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양은 수천 년 전부터 가축화되었다.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는 삶이 수천 년간 이어졌다.* 그래서 위험에 둔감하다. 포식자가 나타나도 적극적으로 도망가지 않고 우왕좌왕하다 자기들끼리 압사당한다. 인간이 주기적으로 털을 깎아 주지 않아도 살지 못한다. 양모 생산량이 많고 털갈이가 없는 개체로 계속 교배된 탓에 털이 계속 자란다. 털을 깎아주지 않으면 열사병에 걸리거나 움직이지 못해 죽을 수도 있다.**
2. 만약 지금 양목장에 있는 양들을 야생에 방목하면 포식자에 잡아먹히거나 무거워지는 털 때문에 결국 다 죽게 될 것이다. 울타리가 없어도 양은 그 영역 밖에서는 살 수 없다. 너무 가축화되어 인간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게 된 것이다. 양을 지켜주던 울타리가 사실은 양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도록 만든 셈이다.
3.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나의 생존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부모든, 회사든, 학벌이든 말이다. 어느 날 이 울타리가 사라졌을 때 나는 내 자신을 스스로 지켜낼 수 있을까. 아니면 양처럼 금방 죽게 될까.
* Clutton-Brock, J. (1999). <A Natural History of Domesticated Mammals>, Cambridge University Press
** Australian Broadcasting Corporation(2019. 10. 21.), 'Chris the sheep, made famous by his record-breaking fleece, has died', 물론 모든 품종이 그런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