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날
대회의 날이 밝았다. 이번에도 고요한 일요일 새벽에 집을 나섰다. 광화문역으로 가려고 지하철을 탔더니 내 앞에 앉아 계시는 분들이 전부 옷에 나와 같은 대회의 배번호가 붙어 있었다. 어떤 분은 부지런히 무릎 주위에 테이프를 붙이고 있었다. 광화문역에 가까워질수록 누가 봐도 마라톤 대회 나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광화문 광장 쪽으로 가는 길은 바닥에 앉아서 무릎에 테이프를 붙이거나 스트레칭을 하는 등 대회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역사 화장실은 줄이 너무 길었다. 작년 시청역에서 본 줄의 길이보다 거의 3배였다. 이 대회뿐 아니라 다른 행사가 있나 싶을 정도로 역 내부에 인파가 상당했다. 광화문 광장에 도착하니 자주 와본 곳이었음에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엄청난 인파에 가려 보이지가 않았다. 알고 보니 이 대회 참가자가 2만 명이었단다. 짐 맡기는 곳을 간신히 찾아 짐을 맡기고 나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 시간 많은 김에 화장실을 해결해야 할 듯하여 화장실을 찾아 탐험을 떠났다. 역사 화장실은 본 순간 포기했고 이렇게 번화한 곳에 개방 화장실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었다. 광화문 광장 주위에는 모여서 사진 찍고 스트레칭을 하거나 일회용 우비를 입고 열심히 뛰어다니시는 분들이 꽤 많았다. 아마 대회 전에 몸을 덥히고 풀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대회를 각자의 방법으로 준비하는 참가자들을 보며 탐험 끝에 개방 화장실을 발견했고 나만 화장실 찾아 삼만리가 아니었는지 대회장에서 약간 떨어진 그 건물에도 많은 대회 참가자들이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었다. 광화문 광장과 그 일대 몇 블록이 전부 다 마라톤 대회의 영향권에 있는 느낌이었고 대회가 이른 아침이었으니 망정이지 늦은 오전이나 오후였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출발 전에 같이 대회를 참가하는 팀원을 만났다. 출발 전 둘 다 (땀범벅이 아닌) 뽀송하고 (탈진이 아닌) 힘이 넘치는 상태로 인증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무사 완주를 응원하며 각자 지정 출발 그룹으로 흩어졌다. 이 대회는 사전에 제출한 기록과 접수번호순으로 그룹을 배정해 주었다. 나는 접수 번호가 빨라서 어쩌다가 앞 그룹에 배정받았다. 선두 그룹이니 뒤따라오는 낙오자용 버스의 압박은 받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이제 시간이 다 되어 하프 앞 그룹부터 출발을 시작했다. 서울 달리기는 광화문 광장에서 경복궁 쪽으로 뛰었으나 이 대회는 그 반대 방향인 시청 쪽으로 출발했어서 이번에는 다른 서울 시내의 모습을 볼 생각에 출발 전부터 기대가 되었다. 작년과 다르게 실외 달리기용 장비 세팅(렌즈, 폰을 넣은 러닝힙색, 이어폰)까지 준비했으니 걷지만 않으면 무조건 제한 시간 안에 들어온다. 아 그리고 바지(매우 중요)도 평소에 입던 걸 입어서 문제없었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내가 속한 그룹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