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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에필로그

물리치료사의 마음 이야기

 ‘장애’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장애는 최근 뜨거운 감자이다. 자폐 스펙트럼을 주제로 하는 드라마를 통해 장애 그 자체로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출근길 장애인 시위로 인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장애는 사람의 몸, 혹은 마음에 기능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넘어 사회적 활동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슈를 만들어내곤 한다. 화두가 될만한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선 잠시 접어두고 장애를 만나는 순간에 관하여 간략하게 적어볼까 한다.    


 장애는 크게 신체적 장애와 정신적 장애로 나뉜다. 물론 신체적 문제와 정신적 문제를 칼로 무 자르듯이 정확하게 나눌 수는 없지만, 셀 수 없이 많은 병이 존재하기에 신체 기관별로 분류 체계를 만들었다. 둘 중 어느 것도 경중을 따질 수는 없다. 다만 어느 것이라도 장애 판정을 받는 순간에 직면한다면, 누구라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사실만큼은 환자나 보호자 그 누구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더욱이 재활병원에 내원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두 가지 장애가 동반된다. 하나만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 사실을 동시에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의 마음은 공포와 혼란, 어느 단어로도 설명이 어렵다.      


 누군가 영구적 장애를 갖고 살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은 후 치료실을 방문했다. 덤덤한 듯 말하지만 떨리는 눈동자와 목소리. 머리보단 피부로 느껴지는 복잡한 심경. 어떠한 표현으로도 대변할 수 없는 수만 가지 언어가 들려온다. 아무리 강인한 마음을 소유했더라도 장애 판정을 받고 난 뒤라면 흔들리는 마음의 소리는 쉽사리 숨겨지지 않는다. 물론 순간의 감정은 언젠가 사그라진다. 각자가 받아들이는 시간은 다르지만 감정은 물의 떨림과 같아서 더 이상의 흔들림만 없다면 충격에 요동치는 마음도 어느 새부터는 차분함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장애라는 커다란 바위는 물속에 덩그러니 던져져 있기에 물의 수위가 높아져 버린다. 그 때문에 조그마한 흔들림에도 쏟아지기 쉬운 상태가 되어 버린다. 물리치료사가 되고 난 후 수없이 많이 장애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감히 쉬운 말로 가벼운 위로를 건넬 수는 없었다. 위로라는 조약돌 한 마디가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마음의 출렁임을 위태롭게 만들기에. 괜한 말보단 침묵으로 곁을 함께 하는 편이 나음을 많은 사람을 지나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아픔을 주지만 결국 지나 보면 약이 된다. 요동치던 물결도 시간이 약이 되어 잔잔함이 흐른다. 마음에 약이 듣기 시작하면 몸의 치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도 살아야죠.”     


 종종 치료에 반영하기 위하여 잠잠해진 이들의 생각을 조심스레 묻고는 한다. 움직이지 않는 몸만큼이나 마음도 굳어버리지는 않았는지. 혹여나 삶의 의욕을 잃지는 않았을지. 노심초사하며 말을 건네 보면 의외로 사람은 정말 강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살아야 하니까. 사람을 일으키는데 거창한 이유는 필요 없다. 살아야 한다. 살고 싶다는 본능에 가까운 이유가 사람을 다시금 움직이게 해 준다.


 연극과 같은 문학작품에서 서사를 마무리하는 맺음 부분에 에필로그라는 후일담이 들어간다. 마지막 대사나 결말을 보충하는 장면을 제공함으로써 이야기를 미래로 연결시켜주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한다. 비록 우리가 보는 극은 끝났을 지라도 에필로그로 인해 그 안에서 인물들을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것이다.

 인생은 마치 에필로그와 같다. 마치 삶이 끝날 것만 같은 순간에도 살아가기만 한다면 누구라도 미래로 향하게 해 준다. 장애를 만나는 순간. 삶을 요동치게 하는 어려움이 마치 이들을 끝내버릴 것만 같을지라도 이내 다시 일어나 나아갈 것이다. 인생이라는 에필로그가 미래를 향해 길을 열어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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