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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작가 Sep 18. 2024

강자에게 강하다

5화

본사에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별로 기분 좋지 않은 상황을 접한 후, 제일 위층부터 차례로 포스터를 혼자서 붙이면서 내려왔다. 내가 포스터 붙이는 것을 보는 회사 사람들의 표정과 반응이 각양각색이었다.


"아니 늘 팀장님/선배님 혹은 00님께서 왜 이런 일을 하세요? 후배들 시키시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양호한 것이다.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은 나를 보고(평소 알았던 회사 사람들인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포스터 붙이고 있는 나를 한심하다는 눈길로 쳐다보면서 지나갔다. 물론 내가 혼자 느끼는 자괴감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일까지 하면서 회사 계속 다녀고 싶냐 하는 표정으로... 회사 행사 포스터 붙이면서 정말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했다.


그래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포스터를 붙이면서 내려오다가, 중간층에서 한 임원을 만났다.


 "00님, 본사까지 직접 행사 포스터를 붙이시고 다니시네요? 팀에서 도와주는 후배들 없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과 말투가 영 거슬린다. 이 사람은 회사 임원 중에서 힘이 센 보직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이 임원을 싫어한다. 과거 내가 팀장 시절 일로 몇 번 심하게 부딪힌 적도 있었다.


논쟁 (출처 : FLATICON)


"왜 어때서요? 팀장에서 내려갔으니 이런 일 당연히 제가 해야지 누가 해요?"


나는 의도적으로 정색을 하면서 대답을 했다.


"아 그러시군요. 하긴 이제 팀원이시니 이런 일도 하셔야겠지요."


실실 나를 쪼개면서 대답하는 표정과 말투가 내 속을 뒤집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런데, 퇴직 후 노후 준비는 잘하고 계시지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아니 이 친구가 지금 시추에이션, 맥락과 무관하게 웬 노후 준비 이야기를 꺼내는 거야.  오늘 연타로 왜 이러냐. 쩝~


"아니 뜬금없이 저에게 왜 노후 준비 물어보세요?”


 “아, 그냥 궁금해서요. 명퇴하지 않고 다니셔서”


이렇게 대답을 하면서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속으로,  "내가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 너 이번에 잘 걸렸다. 내가 강자에게는 강한 사람인 것 아직 모르고 있구나. 그리고 예전에 회사 일로 나랑 붙었던 것 기억 못 하나 보네. 그때 사장님이 지적한 사항을 나에게 덮어씌우려고 했을 때, 내가 한 일이 아니고 네가 지시한 일이라고 받아 버렸던 것 잊었나 보네? " 


이렇게 생각하면서 칼을 갈았다. 그리고 회심의 반격(?)을 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0 상무님은 노후 준비 다 하셨어요? 저는 노후 준비 다 되어 있고 돈 남부럽지 않게 있어요. 그리고 이 회사 돈 때문에 명퇴하지 않고, 더 다니는 것 아닙니다!"


0 상무는 회사 입사 후배이고 대학교도 후배이다. 1~2년 후배가 아니라 5년 후배인데, 회사에서 좀 잘 나간다고 평소 나를 무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내가 나온 대학교는 선후배 관계가 돈독한데, 이 후배 임원만은 그런 것 모른 척하고 회사 직위로만 나를 대하고 있었다.


내친김에 이렇게 이야기해 버렸다.


"저 지금 강남 ○○동에 사는데, 그 아파트 실거주 소유자이고,  그 단지에서 제일 큰 평형 가지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노후 준비 충분하겠지요? 그렇게 말하는 0 상무님은 지금 서울 어느 동네에 사시는가요?"


이 후배  사는 동네는 서울에서 B급지 정도이고 집안도 부자가 아닌 것을 내가 알고 있었다. 나한테 오늘 제대로 걸린 것이다.


내가 이렇게 대답을 하자, 0 상무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자기가 어느 동네에서 살고 있는지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말을 더듬거리면서 이렇게 나에게 물었다.


“지금 강남에서 살고 계세요?”


 “네, 아시다시피 저는 깡촌 흙수저 출신입니다. 하지만 저 강남 집 가진 지 오래되었어요. 그리고 지난 17년에 지금 사는 아파트로 평형 키워서 업그레이드했어요.”


속사포 쏘듯이 내가 대답을 하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아마 나의 말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내가 명퇴하지 않고 회사 다니는 것이 돈 없어서 다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말 섞기가 싫었다.


 "전 포스터 더 붙여야 해서 그만 갑니다. 노후 준비 잘하세요. 후배님"


이렇게 쏘아붙이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계단을 내려갔다. 유쾌, 상쾌, 통쾌!  후배 임원을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십 년 묵은 체중이 쑥 내려가는 듯하였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이 인간 본 적 한 번도 없다. 이 임원 지금은 이 회사 다니지 않는다. 그렇게 하늘 높을 줄 모르고 기세 등등 하였지만 전무 달지 못하고 상무에서 회사 생활을 마감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퇴직 후 동종 업계 작은 회사 들어갔다가 또 퇴직하고 현재 구직 중이라고.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못하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하다. 나 역시 다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후배 임원은 내가 포스터를 붙이는 것을 보고 나를 약자로 생각했을 것이다.  본인이 강자로 생각하고 나를 한번 찔러(?) 보았는데, 생각과는 달리 내가 강자이니 충격을 꽤 받았을 것이다.


브런치 독자 중에서 나를 오프라인에서 만난 분도 꽤 있는데, 잘 아시겠지만 평소의 나는 순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강자가 나를 약자로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면 절대, 네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는 옛 속담이 틀리지 않는다.  농담이 아니고 나는 뒤끝 작렬이다. 내 등에 칼을 꽂으면 나는 반드시 응징을 한다. 반면 나에게 도움을 준 분은 끝까지 챙긴다.


회사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SNS에서도 그렇다. 회사 사람들이 친구들이 친척들이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부장 팀원의 삶을 시작한 지 100일 정도 되었던 초기에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으면서 나의 내공은 더 단단해졌다.


권투, 권투 글러브(@copywrigh by 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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