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질문
아이들은 조잘조잘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냅니다.
“왜?”
“왜 그런데?”
“왜 하늘은 파랑색이야?”
“왜 달이 우리 차를 따라와?”
“비행기는 어떻게 날 수 있어?”
온 세상이 신기하기만 한 아이들은 호기심 덩어리들입니다. 두 아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세례를 퍼부으면 최선을 다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답을 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입이 아프도록 설명하다 지쳐 ‘아무말 대단치’를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이들 질문에 답해 주고 대화를 이어 가다 보면 아이의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 볼 수도 있고 생각의 방향을 유연하게 유도해볼 수도 있습니다. 엉뚱한 질문에는 “너는 왜 그런 것 같아?”라든지 “왜 그런 생각을 했어?”라고 되묻기도 하고, 저 역시 답을 잘 모르겠는 질문에는 엄마도 모른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해 줬습니다. “아, 그건 엄마도 모르겠네, 다음에 도서관에 가서 달이 왜 우리 차를 계속 따라오는지, 비행기는 어떻게 날 수 있는지 한 번 찾아보자” 지금 같으면 함께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겠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만 해도 인터넷 검색이 생활화되어 있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대신 집 근처 도서관에 가면 한 벽면에 자리하고 있는 각종 백과사전에서 궁금한 내용을 찾아 함께 읽곤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백과사전에서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행 날개 스케치에 대한 글과 그림을 함께 읽어보기도 하고 라이트 형제를 소개하는 위인전을 찾아보았습니다. 또, 달에 관련한 천문학 이야기책을 통해 왜 달이 우리를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지는지에 대한 해답도 얻고, 나아가 지구의 자전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었거니와 태양계의 별들과 빅뱅이론 등 우주의 원리에 대해서까지 자연스럽게 흥미 영역을 넓혀 갔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아이의 호기심은 학습의 범위로까지 확장됩니다. 무엇보다 호기심에서부터 시작한 자발적인 탐구는 스트레스나 공부가 아닌 “흥미로운 알아가기”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만약 라이트 형제를 포함한 위인전 전집을 비싼 돈을 주고 거실 한 가운데 들여 놓은 다음, 아이에게 읽기를 권유한다면, 엄마가 희망하는 대로 재미있게 읽어줄 아이가 몇이나 될지 의문입니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방대한 전집 가운데 관심이 가는 몇 권은 읽을지 모르지만, 대개의 경우 집에 있는 전집에는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이 일반적입니다.
#호기심 확장
아이의 질문은 소중한 씨앗과도 같습니다. 작은 씨앗에 물을 주고 싹을 틔워 잎과 줄기가 나올 수 있도록 엄마가 옆에서 정성껏 도와주면 좋습니다. 큰 돈이 들지도 않고 아이와 싸울 필요도 없이 호기심 확장 작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단지 주의할 점은 아이가 더 이상 흥미를 안 보이거나 흥미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갔을 경우입니다. 비행의 원리에 대해 찾아보자고 했는데, 아이가 전혀 흥미를 못 느껴 하고 딴청을 피운다면 굳이 강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에게 강요하면 역효과가 나므로 어디까지나 재미있는 놀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엄마에게 질문 하나 한 것 가지고 귀찮게 이 책 저 책 읽으라고 한다는 선입견이 생겨버리면 큰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이가 흥미가 있을 때는 엄마가 찾아보지 말라고 해도 찾아보게 되어 있기 때문에 상심하거나 조바심을 낼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한 번은, 도서관에서 둘째 아이가 자기가 고른 책을 엄마와 함께 보고 싶다고 조르는 바람에 둘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큰 아이가 뭘 하고 있나 살짝 돌아보았는데, 어느새 호기심을 보인 주제에 대한 다른 책을 혼자 골라 읽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엄마가 보기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만화책을 읽는 경우도 있었지만,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아이가 무슨 책을 읽는지에 대해서는 아이에게 어느 정도 자유를 주는 편이 맞다고 봅니다.
#아이들과의 주말 나들이
주중에 출근하는 워킹맘에게 주말은 아이들과 집중해서 놀아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아이들 입장에서도 주중에는 엄마, 아빠가 바빠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지 못하고, 자신들 역시 유치원 혹은 학교, 학원, 집만을 오가는 시간이라면, 주말은 엄마, 아빠와 온전히 함께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공부 량이 늘어나기 전까지는 주말을 활용해 아이들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아이들에게 즐거운 체험활동의 기회를 선사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우선,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길러주는 데에는 여행만큼 좋은 활동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떠나면 질문이 끊이지 않는 아이의 모습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바닷가에서 모래놀이를 할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모래로 온갖 세상을 다 만들어내고, 산길에서 다람쥐라도 한 마리 발견할 때면 신기해서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여행을 통해 오감을 자극하는 새로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은 궁금한 게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때 아이들이 쏟아내는 궁금증은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사소하고 쓸데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세상에 입문해서 떠올리는 중대한 박사논문 감의 연구 주제들입니다.
