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나는 '예스맨'이었다. 상사의 지시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부당한 요구에도 쓴웃음을 지으며 일을 해치웠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켜켜이 쌓인 불만과 좌절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속으로는 숱하게 따지고, 반박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언제나 "네, 알겠습니다"였다.
돌이켜보면, 진정으로 일에 몰두했던 기억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시계 초침만 바라보며 하루를 흘려보내고, 수동적으로 주어진 일만 처리하며 기계처럼 살아왔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세후 190 인간'이 되어 있었다.
테마파크 아르바이트 시절, 불합리한 근무 환경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예스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찬 신입 알바생이 나타났다. 그는 거침없이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했다. 겨우 한 달 남짓 일한 그가 보여준 용기와 열정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곧 묵살당했다. 관리자는 그를 질책했고, 오랜 시간 침묵을 지켜온 다른 알바생들을 예로 들며 그를 깎아내렸다. 그 순간, 나는 숨이 막히는 듯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말 잘 듣는' 직원, '까라면 까는' 아르바이트생. 그게 바로 나였으니까.
그 후로도 나는 변하지 못했다. 여전히 부당함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회피하고 침묵하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조금씩 나 자신을 잃어갔다.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용기, 스스로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는 힘.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린 대가는 컸다. 나는 결국 '세후 190 인간'이라는 초라한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침묵의 대가는 너무나 컸다. 잃어버린 용기와 희미해진 자존감. 나는 과연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린 채 살아온 것은 아닐까. 씁쓸한 질문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빛을 잃은 채 마음속을 떠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