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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충만 Apr 15. 2022

'하지 마'라고 말하지 않는 3가지 방법

청소년을 만나는 운영자들을 위한 비법서: 챕터 5 - 금지 편

스토리스튜디오(Story Studio, 이하 '스스')는 12-19세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로 마음껏 만들어보는 작업실입니다. 다양한 재료와 도구, 기기를 활용해 자신의 생각과 이야기를 표현하고, 각종 콘텐츠로 작업의 영감과 나만의 취향을 쌓아갑니다.


<청소년을 만나는 운영자들을 위한 비법서>는 만 매니저가 스토리스튜디오의 운영자로 일하며 발견하거나 깨달은 여러 팁과 가이드를 함께 나누기 위해 쓴 글입니다. 청소년 공간의 운영자뿐만 아니라 청소년이 궁금한 사람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여기는 뭘 하지 말라는 안내문이나 글 같은 걸 붙여 놓은 게 없네요?"


최근 교내 창의 작업공간을 맡게 되신 선생님이 스스를 벤치마크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꼼꼼하게 여러 곳을 둘러보시더니 단박에 스스의 특징을 알아채셨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스스에서 꽤나 신경 쓰고 있는 것이 '하지 마'와 같은 부정적인 명령 언어가 자리잡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 말아 주세요'로 완곡하게 한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 말라는 안내문은 아예 없앴고 운영자가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에서도 주의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스스가 마음껏 자신의 작업을 시도해볼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껏 시도하기 위해서는 누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파악하고 이해하고 '왜요?'라고 질문하고 실패해본다는 것이 깔려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12-19세 아이들을 미완의 존재, 학습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한 사람의 온전한 창작자로서 존중한다는 원칙이 굳게 잡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이런 정체성과 원칙 아래 창의적인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사실 스스러의 작업물이 가득 차 있어 뭘 붙여도 효과가 떨어지긴 해요


'하지 마'라는 말은 창의성을 저해한다고 합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인성 지향형 대화를 나누는 경우 창의성이 가장 높았고, 지위 지향형이 다음, 명령 지향형이 가장 낮았습니다. 참고로 지위 지향적인 대화는 규칙을 설명하는 방식이고, 인성 지향적인 대화는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설명해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도 설명형이나 의문형 같은 인성 지향형 대화가 사회인지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나타나 있습니다.


무엇보다 스스에서 '하지 마'라는 말을 안 하려는 이유는 아이들이 너무 질리도록 들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살펴본 연구에서는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말의 54%가 명령형이었습니다. 부모만 그럴까요? 학교는 어떨까요? 스스에서도 그래야 할까요? 아이들은 이미 아주 어릴 때부터 수없이 많은 일방적인 '하지 마'를 만납니다. 아무런 설명도 없고 그냥 받아들이라는 '하지 마'가 넘치고 있죠. 


하지만 '하지 마'라는 말은 효과가 낮습니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다는 말처럼 말이죠.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사이먼 사이넥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부정적인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책에서도 그 내용이 잘 나와 있습니다. 물론 청소년을 만나는 공간의 운영자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 '하지 마'가 목구멍까지 차오름을 느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놀이터와 기차 같은 일상 공간에서부터 일방적인 '하지 마'를 만나야 하는 아이들



1. 그래 한번 맘껏 해봐라는 말부터 꺼내기 / 쭌션과 스탑까유의 난장판


지난해 7월 어느 날 쭌션과 스탑까유가 007 가방을 만들겠다며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은 007 가방의 몸체를 신중하게 아이소핑크로 정하고 처음에는 칼로 안을 파냈습니다. 생각보다 어렵자 톱을 동원해보았습니다. 이것도 쉽지 않자 드릴로 갈기 시작했습니다. 공간에 핑크색 가루들이 날리기 시작하고 만 매니저 입에서 순간 '그렇게 하면 안 돼!'가 튀어나올 뻔했습니다. 도대체 왜 저걸 저렇게 할까, 저걸 어떻게 다 치우나, 이렇게 하면 훨씬 나을 텐데 등등 온갖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참을 인.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얼추 모양이 나온 박스를 물감으로 칠하겠다며 덤비기 시작했습니다. 물감이라... 이건 딱 봐도 위험신호입니다. 작업 스케일은 또 어찌나 큰지 테이블 위가 불편해지자 바닥에 가방을 두고 물감을 퍼내기 시작합니다. 검은색 오일파스텔은 그렇게 한 통이 비워져 가고 커다란 페트병 한가득 물과 뒤엉킵니다. 참을 인. 넓적 붓을 든 쭌션과 스탑까유는 신이 났습니다. 역시나 물통을 툭 쳐서 바닥에 물감 물이 흐르기도 하고 성근 붓질에 물감이 이곳저곳 튀기 시작합니다. 난장판입니다.


