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기질
기질(Temperament)과 성격(Personality)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태어날 때부터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특성이 기질이라면, 그 기질을 바탕으로 각자 처해진 환경이나 경험에 의해 형성되는 생각. 믿음. 성향 등을 통틀어 성격이라고 합니다. 즉, 타고난 기질은 실제로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들은 제각기 타고난 기질이 다릅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어떻게 이렇게 서로 다를 수 있을까 신기할 때가 많았습니다. 첫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신중하고 조심성 있고 성실했던 데 반해, 둘째는 자기주장이 분명하며 항상 돋보이고 싶어 했지만 지구력은 부족했습니다. 첫째는 어릴 때 입혀주는 대로 아무 말 없이 입곤 했는데, 둘째는 돌 남짓부터는 마음에 안 드는 옷은 안 입겠다고 표현하고 자신이 입을 옷을 직접 고르고 싶어 했습니다. 아마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이렇듯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음에도 아이마다 타고난 본연의 기질이 각양각색임을 느끼셨을 겁니다.
두 살 터울의 두 아이들을 함께 키우긴 했지만, 기질과 성격이 크게 달라 각각을 대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차별화되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자기 통제력이 강했던 첫째는 문제집을 풀거나 숙제를 하는데 있어 엄마의 잔소리가 그다지 필요 없었습니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 시간이 부족해 숙제를 완수할 수 없을 때 불안감을 나타내곤 했는데, 이때는 좀 안 해가도 괜찮다고, 한 번 정도는 그렇게 부담 가질 필요 없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둘째는 과제물이 있을 때, 항상 최대한으로 미뤄뒀다가 마지막 순간에 급하게 하는 게 일상적이었습니다. 해서 숙제를 좀 일찍 시작하라는 잔소리를 해야 했고, 또 숙제를 성실히 했을 때 칭찬 스티커를 붙여주는 등의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다소 소심한 성격의 첫째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힘들어 하는 성향이 보여, 소수정예 유치원 한곳에 2년 내내 보냈습니다. 그러나 사회성 좋은 둘째는 2년 간 유치원을 2번 옮겨 총 3곳 다녔습니다. 그럼에도 새 유치원에 등원한지 일주일이면 그 곳 환경에 완벽히 적응했고, 오히려 유치원을 옮김으로서 다양한 친구들을 사귈 기회가 계속 생겨 더 재미있다고 얘기했습니다. 둘째는 선생님께 잘 보이고자 하는 욕구가 무척 강해, 유치원 다닐 때는 셔틀버스에서 다 함께 내리면 다른 아이들은 가방과 외투를 벗은 후 교실에 들어가 선생님께 인사드리곤 했는데, 둘째만 가방을 맨 채 교실로 쏜살같이 들어가 선생님께 1등으로 인사를 드린 후 나와서 가방과 외투를 벗었다고 합니다.
#커가며 변화하는 아이들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며 각자 새로운 경험을 해나감에 따라, 어릴 적 보였던 기질적 특성이 옅어지며 성격이 또 다르게 발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발표력도 좋아지고, 큰소리로 자기주장을 내세우진 않았어도 논리적으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줄 아는 아이로 거듭났습니다. 둘째는 커가면서 공부를 잘해야 돋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목적(?)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이에,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책상에 앉아 할 일을 하는 아이로 거듭나고 지구력도 향상되었습니다.
위와 같이 자연스럽게 달라지는 아이의 성격을 부모가 앞장서 바꾸려고 한다고 바꿔지기는 어렵습니다.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고 한다고 이끌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가 강압적이거나 과도하게 아이를 바꾸려고 한다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향적인 아이는 운동이나 외부활동을 통해 에너지를 발산시켜 줘야 하는데 과하게 틀에 가두려고 노력 한다던가, 소극적인 아이의 성격이 부모 마음에 들지 않아 외향적으로 변하게 하려고 아이가 소심한 모습을 보일 때 화를 낸다던가 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쉽지는 않지만, 아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점진적으로 유도해보되, 기본적으로는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를 기다려줘야 합니다. 아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활해 나가는 부분을 묵묵히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면 됩니다.
#아이와 엄마와의 교감
아이가 속마음에, 아이의 일상에, 그리고 아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엄마가 공감해주는 것은 아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아이가 하루 일과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도 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항상 재잘재잘 말이 많던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일까요, 아이로부터 이런 날카로운 지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엄마, 내가 말할 때 집중해서 안 듣지? 어떨 때는 대답은 하는데 내 이야기를 듣고 있지는 않아”
순간 뜨끔하고 화들짝 놀라 이렇게 대답 했습니다 “아니야, 무슨 소리야, 엄마가 다 듣고 있었지”
아이는 엄마가 건성으로 대답만 하고 있다는 걸 육감적으로 감지했던 모양입니다. 그 이후부터는 비록 관심이 안가는 끝도 없는 아이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더 집중해서 들어주려고 노력했던 기억입니다. 예를 들어, 곤충이나 공룡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를 늘어 놓을 때도 그것이 아이가 엄마와 교감하고 싶은 최대 관심사라면 열심히 들어주는 것입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아이와의 교감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니까요. 이렇게 차근차근 형성해 놓은 아이-엄마간 교감이 아이가 커나감에 따라 “공부 좀 열심히 해라”라는 엄마의 집착이나 잔소리로 금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합니다. 아이의 기질을 살피며 넌지시 내지는 알아듣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얘기해주면 좋습니다. 왜냐하면 “공부해라” 라는 계속적인 채찍질이 아이에게 상처가 된다면, 아이는 마음의 문을 닫을 수 있습니다. 사실 마음 속으로 공부를 잘하고 싶지 않은 아이도 없을 겁니다. 이런 아이의 속마음을 못 알아봐 주고, 때로는 위로가 필요한 아이에게 공부 잔소리만을 계속 한다면, 엄마와의 교감의 끈이 소실됩니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엄마와의 관계가 어긋나면 좋지 않습니다.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서 정말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해야 할 때, 힘든 고비들이 여러 차례 옵니다. 이때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믿어주는 엄마에게만은 의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이 다시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