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유명유튜브에서 엄마들끼리의 상반된 주장으로 댓글창이 뜨거웠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어느 한 엄마의 한숨 섞인 주장이 그 발단이었다. 요지인즉은, '아이를 낳지 말라'는 것이었다. 뼈빠지게 '지들 잘돼라'라고 키워놨더니 정작 엄마가 아픈데도 돌아보지도 않는다는 등등의 탄원(?)이었다. 그 아래의 엄마들의 댓글들(수천 개였다)은 정말 반반논쟁으로 뜨거웠다. 한쪽에서는 그래도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가장 보람되고 숭고한 일이니 잘해보자! 힘내서 열심히 하다 보면 애들도 잘 되고 엄마의 삶에 보람이 된다는 등의 의견이었다. 이러한 논쟁중에는 '애들 키우는 위험(?)은 피해야 한다', '자녀공부에 너무 투자하다 보니 엄마 자신의 인생이 없어진다' 등등의 '노후를 저당 잡힌 교육투자'의 문제점까지 확장되는 열띤 주장들도 있었다.
이런 글들을 보고 있던 나는 한국의 모든 엄마들이 '마더링은 원래 힘든 거다', '쉬울 리가 만무하다'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이미 다들 '알면서도 시작'하고, 나름 '잘하고 있으면서도 힘들어'하고, 또 그럼에도 '더 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마더링일 것이다라는 생각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결론은 "아무리 잘해야 중간이다"였다. 왜냐하면, 비교적 '공부공부'하지 않아서 엄마와 자녀의 관계가 좋은 경우에도, 고등학교 입학 후, '다른 엄마들처럼 때려서라도 왜 남들처럼 좀 더 일찍 공부시키지 않았느냐?'며 엄마를 타박하는 자녀도 있다. 마찬가지로 가정의 경제적 여건에 비해 무리한 투자(?)를 하면서까지 자녀의 입시에 헌신했던 엄마에게, 엄마는 평생 너무 '공부공부'하며 자신을 옭아매었다며 이제는 건들지 마라(?)라는 선언과 함께 엄마와 마음의 관계를 끊어버린 경우도 많다. 게다가, 결국 잘 키워서 소위, 명문대에 보내도 그것은 엄마의 미래가 될 수는 없다.
자녀를 양육한 이후의 삶에 대한 논쟁도 뜨거웠다. 사실, 자녀의 대입이 끝나는 시점인 50대부터 정작 엄마 본인의 남아있는 앞으로의 50년에 대한 계획이 막막하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월급으로 자녀교육에 '올인'했었던 전업주부들의 경우에는 막막한 경우가 더 많다. 이와 관련한 엄마들끼리의 댓글논쟁도 뜨겁다. 한편에서는 '능력 있어서 지금까지 따박따박 월급을 가져다준 남편'과 '공부시키느라 엄마가 딴짓(?)을 못하게 했던 자녀'때문에, 이제 50살 넘어서 드디어 찾은 엄마만의 시간에 무언가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해보려고 해도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경력단절여성'이 되어버렸다는 푸념이 넘쳐난다. 이에 대한 상반된 댓글로는 그동안 '능력 없는(?) 남편 때문에 워킹맘으로 집에서 일터에서 동분서주했었던 내가 50이 넘어서도 일자리가 있다는 이유로 부러움(?)을 받는다'는 씁쓸한 푸념도 있다. 여기서도 반반논쟁이 뜨거웠다. 읽고있던 나는 '어쩌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논쟁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특히, 여성에게) 너무 '단선적'인 삶의 궤적을 당연히 받아들이게 하고, 당연히 요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적당한 대학에 들아가고, 학교를 졸업하면 적당한 직업을 얻고, 돈 벌고 적당한 시기에 적당히 결혼을 하고, 적당한 시기에 자녀를 출산하고... 또 적당한 시기에 엄마가 '부모대표'로 직업을 그만두고 자녀의 교육과 가족의 돌봄을 도맡아 한다. 그렇게 다들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힘든 시간을 잘 지낸다. 문제는, 자녀의 고등학교 입학 후, 그동안 해왔던 "적당히"가 안 먹히는 구석이 등장한 후부터이다. 바로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젯거리인 '입시'때문이다. 본질적으로 입시는 경쟁이다. 비교를 '디폴트'값으로 하는 영역이 교육이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오늘이다. 아무리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적당히 마더링하고싶어도, 자녀는 (덩달아 엄마까지) 학교와 사교육에서 끊임없는 비교로 자존감과 자신감을 잃어간다. 적당히하는 것만으로도 인생과 자녀의 미래를 포기한 사람취급한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열(education fever) 특유의 강렬함이, 마더링에서 치열한 '사교육'경쟁으로 구체화된다는 것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 대학입시를 향한 ‘사교육’ 서비스의 ‘진화’는 보다 이른 ‘유년기’부터 시작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한 ‘재수와 ‘삼수’, ‘편입’등으로까지 확장된다. 연령에 따른 교육서비스의 전문화와 확대는 다음세대의 교육적 투자를 위한 가족 재정의 고부담으로 사회문제의 주요 화두가 된 지 이미 너무 오래다. ‘교육의 시장화’(marketisation in education)와 개인화가 극대화됨에 따라 교육에서 ‘마더링’의 영향력은 이미 한국의 미디어와 대중 담론에 너무 자주 반영된다. 이러한 사회적으로 빈번히 언급되는 ‘마더링’의 중요성에 대한 담론에서는 '엄마의 역할'의 중요성을 너무 많이 강조한다는 것이다. 너나 할 것 없는 결론은 자녀의 학업적 성취에서 ‘엄마’의 전문적인 개입이 필수적임과 더 나아가 '아빠의 무관심'이 교육성공의 필수조건이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서 엄마들은 자녀의 입시성공을 보장받기 위해 ‘사교육’으로의 '올인'을 통해서라도 이 시대가 요구하는 규범적이고 '인텐시브' 한 마더링 스타일의 이미지를 덧입기를 희망한다.
