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와 바이올린
아이들이 다닌 초등학교에서는 1학년에 입학하면 방과후 수업으로 미술과 바이올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미술은 학교에서 준비물을 제공해줬던 반면 바이올린은 각자 개인 바이올린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갓 1학년이 된 아이들이 바이올린을 들고 다니기는 무겁기 때문에 엄마들이 방과후 수업시간에 맞춰 바이올린을 갖다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첫째 아이에게 엄마는 회사에 가야 하니 바이올린을 가져다 줄 수 없다고 설명해주면서 미술 수업을 선택하도록 권유했습니다. 아이가 주변에 바이올린을 들고 다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눈치였지만 결국 미술 수업을 듣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2년 후 둘째 아이가 언니와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둘째도 똑같이 방과후 수업을 선택해야 할 상황에 놓였습니다. 첫째에 비해 자기주장이 강했던 둘째는 바이올린을 무척이나 배우고 싶어 했기 때문에 당시 3학년이 된 첫째가 둘째의 바이올린을 들고 등하교를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한 해가 끝날 때쯤 하루는 4학년에 올라가는 첫째가 자신도 바이올린을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입학할 때부터 바이올린을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동생까지 바이올린을 하는 모습을 보니 예전보다 더 많이 하고 싶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를 듣고 첫째에게 “아 그랬구나, 하지만 네 친구들은 1학년부터 바이올린을 해왔으니 너보다 실력이 많이 앞서 있을 텐데, 4학년부터 늦게 시작해도 괜찮겠어? 학교 오케스트라에서도 친구들은 모두 퍼스트 바이올린 자리에 앉고 너 혼자 어린 동생들과 함께 세컨드 바이올린 자리에 앉게 될 텐데 말이야”라고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아이는 바이올린을 하고 싶은 마음이 충분히 커서, 오케스트라 무대 뒷자리에서 공연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첫째는 4학년이 되어서야 하고 싶었던 바이올린을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바이올린을 좋아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바이올린을 배우기 전 피아노 학원에 오래 다녔기 때문에 악보도 잘 볼 수 있었고 음감도 좋아 실력이 쑥쑥 늘었습니다. 원하던 학교 오케스트라에도 입단했습니다. 친구들에 비해 3년이나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멜로디를 끌고 가는 퍼스트 바이올린 자리에 앉지 못하고 저학년 아이들과 함께 낮은 화음으로 멜로디를 뒷받침해 주는 세컨드 바이올린 자리에 앉아 연주했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어느 날, 교내 오케스트라의 악장이자 가을 정기 연주회의 바이올린 솔리스트를 뽑는 오디션 공고가 떴습니다. 바이올린 솔리스트는 1년에 단 한 번 개최되는 정기 연주회의 꽃으로, 공연의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하는 역할이었습니다. 당시 오케스트라 담당 선생님께서는 아이를 따로 불러, 비록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오디션까지 약 두 달의 시간이 있으니 방학 동안 열심히 연습해서 오디션에 참가해 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오디션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던 아이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오디션 참가를 다짐했습니다.
아이는 방학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장시간 오디션 곡을 연습하였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솔로 연주자로 선정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참가에 의의를 두었는데, 결과는 의외였습니다. 매년 교내 음악 경연대회에서 바이올린 대상을 휩쓸던 친구가 솔리스트로 뽑힐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첫째 아이가 선정된 것입니다. 놀라운 결과에 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지만 곧 뜻밖의 사건이 이어졌습니다. 바로 전 해까지는 세컨드 바이올린 자리에 앉아있던 첫째 아이가 솔로 연주자로 뽑혔다는 소식에 이의를 제기한 학부모들이 있었습니다. 논리인즉슨, 평소 실력은 전혀 평가 기준에 넣지 않고 단지 오디션 곡 연주 하나만으로 심사하는 건 불공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오케스트라 담당 선생님은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파트 학부모들을 모두 음악실로 소집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영문도 모른 채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학교를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께서는 솔로 연주자를 뽑는 기준은 두 달 전 공지에 올렸다시피 한 번의 오디션을 통한 경쟁이라고 못을 박으셨습니다.
“이의가 있으신 분들을 위해 지금부터 오디션에서 1등을 한 oo이와 오디션에서 2등을 한 oo이의 오디션 연주 녹음파일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숨죽인 학부모들 사이로 두 아이의 실제 오디션 연주 녹음파일이 차례로 흘렀습니다. 완벽히 체화하여 매끄럽게 흐르는 연주와 연습 부족으로 실수가 반복되는 연주는 그 누가 들어도 확연히 차이가 났습니다.
