착오가 없을 때에 약정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내용으로 당사자의 의사를 보충”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대판 2006. 11. 23. 2005다13288). 위 판결은 명시적으로 표시가 없음을 전제하면서도 보충적 해석을 인정하였는데, 당사자의 일치하는 가정적 의사가 없어 보충적 해석이 불가능할 때에는 착오취소를 허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라. 상대방에 의하여 유발된 착오
① 귀속해제된 토지인데도 귀속재산인 줄 잘못 알고 국가에 증여한 경우 동기착오이지만 그 동기를 제공한 것이 관계 공무원인 경우 이었다면 중요부분의 착오로 취소할 수 있습니다(대판 1978. 7. 11. 78다719).
② 담당공무원의 법규 오해로 잘못 회시한 공문에 따라 동기착오를 일으켜 기부채납의무가 없는 휴게소 부지의 16배나 되는 토지 전부와 휴게소건물을 기부채납하였다면 휴게소부지와 그 지상건물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하여는 중요부분의 착오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대판 1990. 7. 10. 90다카7460).
③ 시(市)가 산업기지개발을 위하여 토지를 취득함에 있어 필지 일부가 사업대상토지에 편입된 경우 그 전부를 협의매수하기로 하고 잔여지가 발생한 사실을 알리지 아니한 채 전체 토지에 대한 손실보상협의요청서를 발송하고 매수협의를 진행하였다면 동기의 착오를 이유로 취소할 수 있습니다(대판 1991. 3. 27. 90다카27440).
④ 보험회사나 보험모집종사자가 설명의무를 위반하여 고객이 착오에 빠져 보험계약을 체결한 경우그 착오가 동기착오(과세이연 여부 등)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중요부분에 관한 착오로 취소할 수 있습니다(대판 2018. 4. 12. 2017다229536).
민법 제109조 제1항은 착오자의 무과실을 요구하지는 아니하나, 중대한 과실이 없을 것은 요구하는 절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중대한 과실은 자신의 이용목적이, 관할관청의 허가를 받을 수 없다는 등으로, 좌절되었으나 그 위험을 본인이 부담하여야 할 경우이고, 간단한 확인절차조차 거치지 아니한 경우(2000. 5. 12. 99다64995), 계약서를 조금만 주의하여 읽어보았다면 피하였을 표시착오(대판 2011. 7. 28. 2010다69193) 등에서 인정되고 있습니다[그러나 대판 1997. 11. 28. 97다32772, 32789는 부동산 중개업자를 신뢰하고 매매 목적물을 확인하지 아니하였는데, 그 동일성에 착오가 있었다면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특히 상대방이 착오를 유발한 경우에는, 그러한 사정을 중대한 과실을 부정하는 데 참작하고 있고(대판 2003. 4. 11. 2002다70884), 상대방이 표의자의 착오를 알고 이를 이용한 경우 중대한 과실에도 불구하고 취소를 인정하고 있습니다(대판 2014. 11. 27. 2013다49794).
반면 민법은 상대방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별도의 요건을 두지 아니하므로, 상대방이 계약의 존속을 신뢰하였다가 손해를 입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이때 착오자에게 과실이 있다 하더라도 계약을 취소당한 그 상대방이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는 없습니다(대판 1997. 8 22. 97다1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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