엄마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도 복잡 다양한, 또한 지루하다못해 아득한 과정인 자녀의 대학입시까지의 마더링의 과정을 듣는 것, 보는 것만으로도 출산도 하지 않은 여성들은 벌써 숨이 턱턱 막힌다. 반면, ‘사교육’의 현란한 수사(修辭)는 ‘신뢰’할 만하고, 그들이 담보하는 결과는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자녀교육의 과정과 성공으로 가는 ‘열쇠’라는 환영(幻影)을 제공하기에 너무나 충분해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 교육환경에서 사교육 없이 자녀의 입시를 준비시키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부모의 교육관이 사교육을 배제(?)시키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정작 공부를 하는 주체인 자녀들이 현실적인 한계를 토로할 때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라도 사교육에 투자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책에서 다루었던 많은 엄마들의 이야기만보아도, 중요한 것은 사교육을 시킨다 안 시킨다가 아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떨쳐지지가않는다. 또한, 더 문제는 교육에 '몰빵'하는 마더링을 마치 엄마 자신의 인생에 대한 투자인 듯 여기는 생각이다. 자녀의 교육에 엄마의 인생을 녹이는 듯한 마더링에서의 'T'와 'F' 사이의 균형 잡기에 실패하기가 쉽다. (그러고 보면, 마더링의 성패는 'T'와 'F' 사이의 져글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지난 글에서 MBTI의 'T'와 'F'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었다)
이렇게 힘(?)을 가진 듯한 엄마들 또한 스스로를 주변의 다른 엄마의 마더링 방식과 비교하고, 비교당하며 힘들긴 마찬가지다. 더욱 ‘빡세게’ 아이들을 돌려서 ‘엄마가 원하는 결과’를 위해 (또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사교육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로고스’를 무시하기도 힘들다. 반면, 자녀들이 이런 엄마를 돕지(?) 않는다는 푸념과 원망을 서로 나누며 오늘을 또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들이 이시대의 한국 엄마들이다. 그래서인가? 속해 있는 공동체(전업주부에겐 주로 ‘학부모 모임’이기가 쉽긴 하다)의 엄마들과의 교류가 중요한 '일'이자 마더링 중 하나다. 그러고 보면, 모든 아이들 공부와 동네 돌아가는 사정을 들을 수 있는 ‘빨래터’ 역할이 바로 이 ‘맘 모임’이다. 엄마들끼리의 ‘이너써클’을 유지하기 위해, 거의 매일 통화는 기본이고, 주기적으로 모여서 입시설명회등 새로 생긴 학원 순례에도 모두 업무처럼 성실하고 진심이다. 사실, 아이들이 학령기가 끝난 이후에도 만남이 지속되는 찐 엄마들의 ‘친목 모임’과 결국의 ‘인생 친구’가 되는 경우를 왕왕 본다. 그 시작도 결국 자녀의 교육을 목적으로 한 마더링에서부터가 많았다. 찐 ‘전우애’가 아닐까?생각한다.
영어에서 ‘향연’(banquet)은 일반적으로 결혼식, 기념일 또는 기타 중요한 행사와 같은 특별한 날을 축하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열리는 대규모 공식 식사 또는 잔치를 나타낸다. 본 식이 끝난 후에 가지는 편안하고 긴 담소의 ‘장’이다. 종종 여러 코스의 음식을 포함하며 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와 축하를 위한 이벤트이다. 한편,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그리스의 일류 문화인들이 한 곳에 모여 사랑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한 대화에 대한 플라톤의 전기(前期) 저작의 하나인 책명이기도하다. ‘마스터 키’가 없는 교육을 위한 마더링에 비슷한 고민으로 때로는 함께 위로하고,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또다시 함께 축하하고… 그렇게 각자의 ‘마스터키’라고 믿는 것들을 공유하는 이 시대 한국 엄마들의 삶의 궤적이 남겨준 ‘선물’이 바로 이 ‘맘 모임’이자 '찐 전우애(?)'이다. 길고 치열한 교육 전쟁의 ‘훈장’이 함께 이 시기를 잘 버티게 해 주었던 엄마들끼리의 ‘찐한 연대’로 만들어진 소소한 일상의 ‘향연’이 아닐까? 그렇다면,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지만, 누구나 해결을 희망하는 교육과 관련한 담론의 시작을 이 '향연'에서부터 시작해보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함께 나누는 ‘소그룹’에서의 담론이 보다 건강하다면, 더 큰 명제에의 접근법도 좀 더 건강하고 근본적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작고 소소하지만 끈끈한 이 '맘 모임'에 더 건강한 생각들(나는 좀 거창하게 ‘마더링 철학’이라 불러본다)이 그득 차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