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멀리 있지 않다

퇴원과 이별

히어로 영화가 넘쳐나는 요즘, 영화 속 영웅은 일반 사람들이 해내기 어려운 일을 척척 해내곤 한다. 비범한 능력으로 주변 사람들을 지켜낼 때 만들어 내는 극적인 감동이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다. 그 멋진 모습을 동경해 영웅이 되고 싶다 생각한 적도 많다. 하지만 그들처럼 되는 것이 어찌나 어렵던지. 영웅을 돕는 조연 한 명이 되기조차 쉽지 않다. 무거운 돌을 번쩍 들고, 하늘을 날아다니고, 입이 떡 벌어지는 기술로 만들어낸 슈트를 입으며 적들과 맞선다. 이런 초인적인 능력이 없더라도 엄청난 두뇌와 신체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세상을 구해낸다. 나에게 이런 능력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나는 그저 보통 사람이다.


어른이 돼간다는 건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갖게 해 준다. 어릴 적만 해도 대단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던 나였는데 점점 평범 해져만 간다. 영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게 해주는 쿨 함이란. 내가 생각해도 나이 한 살과 함께 늘어가는 건 포기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나의 생각을 한 순간에 깨부숴준 한 편의 영상이 올라왔다. ‘슈퍼 히어로가 꼬마 히어로에게’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마당에서 동생과 놀고 있던 한 소년이 이웃집 개의 공격을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동생을 껴안고 공격을 막은 소년은 개에게 얼굴을 물리면서도 동생에게 도망가라 소리쳤다. 둘 중 한 명이 죽어야 한다면 그건 본인이 돼야 한다는 소년. 그 소년은 얼굴에 흉터는 남겠지만 이 사건을 알게 된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주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슈퍼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이 이 영상을 보고는 답장을 해주었다. 영화 배우는 소년에게 히어로의 자격이 있다는 영상편지와 함께 영웅의 상징물을 선물로 보내주었고 해당 영상은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영웅은 멀리 있지 않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댓글이다. 멀게만 느껴졌던 영웅이라는 단어가 살갗에 와 닫는 기분이었다. 영웅은 멀리 있지 않았다. 무거운 걸 번쩍 들고, 하늘을 날고, 번쩍이는 슈트를 입는 것이 영웅의 조건이 아니었다. 동생을 지키기 위해 달려든 소년의 용기 있는 행동이, 자신의 상징물을 기꺼이 건네주며 다친 소년의 마음을 지켜준 영화배우의 행동이 진짜 영웅의 조건이었다.

영웅(Hero)은 ‘보호자’, ‘방위자’를 일컫는 헤로스(Heros)에서 유래된 말이다. 단어 자체에 ‘지켜내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지켜낸다는 것은 몸뿐 아니라 마음을 포함한다. 요즘 나에게 이런 의미를 되새기게 해 주시는 분이 한 분 계신다. 최근 유명세를 얻어가는 크리에이터 중 한 명으로 전신마비 유튜버이다. 척수 손상 환자를 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채널인데, 자신이 척수를 다쳐 환자가 된 과정부터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재활하는 영상뿐 아니라 척수 장애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어 치료사에게도 유용한 채널이다. 해당 채널이 갖는 가장 큰 의미는 희망에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해낼 수 있다. 나는 언젠가 일어설 것이다. 나로 인해 모두가 희망을 가지면 좋겠다. 이런 영상 하나하나를 수만 명의 사람들이 보며 감동을 받는다. 심지어 내가 치료하는 척수 손상 환자 분들께서도 이 영상들을 보며 희망을 품고 치료하신다. 장애라는 신체적 한계를 뛰어넘어 누군가의 마음을 지키고 있는 이 분 또한 영웅인 것이다.


병원엔 많은 영웅이 존재한다. 밤 낮 없이 환자를 지키는 보호자도 있다. 아픈 곳을 낫게 해 주기 위해 열정을 바쳐 치료하는 의료진과 치료사도 있다. 서로가 서로의 영웅이 되어주며 삶이라는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낸다. 내가 가진 능력은 특별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환자의 삶을 지키기 위해 주어진 능력을 사용한다. 그들의 가까이에서 몸과 마음에 따뜻한 손을 대준다. 이런 마음으로 치료에 임한다면 언젠가 나도 영웅이 반열에 오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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