참을 인


이 날의기록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이 과정에서 스탑까유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거 같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함. 아주 골똘히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음을 운영자에게 어필함. 굉장한 쓰레기가 발생했지만 아이들 스스로도 놀라서 그런지 자기들이 다 치우겠다고 했고 실제로 거의 대부분을 잘 치우고 감. 30분 정도 청소시간을 가졌음." 


'어른의 눈'으로 제대로 되지 않을 게 명백할 때, 더 나은 방법이 보일 때 '그렇게 하지 마', '그거 아니야'라고 외치게 됩니다. 하지만 참을 인을 3번 정도 새기며 '그래 한번 맘껏 해봐'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생각보다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여지없이 실패하고 어지럽히고 망가뜨리는 결과가 나올지라도 말이죠. 


제가 만약 '하지 마'를 연발하며 작업을 막거나 방향을 계속 제가 의도한 방향으로 틀었다면 그날은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른의 눈'에 더 아름답고 멋진 작품이 나왔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자신의 한계를 계속 뛰어넘고 스스로 골똘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생략되었을 것입니다. '아이의 손'을 믿고 맘껏 해보라고 말을 먼저 해보면 어떨까요. 


왼쪽이 쭌션, 오른쪽이 스탑까유의 007가방. 놀랍게도 탈부착 식으로 입구가 열리고 안에 수납공간이 숨어 있어요



2. 금지에서 대안으로 / 창작 유튜버 리스트


두 번째는 유튜브입니다. 스스를 처음 열었을 때는 유튜브를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내버려 둔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은 아이들을 자꾸 알 수 없는 세상으로 이끌기도 했고 작업보다 영화나 게임 리뷰 영상을 멍하니 보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이기도 했습니다.  


가장 쉬운 해답은 유튜브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유튜브 사용을 관찰해본 결과 아이들은 유튜브에서 작업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얻고 있었고, 특히 작업 영상을 보며 영감을 얻고 있었습니다. 고민이 시작되고 여러 차례 다른 운영자들과 논의를 거듭했습니다. 특히 애당초 유튜브에 대한 룰이 있었으면 좀 더 대화가 쉬웠을 텐데 중간에 룰을 만드는 것은 정말이지 어렵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운영자는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유튜브를 하는지 안 하는지 감시의 눈초리로 아이들을 바라봐야 하고, 아이들은 운영자를 피해 숨어들어갑니다. 어떤 운영자는 좀 풀어주고 어떤 운영자는 엄격하면 술래잡기가 시작되죠. 운영자가 감시자가 되는 순간은 어떻게든 막고 싶었습니다. 


회의 결과 유튜브는 볼 수 있지만 대신 작업 유튜브 중심으로 보는 것을 제안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하지 마에서 이렇게 해볼래로 전환한 것입니다. 여기서도 디테일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는 작업 유튜브만 봐라'라는 또 다른 '하지 마'가 되어선 안 되기 때문에 정말 볼 수 있게, 보기 편하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전체 리스트가 궁금하다면 여기서 � https://bit.ly/SS_list


한동안 아이들이 보는 작업 유튜버를 모아두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41명의 작업 유튜버를 모아 노션에 카드 형태로 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아이패드 바탕화면에 바로가기 아이콘을 만들어 유튜브에서 찾아 보는 것보다 더 빠르게 영상을 볼 수 있게 한 단계 과정을 줄였습니다. 


당연히 스스가 처음인 아이들은 유튜브에서 평소에 보던 걸 보려고 합니다. 이때 운영자가 "스스에서는 유튜브 보는 거 금지예요"라고 말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공간은 작업실이니까 작업 영상을 주로 보고 있어요. 여기에서 작업 유튜버 리스트를 볼 수 있는데요. 혹시 알고 있는 유튜버 있어요? 우리가 모르는 재미있는 작업 유튜버가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닉네임 넣어서 추가할게요." 


일방적인 금지에서 어디까지가 가능한 범위인지를 가르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 그리고 그게 훨씬 쉽고 나은 방식으로 작동되도록 만드는 것이 만드는 차이는 생각보다 큽니다. 이렇게 하고 난 이후 지금까지 부정적인 의사소통을 계속해야 하거나 숨바꼭질, 술래잡기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도 충분히 납득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금지에서 대안으로 원리는 유튜브뿐만 아니라 게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했어요



3. 안 되면 이유를 꼭 말해요 / 스스에서 펼쳐진 <몽상가들>


청소년을 만나는 운영자들이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아이들의 연애와 스킨십입니다. 구석진 공간이나 사각지대가 있으면 어김없이 남녀상열지사가 벌어지고 운영자들마다 '뭐, 어때'부터 '절대 안 돼!'까지 보는 관점이 워낙 달라서 더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스스는 구석진 공간이 거의 없는데도 이런 일이 생기곤 하니 다른 곳은 어떨까요. 


