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평생에 몇 번이나 이사를 갈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이사는 어렵다.
"아이를 위해 전학 가는 것이 어떨까 싶어요."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아내는 전학을 권유받았다. 형편이 안 좋아도 학군지로 이사 가려는 부모님들도 많은 상황에서, 아이가 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좋은 환경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 본인도 여러 지역의 전근을 통해 다양한 학교에서 근무해 보았고, 본인도 지금 학군지로 이사하여 고등학생, 중학생 자녀들을 키우고 있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우리는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나는 이사하는 게 싫다."
나이가 드신 부모님은 이사 가지 말고 근처에서 계속 살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그렇게 멀리 이사하는 것도 아니고 맞벌이로 일하는 우리는 아이의 학교와 학원 근처에서 아이가 스스로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족 모임에서 큰 소리도 나왔고 다시 찾아가서 설명도 드리고 몇 번의 이야기가 오고 간 후 부모님을 겨우 설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소란을 겪고 이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
"계약을 하겠다고 하네요."
집을 내놓고 다음 날 저녁부터 사람들이 집을 구경하러 왔다. 두 번째로 오신 부부는 마음이 드시는지 아이를 데리고 토요일 낮에 다시 구경하러 오셨다. 그리고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시고 가셨다. 부동산 사장님께서는 계약하겠다고 재촉하고 있다고 전화해 주셔서 우리도 급하게 이사 갈 집을 보러 다녔다. 그리고 퇴근 후 방문한 두 집 중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였다. 문제는 우리 말고도 계약하고자 하는 분이 더 있었다. 매도인 부동산 사장님께서 집주인이 가계약금을 다음날 오전까지 넣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계약하겠다는 말을 전하셨다. 그래서 우리 집을 계약하겠다는 분에게 가계약을 하자고 부동산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그날 저녁동안 연락이 되지 않자 이사 가려고 하던 집은 다른 분들과 계약하였다. 다음날 우리 집은 오후 계약하지 않겠다고 부동산 사장님이 전해주신다. 이사라는 게 정말 계획대로 술술 풀리는 게 어렵구나 싶었다.
"계약하겠다고 가계약금 입금하셨습니다."
그렇게 혼란한 한 주가 지나고 옆동에 사시는 분이 집을 구경하러 오셨다. 그리고 다음날 그분은 남편도 데리고 집을 보러 오셨다. 그리고 바로 집을 계약하겠다고 하시고 가계약금을 입금하셨다. 드디어 우리 집과 안녕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사 갈 집을 보러 갔는데 일주일 만에 남은 집들은 상태가 몹시 안 좋은데 가격도 비싼 편이었다. 그러는 와중 옆동에 사시는 분의 집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부동산 사장님을 통해 듣게 되었다.
"계약이 어려울 것 같네요."
전세를 빼고 우리 집으로 이사하려고 계획하셨던 옆동 분들은 등기부등본을 발급해 보니 집주인이 세금 체납으로 집에 압류가 걸려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저녁 집주인분과 만났는데 전세금과 체납된 세금을 합하니 집값보다 많아 해결이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후에 집 계약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부동산 사장님을 통해 듣게 되었다. 그래서 받은 가계약금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사장님은 계약금이니 알아서 하시면 된다고 하지만 옆동 분들은 돌려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신다고 전해주신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아내는 여기저기 물어보니 가계약금도 계약금이니 반환할 의무는 없다고 하지만 지금 전세금 반환으로 걱정이 많을 분들에게 원칙을 따지며 모른 척하는 게 우리 성향에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내는 돌려주려면 최대한 빨리 돌려주는 게 좋겠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부동산 사장님을 통해 계좌를 받아서 가계약금을 다시 돌려주고 계약은 무효가 되었다. 아마 우리가 이사를 위해 가계약금을 입금하고 계약을 취소하면 분명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남들이 우리의 결정을 한심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이익으로 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웬 참외가 있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타이어에 나사못이 박혀 바람이 빠진다. 급하게 집으로 오는 길에 근처 정비소를 돌고 돌아 세 번째 정비소에서 타이어의 구멍을 막고 겨우 안도하였다. 그리고 제발 더 이상 안 좋은 일들이 생기지 않기를 기원했다. 학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오는 데 문 앞에 참외 한 박스와 손 편지가 있다. 편지를 읽어보니 우리 집을 계약하려던 옆동 분이다. 가계약금을 돌려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와 우리 가정의 행운이 가득하길 기원하겠다는 손편지였다. 살면서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살았냐는 질문에 확실하게 답하기 두렵지만 나름 현명한 선택을 하면서 살려고 했는데 오늘은 참외 선물을 받았다.
매일매일이 마지막 날인데 p.196
다시 못 오는 날이 어디 오늘뿐이겠습니까? 매일매일이 마지막 날인데 1년 내내 잊고 지내다 오늘에야 그걸 느끼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괜찮아요. 오늘이라도 그걸 알고 내일을 맞는 게 어디예요. 돌이켜보니 올 한 해도 그저 잃어버리기만 한 건 아니에요. 가슴 아픈 일도 있었고 행복한 일도 있었습니다. 올해를 이렇게 행복하게 보냈으니 새해에는 더욱 기쁜 일이 많을 거라 기대합니다.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김창완, 웅진지식하우스, 2024.03.28.)
우리는 이사를 갈 것이고 또 좋은 이웃들을 만나 같이 재미있게 살아갈 것이다. 이사라는 것이 고려해야 할 것도 많고 무엇보다도 많은 돈이 필요하다. 돈이 많으면 이런 걱정들이 없을 텐데 하면서 로또도 사보지만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돈 벌고 있는 게 아닌가 위로해 본다. 아무튼 이사는 복잡하고 어렵다. 그래도 우리는 어디에서 살든 행복하게 잘 살 것이다. 오늘은 집에 성수라도 뿌려볼까 싶다.
"좋은 삶을 살다 보면 행복한 소식을 듣는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