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그림자를 판 사나이
"그냥 저를 내버려 두세요."
최근 부서를 이동하고 평소보다 요청도 많고 회의도 많아졌다.
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오늘 부서를 옮기고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는 점심 식사 약속이 있다.
사무실을 살짝 벗어나서 부서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고맙게도 목표지향적인 분들을 욕하는 시간도 있었지만 모두 성향이 다르다는 것만 깨닫게 되었다.
역시나 나는 회사에서는 말을 최대한 줄이려고 오늘 또 나를 단속한다.
"월요일은 제발 평온하길!"
오늘은 부서장과 얼굴 마주치지 말고 조용히 퇴근해야지 생각했다.
그래서 화장실도 안 가고 책상에 앉아서 밀린 일을 쳐냈다.
이곳저곳에서 질문이 들어오지만 최대한 건조하게 말을 했다.
오늘만큼은 말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외부에서 확인 전화가 와서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확인 전화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대화를 시작했다.
뭐 예상대로 간단한 일이라고 말을 하지만 몹시나 귀찮은 일을 떠맡게 되었다.
"나의 업보인가?"
하품을 늘어지게 해도 잠이 깨지 않더니 점심을 먹었더니 더욱 몽롱하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다는 말이 내 이야기였구나.
출근을 하니 잠을 잘못잔 것도 아닌데 목이 뻐근하다.
고민에 고민이 늘어가는데 할 일에 일이 더해진다.
반쯤 고장 난 로봇의 공격을 피해야 살아남는 주인공 옆에 보이지 않는 등장인물 같다.
누가 나를 이곳에 세운 것일까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별일 없이 사는 게 자랑인 삶을 살아온 벌일까 크게 숨을 내쉰다.
노바디의 여행 149
여행자는 낯선 존재이며, 그러므로 더 자주, 명확하게 분류되고 기호화된다. 국적, 성별, 피부색, 나이에 따른 스테레오타입이 정체성을 대변한다. 즉, 특별한 존재 somebody가 되는 게 아니라 그저 개별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행자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자’. 노바디 nobody일 뿐이다.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 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했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
《여행의 이유》(김영하, 문학동네, 2019.04.17.)
"I want nobody nobody but you"
어찌 보면 다들 살겠다고 자신을 숨기며 사는 게 아닐까 싶다.
인생을 여행자처럼 정착하지 못하는 나는 노바디의 직장인을 꿈꾼다.
김희애 배우가 부른 '나를 잊지 말아요'를 신파로 생각하는 나에게 원더걸스의 '노바디'도 사치인가 싶다.
알다가도 모를 인생을 사는 나는 얼른 퇴근해서 뻐근한 뒷목에 파스라도 붙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