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스토의 “이야기의 탄생”에서 주인공은 모두 각자의 불완전하고 편향되고 고집스러운 창작의 산물이라고 한다. 뇌는 우리에게 유혹적인 거짓말을 속삭임으로써 삶이라는 이야기에 우리가 결단력 있고 용감한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장치를 만든다. 나의 뇌는 나에게 강력하게 ‘우리나라 옷은 너무 비싸. 브랜드의류도 직구를 하면 싸게 살 수 있어’하는 강력한 믿음을 심어 주었다. 아이가 태어나던 해부터, 10년 가까이 해외배송을 통해 뇌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시작은 큰아이의 분유부터였다. 아무거나 잘 먹는 아이였지만, 한국분유가 생각보다 비싸서 독일 분유를 사기 시작했다. 즐거웠다. 아이라는 핑계가 있으니, 돈을 써도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기저귀, 아이 내복, 외출복, 식기류까지 온갖 물품으로 집안을 채워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점점 크는 아이의 몸매는 전형적인 한국아가 체형이라, 미국의 옷(가늘고 긴 체형에 어울리는)이 맞지 않게 되었다. 개 버릇 남 못준다고 했던가. 직구를 끊어야 할 이유보다, 타켓을 내 의류로 바꾸는 우를 범하였다. 마침 둘째를 출산한 나의 몸은 F(free)사이즈는 물론, 대부분의 브랜드에서 파는 66도 맞지 않았다. 한국 사이즈 77. 30대의 내가 느끼기에 너무 아줌마가 된 느낌이었다. 초반에는 한국사이즈 기준에 맞춰서 L사이즈를 주문했더니, 왠 푸대자루가 배달되어 왔다. 그랬다. 외국사이즈는 나의 몸매에도 S사이즈를 허락해주었다. S라인은 없지만, S사이즈가 입고 싶었다. 살아있네를 외치고 싶은 처절한 몸부림이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내 체격과 어울리며, 30대의 미시처럼 보이는 브랜드를 발견했다. 원단 좋기로 소문난 품목을 고르고 골랐다. 그러던 어느 날, 쇼핑도중 홈페이지 싸이트가 버벅 거리더니, 갑자기 세일 카테고리에 새로운 옷들이 말도 안되는 90% 할인된 가격으로 막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했다. 홈쇼핑의 쇼핑호스트가 외치는 카운터가 귀에 들리는 듯 했다. 장바구니에 넣는 족족 품절이 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우리나라 시간대 6시 55분, 미국시간 오전 9시 경으로 세일품목이 업데이트 되는 순간을 알게 된 것이다.
한번 본 그 가격이 잊혀 지지가 않았다. 100%실크 블라우스가 10달러가 안하다니!!! 속된 말로 안살수가 없는 가격이었다. 다음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그 시간대에 대기를 하였다. 로그인 완벽. 결제할 카드 등록 오케이. 따ᅠ갈리는 손으로 F5를 계속 고침으로 누르며, 싸이트에서 옷이 업데이트 되길 기다렸다. 나의 타깃 사이즈는 S. 하의는 실패가 많아서 패쓰, 원피슨,s 4나 6사이즈. 목표치를 정해놓고, 매의 눈으로 싸이트를 돌아다녔다. 빠른 클릭 몇 번으로 도전하던 품목을 손에 넣었다. 주문완료가 뜨는 순간 아드레날린이 돌았다.
그날부터 S사이즈 사냥은 시작되었다. 어린아이 둘 있는 엄마가 실크블라우스를 입고 나갈 곳은 많지 않았다. 그래도 10달러에 내 손에 들어오는 실크블라우스, 원피스를 놓치면 손해 보는 기분이었다. 안사면 100%할인이라는 말은 나에게 소용없었다. 이렇게 결재한 옷들은 배송대행지를 거쳐서 한국으로 들어온다. 이 일주일의 기간이 내가 주말을 기다리는 금요일 밤의 흥분처럼 설레임을 안겨준다.
우리나라의 관세를 피해갈수 있는 해외물품의 가격은 최대금액이 한번에 200달러이다. 그래서 한번에 결제가능 금액이 최대 환율을 고려했을 때 18만원선이다. 남편에게 생활비를 타서 쓰고 있는 내게 한번에 18만원어치 카드값이 늘어 나는건 큰 모험이었다. 그래서 작은 금액으로 할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2개월 3개월로 나누어 내던 금액이 , 한번 두 번 직구 횟수가 쌓일수록, 할부 개월수가 늘어났다. 최대 6개월까지로. 이렇게 작게 나누어진 할부 금액들은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았다. 4계절이 존재하는 우리나라는 필요한 옷의 종류가 많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2018년 EBS 호모 이코노미쿠스 방송출연 이후, 직구는 바이바이 했지만, 아직도 내 옷장 어딘가에 그 잔여물들은 계절마다 나타나며 나를 당혹케 한다.