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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라는 순간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물리치료사의 몸 이야기(기억과 처음)

 지금 우리는 수많은 순간을 만나며 살지만 이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 같은 단어가 있다. ‘처음’

 나는 오늘 이 글을 통해 처음이라는 수많은 순간이 의미를 가지는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숨을 고르기 위해 본 하늘, 여행지에서 만난 웅장한 바다, 생각만 해도 나에게 울림을 주는 장소들. 모두에게 다르지만 각자에게 의미를 갖게 주는 풍경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이러한 풍경과 만나게 되는 매혹적인 첫 만남의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혹시 그 첫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가? 비록 대부분에게선 처음 만난 그 순간은 잊혔을지 모르지만 분명 각각의 장소들은 심상의 중요한 의미로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나의 기억 속 첫 바다는 갯벌이다. 조개를 캐고, 뻘밭을 뛰어다니는 어린 내가 먼바다를 앞두고 있다. 당시의 내게 바다는 놀이터였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뛰어놀며 웅장한 바다가 내게 그렇게 들어왔다.      

 이렇게 특별한 장소와 순간이 나에게 하나의 일화 기억으로 입력된다. 일화 기억이 머릿속에 입력된 순간, ‘해마’라는 장소에서 장면과 장면을 분리하며 공간과 시간 순서에 맞춰 재배열된다. 이를 ‘부호화(Encoding)’ 과정이라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주의 집중(Attention)’, 즉 내가 집중한 특별한 순간에 대해서만 이런 작업이 일어난다. 우리에게 많은 순간이 거쳐가지만, 우리의 머릿속에 기억으로 남는 것들은 중요하다. 그렇기에 집중한 순간들만 선택적으로 일어날 뿐 모든 것이 기록되지는 않는다.

 기억이 남는 과정은 감정을 동반한다. 감정이라는 동반자는 사진으로, 일기로, 혹은 친구와의 수다를 통해 계속해서 그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바다로 향하는 직·간접적인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처음을 다시 경험하게 해주는 과정에서 시간적 순서와 내용은 각색되면서도 반복을 통해 ‘저장(Storage)’ 되고 ‘응고화(Consolidation)’된다. 이 지점에 이르게 된다면 더 이상 머릿속에서 기억을 위한 작업은 필요 없어진다. 이미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이 기억을 꺼내 오기만 하면 된다. ‘회상(Retrieval)’ 작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시간의 개념을 걷어내며 의미만을 남기는 의미 기억으로 바뀌어간다. 이제는 직접 바다로 가지 않아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되어 떠올리기만 해도 처음의 웅장한 순간으로 나를 보내준다.

 이제 나에게 바다는 떠올리기만 해도 웅장한 의미로 남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매 순간 처음이라는 순간을 여행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간다.     


 나는 매일의 순간이 만들어주는 의미를 잊어만 가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은 자의가 아닌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의해 점차 기억이 사라져 간다. 기억이 사라져 간다는 건 어린아이가 되어 가는 것과 같다. 매일의 순간이 처음이고 모든 순간이 새로워진다. 우리가 보기에는 당연한 일상들이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게 되었다. 아픈 사람들에게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쉬운 과정은 아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와 같이 애쓰며 기억하려 하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는 한다. 사소한 것들조차 처음 만나는 특별한 순간이 되어 버린 이들. 별 것 아닌 것들을 기억하고 즐거워하는 이들을 바라볼 때면 괜스레 뿌듯함에 잠기게 된다.

 얼마 전 자주 오르는 등산길에서 새로운 길을 보았다. 맑은 날에만 보았던 등산길 풍경이 안개로 가득 차며 길이 아닌 다른 풍경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수십 번도 올랐던 길이었지만 이렇게 길이 선명하게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시야가 좁아졌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길을 걷다 보니 내가 걷던 산길이 이렇게 아름다웠는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미 익숙해져 버린 그 길을, 나는 처음 걷고 있었다.

 요즘 치료하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가 되어가는 이들보다 오히려 내가 익숙하다는 이유로 아니, 이미 기억하고 있다는 이유로 매일 만나는 처음의 순간을 홀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내게 남겨진 기억 속 의미들은. 즉, 나를 구성하는 세계는 처음이라는 순간을 여행하며 쌓인 시간들에 순간, 순간이 걷어지며 남겨진 것들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 만나게 될 ‘처음’이라는 순간을 의미 있게 살아내고 싶다. 어제와 같은 것 같지만 분명히 다른 오늘 하루. 홀대하며 넘기기엔 너무 소중한 처음의 순간이다. 나는 오늘도 어제와 다른 ‘처음’이라는 순간을 다시 만나러 출발한다. 후에 남겨질 ‘기억’이라는 의미가 보석처럼 더욱 빛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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