초등학교 때 까지는 공부를 미리 많이 해서 교과서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아이가 똑똑해 보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많은 지식을 쌓은 아이가 아니라 더 많은 지식을 갈구하는 아이입니다. 따라서 아이가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길러야 하는 중요한 능력은 영어 단어 암기력이나 수학 문제 해결력이 아니라 ‘궁금해 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사실 이런 능력은 “길러야 한다”보다는 “잃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새로운 것에 대해 궁금해 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칫 남들보다 한 발 빨리 선행학습 진도를 나가기 위한 목적으로 주말에까지 어린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몬다면, 이런 아이의 소중한 능력을 앗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행으로 꼭 멀리, 좋은 곳에 길게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국내 여행도 해외 여행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냥 ‘새로운 곳’입니다. 2박 3일의 부산 여행도, 당일치기의 가평 여행도, 혹은 반나절의 박물관 관람도 모두 좋은 여행입니다. 단지 주말을 알차게 보내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주말이 항상 아이들을 위해 비어있는 시간인 것은 아닙니다. 주말에 참석해야 할 결혼식, 생일파티 등 일정이 있어 멀리 떠나기 어려울 때는 주말 중 하루라도 비워 아이들과 함께 산행이나 산책을 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저희 가족은 아침 일찍 집을 나가 약 서너 시간 동안 서울 둘레길을 걷다가 늦은 점심을 먹은 후 귀가하는 날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갈 때에는 걷고 싶은 만큼 걷지 못하고 다시 주차해둔 곳으로 돌아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기 때문에 지하철을 타고 가서 마음껏 걷다가 걷기를 멈추는 곳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면 차주 주말에는 그 전 주에 걷기를 그만둔 지점에 찾아가서 그 곳을 기점으로 이어서 걸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수개월 주말을 걸어 서울둘레길 8개 코스를 모두 정복했습니다. 꼭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둘레길을 걸으면서 낯선 동네를 구경해볼 수도 있었고, 자연과 교감할 수도 있었습니다.
서울시내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전시 정보를 항상 주목하는 습관도 좋습니다. 박물관, 미술관은 과거 혹은 현재의 사회에서 가장 창의적인 사람들과 맞닿아 있는 최전선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예술의 전당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전시가 있으면 메모를 해두었다가 주말에 시간을 내 아이들과 함께 찾았습니다. 늘 사람이 많아 북적이는 유명한 전시를 방문할 때면 어른들 틈 속에서 키가 작은 아이들이 관람하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혼잡한 시간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주로 일요일 저녁시간, 전시회가 끝나기 약 1시간 전 쯤 마지막 순서로 입장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이런 ‘따분한 옛날 그릇’ 등을 관람하는 일을 즐기는 것은 아닙니다. 첫째 아이는 성격이 꼼꼼해 그림이나 작품을 설명하는 내용을 차분히 읽으며 천천히 감상했던 반면, 둘째 아이는 빠른 걸음으로 전시관을 휙 둘러본 후 재미가 없다고 칭얼댈 때도 있었습니다. 이럴 때면 둘째 아이는 혼자 전시관에서 나가 기념품 샵에서 다양한 기념품을 구경하면서 다른 가족들이 관람을 마치기를 기다렸습니다.
아이들이 전시를 싫어하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전시의 내용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른 선진국의 박물관들에 비해, 우리나라 박물관들의 전시는 어린이들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이해되지 않는 회화와 조각을, 깨알같이 어려운 말로 적힌 설명을 읽어가며 차분히 감상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엄마의 무리한 바람일지도 모릅니다. 이럴 때에는 애초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전시에 데려가거나, 아이에게 가보고 싶은 전시를 직접 고르도록 하는 것도 아이로 하여금 호기심을 가지고 전시를 관람할 수 있게끔 하는 방법입니다. 경우에 따라, 어른들을 주 관람 대상으로 하는 전시라 하더라도 방문하기에 앞서 전시 내용과 관련된 책을 읽어보게 함으로써 호기심을 자극한다면 아이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전시를 보는 도중에 아이에게 작품 정보를 조그만 목소리로 설명해 주거나 작품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화가는 왜 이런 그림을 이렇게 그렸을지 적절히 질문해 보면서 아이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이끌어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추상미술 전시를 찾았을 때, 아이들은 어른이 전혀 생각지 못한 기발한 이야기를 순식간에 상상해 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만든 이야기를 신이 나도록 들려주면서 즐거움과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최근에 서울대학교 뇌인지과학과의 이인아 교수님이 쓰신 <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 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뇌는 기존 경험의 창의적 재조합을 통해 상상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아이의 상상력을 길러주고 싶다면 무조건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게 해서 창작의 재료를 뇌에 많이 만들어주면 된다는 내용입니다.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로 기르기 위해서는 영어 학원의 글쓰기 숙제를 시키는 것보다는 눈 덮인 숲길에 난 까치의 발자국을 함께 따라가 보고 여름이면 시냇물에 같이 발을 담가보며 물놀이를 하는 편이 더 낫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을 때는 길게만 느껴지던 오대산 월정사 앞 전나무 숲길을 몇 달 전 다시 찾아갔습니다. 훌쩍 커버린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같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서, 전나무 숲길이 너무나도 짧게 느껴졌습니다. 스무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아이들이 키운 것은 보폭뿐만이 아닌 궁금증과 호기심, 상상력과 창의력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