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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호너구리 Sep 04. 2024

세후 190 인간 - 7

세후 190 인간으로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었다.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열심히 일어나서 출근을 하고 그럭저럭 잘 버텨내고 있었다. 세후 몇백짜리 인간이던지. 사는 건 똑같다. 열심히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하고 혹은 야근을 하고. 세후 190 인간의 삶이지만 썩 나쁘지 않았다.


평화는 늘 오래가지 않는다. 슬프게도 나의 썩 나쁘지 않음. 너무나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일단 집에서 물이 쇠었다. 당장에 공사를 해야 돼서 결국 밖으로 나가게 되는 상황이 나와버린 것이다. 다시 생존이었다. 세후 190 인간에게 뭔 돈이 있겠는가.


 모텔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며칠 잘 수 있는 곳을 알아봤지만, 그동안의 인맥이 엉망이었던지, 자취하는 친구가 없었고 결국은 어머니와 같이 사는 J의 집으로 피신을 갔다. 세상에.어머니가 있으신지라 더더욱 힘들어서 결국은 회사사람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다. 뭐 이 정도까지는 견딜만했다

혼자 떠나 다니는 보헤미안 같은 기분도 들었다. 


이래저래 어찌됐건 잘 지내고 있었다. 뭐 썩 나쁘지 않은 상황이구나 싶었다. 


나를 한방 먹인 것은 역시나 엄마였다.

그놈의 입이 방정이신지 "따른 집 아들들은 아프거나 집에 일이 있으면 천만 원을 턱턱 내어준다"라는 말에 한번 무너져버렸다. 혹시 결혼을 할지도 모르니, 그래도 없는 돈으로 열심히 모은 돈을 엄마에게 줬다. 속이 쓰렸다. 그래도 엄마니깐. 그래도 가족이니깐 꾹 참았다. (물론 술을 왕창 마셨다.)


그럭저럭 버티고 있었지만, 다른 하나의 소식이 나를 무너뜨렸다. 여자친구의 병의 재발. 재발확률이 높은 병이었기에, 걱정은 하고 있었지만, 혹시나 했다. 다음에 나올 말은 역시나 였다. 물론 죽을병은 아니지만,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하는 여자친구의 떨리는 음성을 듣는 순간 무너졌다. 속상해하는 여자친구. 그리고 병원비. 나의 하찮은 능력과 월급, 공사비 이 모든 것들이 휘감으며 울음이 났다. 길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한참을 울었다. 그냥 언제 이렇게 울었나 싶은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울었다.


세후 190 인간의 가장 슬픈 점은, 위기에 무너진다. 위기, 시련, 고통 이런 것들이 왔을 때. 어느 방패막이도 없다. 그저 쓸려간다는 것이다. 


다시 내 잔고를 봤지만 힘이 나지 않았다. 세후 190 인간의 말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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