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ader Sep 23. 2024

개 발랄하지만 개는 늙는다

같이 살지만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개 발랄하지만 개는 늙고 언젠가 죽는다."

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 귀여운 새끼의 모습부터 청년의 개 발랄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무엇을 해도 힘들어 보이는 노견의 모습을 보이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모든 생을 지켜보게 만든다. 누군가의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볼 수 있는 것은 좋았다가 슬펐다가 만감이 교차한다. 어찌하면 나에게는 처음부터 마지막이 걱정되어 정을 주지 않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가끔 살면서 '개보다 못한 놈'이라는 표현을 듣게 된다. 가끔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개+아저씨'라는 표현으로 개저씨라고 부르기도 하니 가끔 개도 개저씨로 불리는 사람도 억울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도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까칠하던 아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까칠한 성격을 유지한다. 서열을 중시하는 성격이라 절대 나의 서열 밑으로 살 수 없다는 각오가 느껴진다. 하지만 나도 절대 키우는 개 밑의 서열로 내려갈 생각은 없다. 성격 나쁜 개는 처음에는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주는 간식의 유혹에  넘어가서 언제나 반갑게 인사하고 당당하게 간식을 요구한다. 파블로프의 개와 다름이 없구나.


"사람 밥은 안돼!"

식사 중에 한눈을 팔면 순식간에 식탁의 음식을 물고 달아나기도 한다. 평소에는 어슬렁거리면서 불러도 쳐다보지도 않는 게으른 강아지가 살면서 가장 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물고 간 음식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면 으르렁 거리며 대치하고 음식을 물고 숨어버린다. 다 먹고 나서는 뻔뻔한 얼굴로 다시 주변을 서성이며 식탁의 음식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며 다리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수컷이지만 끝없는 식탐으로 축 처진 배를 가지고 있어서 동물병원에 가면 주변 사람들이 배가 축 쳐진 것이 새끼를 많이 낳았냐는 질문을 받게 만들었다.


늙은 개

늙은 개야 늙은 개야

뛰어볼래 소파 위로

일곱 살 작은 나를

무찌르던 이를 보여줘

국에 밥 말아 줄까

치킨을 시켜 먹을까

엄마께 혼난 대도

사람 밥이 맛있잖니

기억하니 친구야

우리 쫓던 무지개를

나는 다 잊었는데

넌 아직 쫓고 있구나

잔나비, <잔나비 소곡집 I>, 2020.11.06.

https://www.melon.com/song/detail.htm?songId=33043507


사람 주변에 개처럼 밀땅을 잘하는 존재가 또 있을까 싶다. 존재만으로 다양한 사건을 만들어 가끔은 탄식을 하게 만들고, 위로를 주기도 한다. 강아지 때부터 불러도 쳐다도 안 볼 때 알아봤지만, 어린 딸아이의 새우깡을 뺏어 먹겠다고 아이를 물어버린 날 이후 절대 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늙어서 검은 털은 하얀 새치가 되고 이제는 잘 걷지도 못하는 개를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발이 닿지 않는 곳을 손으로 벅벅 긁어주고 정성껏 마사지를 해주고 있게 만든다.

"늙은 개에 대한 나의 바람은 편하게 잠든 채 조용히 무지개다리를 건너길 바라는 게 유일하다. 하나 더 바래도 된다면 다음 생엔 제발 못된 성격은 고치면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 헤어롤을 하고 인수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