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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성의 생각 Sep 11. 2024

4 - ‘신’과 나

 세상 속 종교 | 종교 속 세상 | 신 존재 가능성 | D.E.M



서로 이해되지 않는 관계. 그럼에도 이해시켜야 한다는 사명감. 그곳에 현대 사회 속 종교의 참모습이 있. 그러나 세상 속에서 존중받는 바람직한 종교의 모습은 이해시키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하거나 아예 체념하는 종교다. 아주 성숙한 종교인들만이 서로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음에도 ‘대화’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며, 그것을 기꺼이 실천한다. 하지만 그가 추구하는 ‘정통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 대화는 다시 어색해진다. 바꿔 말하면 종교다운 색채가 약해질수록 종교적인 대화는 성숙해진다. 그렇게 사회 속에서 결국 종교는 영원히 ‘이방인’의 목소리로 남는다.




한 사람이 종교 세계의 내부자가 되는 길단 두 가지뿐이다. 처음부터 그 세계 안에 있었거나, 어떠한 계기로 인해 그 종교에 귀의하는 것이다.





종교의 세계에서 안에서 태어난 이들은, 처음부터 생각의 중심에 도전해선 안 될 명제의 씨앗이 심겨진 상태에서 인생을 시작한다. 반면 종교에 귀의하는 자들은, 호기심 때문에, 혹은 산전수전 끝에 찾아온 결정적인 깨달음 때문에, 아니면 이성과 인과적인 설명으로 파악되지 않는 한계를 만나서,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린 진리의 수목을 분갈이한다.



당신이 상대방을 이해해 줄 수 없기에, 상대방도 당신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 설득을 체념해 버린다면, 그와 평화롭게 지낼 수 있겠지만, 예정된 불행 속에 그를 방치하는 위선을 범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당신의 삶 속에는 설득되는 사람들과 이미 그 세계 안에서 태어난 사람들만이 남게 된다. 이 과정이 바로 종교 세계에서 내부자로 남는 길이다.




당시 몸담았던 대학교의 기조는 성서 연구가 모든 학문(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 인문학을 다 포함해서)과 일상의 해석학적 토대라는 식이었다. 뭐든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 책을 믿고 봐야 했다.




하지만 그런 신념을 가진 채 공부를 거듭할수록, 성서를 이해하는 일도, 세상을 이해하는 일도,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도 점점 어려워질 뿐이었다.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부분은 따로 있었다. 지금껏 소모된 삶이 낭비였을 수 있다는 가능성, 영혼 없는 삶 속에 남겨질 수 있는 가치에 대한 의문, 그리고 죽음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는 삶에 대한 허무감 말이다.




구성 :


1. 세상 속 종교


2. 종교 속 세상


3. 신 존재 가능성


4. DEUS EX MACHNA


※ 겅고 : 불신앙적인 색채의 글이 불편한 이들은 읽지 않았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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