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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 맛에 당했다.

물리치료사의 마음 이야기(아이들의 순수함)

"선생님 여자 친구 있으세요?"


발성이 힘들어 힘들게 꺼낸 목소리에 궁금함이 가득하다.


"응? 없는데? 왜?"


항상 천진난만한 웃음에 예상치 못한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던 소아 환자. 오늘은 무슨 말을 할까 로봇 옆에 서서 기대하는 나에게 질문을 건넨다. 쉽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어떤 답이 나올까 궁금한 나머지 역질문을 날려보았다.

'피식'

웃긴 말 한마디 나올 줄 알았는데. 말조차 필요 없다는 듯한 반응 하나로 나를 포함한 주변의 모두를 웃음바다에 빠뜨렸다.


 나는 아이들이 참 좋다. 내가 직접적으로 소아 치료를 하지는 않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일지는 몰라도 아이들이 치료실에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미소 지어진다. 아이들은 백옥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티끌 없는 표면에 내 얼굴이 비친다. 숨김이 없고 의도가 없다. 종종 의도 말을 하곤 하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말끝에서 아이의 부모님이 보인다. 아이를 통해 몰래 이야기하고자 해도 그마저도 티가 난다. 몰래 숨겨 놓은 뜻이 나타날 때면 부모님과 함께 실소를 자아내곤 한다. 어른들의 순진함과 다르게 순수함은 표현한다고 표현되지 않는다. 반대로 숨기려 해도 숨기지 않는다. 덕분에 웃지 못할 이야기에도 웃게 해주는 마법을 펼치고는 한다.  


 신기하게도 아픈 아이들은 나이 들지 않는다. 이는 인지적인 영역에서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맑은 마음에 걱정이 없어서일까. 얼굴과 주민 등록상의 나이가 맞지 않아 당황하고는 한다. 한 번은 고등학생 정도밖에 안 되겠다 생각한 환자가 있었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나를 나이 들게 하는 건 어쩌면 시간이 아니라 걱정일지도 모르겠다. 티 없이 드러난 마음의 나이가 외면에도 나타난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할 따름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알기 힘든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깊지도 않은 우리의 생각을 어렵게 하는 건 뭘까. 사람의 말을 듣다 보면 의미보다 의도에 아플 때가 많다. 같은 말에도 탁도에 따라 화자의 의중이 달라지기도 한다. 덕분에 어른이 되어갈수록 마음과 말에 숨김이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순수함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순진하다며 어른스럽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너무 숨기면 의도를 의심하는 말을 건네 온다. 나의 마음이 점차 탁하게 함으로써 나를 지킨다. 결국 나 스스로 상처 받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일까.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조금 슬프다.

 그래서 나는 순수한 아이들이 좋다. 아무 목적도, 의도도 없는 말과 웃음에 무장해제되는 나를 보며 심각하던 나의 고민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도시에서 떠나 만난 숲 속의 시냇물을 만난 것처럼 나를 숨 쉬게 해 준다. 나에게 아이들이란 그런 존재이다.


 ‘선생님은 아빠 있어요?’, ‘선생님은 엄마 언제 와요?’, ‘선생님은 결혼 언제 해요?’ 얼굴을 찡그리며 들을법한 예민한 질문들. 충격적 이게도 지난주에 들었던 질문 중 몇 가지에 불과하다. 오히려 듣기만 해도 놀랄 질문들 덕분에 박장대소를 하며 웃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순한 맛에 당하는 유쾌한 시간을 계속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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