작년에 고등학교 연령의 아이들 여럿이 공간에 새로 온 적이 있었습니다. 이들 중 몇 명이 너무 자연스럽게 빈백을 쭉 늘여놓더니 영화 <몽상가>들의 한 장면처럼 남녀가 뒤섞여 누워 꽁냥꽁냥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벌건 대낮에 운영자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이 정도로 과감한 남녀의 포개짐이라니... 저도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일단 참을 인을 마음에 새기며 지금 상황이 '하지 마'를 외쳐야 할 상황인지 먼저 파악했습니다. 마침 어린아이들이 공간에 없었고 한 두 명 있던 아이들은 함께 온 또래로 별로 개의치 않아했습니다. 아이들이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어떤 마음일지 한참을 살폈습니다. 아이들은 이 공간이 편해서 평소 하던 대로 하고 싶어 했고, 이들 사이에 어떤 성적인 제스처나 그 이상의 것들이 오고 가진 않았습니다. 



물론 스스가 이런 모습까지도 가능한 공간은 아닙니다. '하지 마'를 말해야 할 때입니다. 다만 이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를 떠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아이들이 불법을 저지르거나 부도덕한 행위를 한 것은 아닌데 다만 우리 공간이 이런 행위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니 그 부분만 정확히 알리고 싶었습니다. 모욕이나 수치를 당했다고 느끼지 않고 어떻게 정중하게 '하지 마'를 전달할 수 있을까요.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일어서려고 할 때 자연스럽게 옆에 걸터앉았습니다. 편하게 우스개 소리를 몇 개 늘어놓으며(안 웃겼을지도...) 분위기를 풀고 정중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너희들 사이의 친밀함은 존중하지만 코로나가 심한 시기에 이렇게 딱 붙어 있는 것은 일단 곤란해요. 그리고 이 공간은 12-19세가 함께 이용하는 공간이고 휴식만 하는 공간이 아니라 작업실이기 때문에 작업하러 온 어린 친구들이 보면 마음이 불편하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지위 지향형, 인성 지향형이 섞인 대화입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선뜻 납득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꽁냥꽁냥은 계속 발견됩니다. '하지 마'를 이야기해야 할 상황인지, 그렇다면 상대가 모욕적이라고 느끼지 않도록 이유를 충분히 달아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영자들끼리 이런 사례를 수집하고 대화를 나누어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지 한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물론 공간을 운영하다 보면 '하지만'을 단호하게 즉각 외쳐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안전에 위협적인 상황이나 폭력이 발생했을 때입니다. 이 부분은 따로 떼어 비법서를 하나 남기겠습니다. 또한 '하지 마'를 안 하고 싶지만 운영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평소 사용하는 언어 습관을 바꾸기 어려워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도서관에서 음식을 먹지 마세요. 개미들이 들어와 책 읽기를 배워 똑똑해질 겁니다. 지식은 권력이며,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죠. 결국 부패하고 악해진 개미들이 세계를 정복하려 들 것입니다" 


미국의 한 도서관에서는 취식금지를 이렇게 적었다고 합니다. '도서관에서 음식을 먹지 마세요'로 끝났어도 될 말을 무려 30개의 단어를 더 써서 운영자는 쓸모없는 글을 남긴 걸까요? 아마도 저렇게 적음으로써 읽는 사람이 미소를 짓게 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메시지가 잘 전달된 것이죠. 단순히 '하지 마'라고 적어두었다면 아무도 보지 않고 신경도 안 썼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으른 메시지는 게으른 반응이 따를 뿐이죠.


'하지 마'는 운영자 입장에서 쉽고 즉각적이며 바로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운영자가 게을러지는 순간 공간에는 '하지 마'가 가득 차게 됩니다. 혹시 내가 '하지 마'를 연발하고 있진 않나요? 우리 공간에 아주 친절하게 적힌 '하지 마'가 늘진 않았나요? 마음껏 자신의 작업을 시도해볼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은 운영자 입장에서는 사실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쉽고 편한 '하지 마'를 내버려 두고 부단히 30개 단어를 더 써야 하기 때문이죠. 


자 그럼 <청소년을 만나는 운영자들을 위한 비법서>의 다섯 번째 챕터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만나요!


감사합니다.


만 매니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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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스토리스튜디오를 만날 수 있는 방법: 스토리스튜디오 인스타그램





>> 지난 비법서 다시 읽기


[비법서: 챕터 4 - 환영 편]



[비법서: 챕터 3 - 칭찬 편]


[비법서: 챕터 2 - 음악 편]


[비법서: 챕터 1 - 첫 방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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