첫째 아이는 그 날부터 오케스트라 정기 공연 날까지 말 그대로 최선 이상의 최선의 노력으로 임했습니다. 오케스트라 담당 선생님도 솔로 연주자가 실제 공연에서 보란 듯이 한 치의 실수도 하지 않기를 원하셔서 아이에게 많은 양의 연습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에 성실히 부응한 아이는 하루 평균 5시간씩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몇 달간의 맹훈련으로 오케스트라 정기 공연 날, 아이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완벽한 연주로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성공의 경험이 주는 힘
위 이야기를 장황하게 쓴 이유는, 어떤 일에 도전해서 성공으로 이끈 경험이 한 인간에게, 특히 커가는 아이에게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는지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무언가를 하면서 자신이 잘한다는 믿음을 갖는 것을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라고 합니다. 자기 효능감은 캐나다 출신인 미국의 심리학자 알버트 반두리(Albert Bandury)가 1977년 논문을 통해 처음 발표하였습니다. 반두리는 “자기 효능감은 행동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효능감은 주어진 과제나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개인의 가능성에 대한 신념으로, 행동의 선택, 수행 그리고 지속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의 특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하면 된다”라는 개념과 일맥상통합니다.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고, 끈기 있게 도전하여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인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자기 효능감이 낮은 사람보다 성공을 이뤄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자기 효능감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여러 가지 있지만, 직접 경험해보는 “수행 성취”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첫째는 어린 시절 소극적인 성격의 아이였습니다. 아이의 소극적인 성격이 걱정되어 엄마의 입장에서 이리저리 고민해보았습니다. 14개월 때 낮 시간 돌봄 양육자가 바뀐 경험이 아이 성격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늘 첫째 아이에게는 동생에 대해 양보를 요구하는 주위 어른들의 태도 역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보았습니다. 첫째 아이의 소심한 성격이 걱정되어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에게 좀 더 신경을 써야 하는게 아닌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첫째 아이는 7살이 될 때까지도 어둠 속에서 극도로 불안해 해, 깜깜한 방에서는 무서워하며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항상 아이가 잠이 완전히 든 걸 확인한 이후에 불을 꺼주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화관이나 연극 공연을 보러 가서도 공연 시작 전 불이 꺼지면 무섭다고 식은땀을 흘리며 울어 첫째만 데리고 황급히 공연장을 나와야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식당을 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익숙한 장소와 익숙한 패턴만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 늘 걱정스러웠습니다.
그 소극적이었던 아이가 바이올린 솔로 연주자로 선정되자 아이도 좋아하고 온 가족이 기뻤지만, 아이가 고된 연습의 과정에서 큰 부담감을 느낀 것도 사실입니다. 따라서 옆에서 지켜보면서는 연습을 더 해라, 말라 일체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힘들면 오늘은 그만해도 괜찮지 않을까?’ 정도의 이야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이 때 연습을 더 해야 할지 말아야하지 판단은 늘 아이가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이의 굳건한 의지로 열심히 노력함으로서 더없이 큰 성취감을 맛보았던 바이올린 연주의 경험은 첫째 아이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작용했다고 믿습니다. 초등학교 졸업 즈음에는 소극적인 성향이 많이 바뀌었고,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 공부에 임할 때 있어서도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목표를 향해 온 에너지를 쏟아 붓는 용기 있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악기. 운동. 공부의 공통점은 매일 매일 쌓아가는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한 아이가 피아노 곡을 연습할 때 있어 매번 틀리는 부분을 안 틀리기 위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연습하는 것, 축구 드리블을 더 잘 하기 위해 낮이고 밤이고 반복 연습하는 것, 수학 문제를 풀 때 계산 실수를 줄이기 위해 부단히 반복하는 과정은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이가 목표를 세워 그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끈기있게 노력하는 태도가 그것입니다.
만약 예체능에 관심을 안 보이는 아이라면 레고 만들기, 체스나 바둑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통해 아이의 관심사를 찾아주시면 좋습니다.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는 초등학교 때, 공부 외적인 취미 활동에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도록 엄마가 신경을 써줄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예체능 등 공부 외적인 활동을 통해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 자기통제력, 끈기, 지구력을 키워 주고, 나아가 성공의 경험을 몸소 체험하게 해주는 것이 자기 효능감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아이의 인생에 있어 더 없이 자산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