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용돈이요”
매주 월요일이 되면 큰아이는 나에게 일주일치의 용돈을 받아간다. 특별히 쓸일이 없어도 그게 권리인 마냥 나에게 요구를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지, 개학이 미루어져 ,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집콕 하고 있는 요즘은 정말 힘든 시기이다. 너도 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어제는 처음으로 밑에 집 아저씨께서 올라와 항의를 하셨다. 말씀하는 방식이 너무 지나쳤지만, 아이들이 콩콩 소리를 내며 걸어 다니는걸 알기에, 죄인마냥 그냥 죄송하다 사죄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에서 거의 3개월간 갇혀있는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한번 하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큰아이가 귀찮은 듯이 “엄마가 2번 다녀오시면 되잖아요” 라는 말에, 나의 마음속에 있던 분노가 튀어나왔다.
내가 누구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다니며 학부모에게 욕을 먹고, 아랫집 아저씨(둘째가 층간소음일으킴) 에게 사죄하며, 열심히 사는지 모르나? 저 아이들에게 엄마란 고작 쓰레기를 2번 버려주는 존재인가?
화가 들끓었다. 주체 할 수 없는 마음에 그냥 무작정 집을 나왔다. 열을 식히기 위해 내가 평소 좋아하던 까페로 향했다. 커피를 마시며, 혼자 화를 삭이는 시간을 가지자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커피 한잔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7살짜리 동생을 마스크까지 씌여서 길 따라 (엄마찾으러) 내려오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화났던 마음은 피식 웃음으로 돌아서고, 아파트 장터에서 소떡(소세지떡)을 사주며 놀이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의 마음은 왜 화가 났을까? 아이가 그냥 웃자고 한 말일수도 있고, 평상시 같았으면 그냥 웃고 넘겼을 수도 있을 말에 왜 화가 났을까?
명상에서 말하는 내 마음 알아차리기로 멀리 떨어져 객관적으로 보고자 내 마음을 들여다 보기로 했다. 3개월간 도무지 혼자 있는 시간이 없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야 마음이 회복되는데, 혼자 있는 시간을 내지 못하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다.
산책이나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 나에 비해, 바깥놀이를 좋아하지 않는 큰애는 어딜 가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빈둥거리며 집에만 있는 모습이 내 눈에, 나의 기준에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 나는 나의 아이에게(혼자서 알아서 하길 기대함) 내가 원하는 기대치가 있구나.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하고 있으니, 너도 부응해 주렴 하는 기대치가 있구나. 그래서 그걸 못 채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그걸 실망시킨 아이에게 화가 나는 것이다.
나는 엄마의 의무를 채우기 위해 하루 3끼 밥을 하고, 일을 하고 , 너희들을 돌본단다. 이런 나의 수고로움을 너희가 안다면 나의 말을 들어줘야 하지 않겠니? 하는 이런 마음 말이다.
이런 마음을 알아보면, 화가 나는 진짜 이유.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게 된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화가날 때, 서운할 때 왜 그러는지 관찰자처럼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볼때이다. 모두가 힘들어하는 때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